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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정 Jan 19. 2023

백 시인의 소설 <엘랑비탈>을 읽고

이 글은 길게 쓰인 시에 대한 답시.


<소설> 엘랑비탈



깊은 겨울밤
사나운 눈보라가
오두막 주위에 휘몰아치고
모든 것을 뒤덮을 때야말로
철학을 할 시간이다

- Martin Heidegger


엘랑비탈_ ELAN VITAL
백승진, 한국문화예술



백 시인님의 작품은 잘 읽어야 한다. 그러니까, 제대로 꼼꼼히 읽어야 한다. 쓰는 이가 많아진 만큼 읽는 이도 많아진 요즘엔 책 좀 읽었다 하는 독자들이나 작가들은 본인만의 예민함을 감각할 필요가 있다. 시인님의 독특한 사유법이 빛났다. 작가라면 응당 본인만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것, 그 사유가 본능적이고 진하고 자연스럽다. 어떤 지도를 그리며 소설을 썼을까, 필연 같은 우연일까. 시인이 말하듯 어떤 존재자들이 우연처럼 만나는 건 삶에 대한 의지가 만들어낸 필연일 가능성이 높다. 문자와 사람과 삶을 사랑해서 우연히 모이기 시작한 작가들처럼.


사람은 우연과 필연을 평생 정복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지, 내 삶을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것이 ‘엘랑비탈’이라는 삶의 약동성,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자세임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존재자만이 가진 성스러움은, 자신을 에너지나 물질로 전환해 버리는 것을 막고 지켜낸다. 인간과 사물 자체를 신비롭게 보는 관점. 이 대목에서 그가 써내려 가는 예술, 첫 번째 에세이 ‘걸음거리’가 생각났다. 존재자라. 키우는 앵무새에게 자주 말을 건다. 새(bird)로 태어나서 좋은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좋다고. 많은 우주의 생명 중 넌 앵무새로, 나는 사람으로 태어났을 뿐. 그리고 만났을 뿐. 살아갈 뿐. 우리는 같은 생명체인 동등한 존재자들로 소설 속 나비의 따뜻한 이끌림과 동행한다.


이후를 생각하는 편이다. 정신적인 세계를 믿으며, 몸이 기능하지 못하면 남는 건 글과 생각뿐이라 치열한 기록의 가치를 안다. 몸의 유지란 그것. 작가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도 그것. 몸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균형이고, 시인은 몸이 불편할 때 우리의 정신이 얼마나 깊고 거대한 크기를 가졌는지 실감케 한다. 정말 많이 아파본 사람처럼. 직면해서야 아름다워지는 삶. 시인은 다시 짚어낸다. 약동하는 삶이란 약동하는 인간으로부터 발화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희망, 그 이상으로 엘랑비탈을 꿈꿔볼 수 있겠다. 소년같이 투명하고 반짝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 글은 길게 쓰인 시에 대한 답시. 늘 그렇듯 볼 사람이 아닌 본 사람을 위해 작성되었다. 질문을 던진다. 쓰는 일은 행복한 쓰임이 될 것인가. 그것들에 다다를 것인가.


글을 쓰면서 찰랑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백 시인님의 소설에서 그때의 반가움을 느꼈습니다. 무뎌짐을 깨우치게 하는 넛지입니다.

.
.
그 위기를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 쓰고 싶었습니다.
시를, 노래를, 그림을, 예술을. 존재자만이 할 수 있는 영적인 경험,
기술이 끝내 침범하지 못할 성스러움의 세계를 누비고 싶었습니다.

- 엘랑비탈, 시인의 말 중에서



Present.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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