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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주 Sep 21. 2023

함께 가자꾸나!

Let’s go together!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친 뒤 묵직한 습기가 대기 위로 퍼지고 있던 8월 중순 저녁이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 무렵에 아내와 함께 산책길을 나섰다. 오늘도 집 뒤에 위치한 달빛공원으로 향한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길 건너 신정중학교 울타리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눈에 띈다.

“생명사랑 밤길 걷기”란 검정글씨가 현수막의 중앙에 매우 크게 적혀있다.

“어머, 밤길 걷기네. 매우 운치 있겠다.”라는 아내의 말에 “우리도 참여해 볼까?”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현수막을 찍었다.  

생명사랑밤길 걷기에 안내해 준 현수막


산책길에서 돌아와 현수막 안내대로 인터넷에 들어가 ‘밤길 걷기 인천’를 찾아보니 ‘자살예방 캠페인'이란다. 약간은 섬뜩한 생각이 들었으나 내용을 읽어보았다.

“미국자살예방재단의 ‘OUT OF THE DARKNESS COMMUNITY WALKS’ 자살예방 캠페인을 2006년 대한민국 최초로 한국 생명의 전화에서 도입하여 인천센터는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사랑 밤길 걷기 캠페인은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요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는 자살예방 캠페인입니다.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함께 걸으면서 ‘힘든 나를 응원하고, 삶에 지친 너를 응원하며,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응원하기 위해’ 우리는 함께 걷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짠한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온다.

안내대로 아내와 나 두 사람의 신청 요금 인당 2만 원, 총 4만 원을 송금하고서 시간은 다소 걸렸지만 무난하게 신청하였다.

코스가 5km, 와 11.1km가 있다. 당연히 11.1km 코스를 선택하고 나니 ‘왜 10km도 아니고 11.1km 지?’하는 생각이 들어 살펴보니 ‘*11.1km OECD 평균자살률의 숫자와 같습니다. 우리나라만을 위한 자살예방이 아닌 인류의 자살문제를 위해 우리는 함께 걷습니다.’라는 설명을 읽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10만 명당 11.1명   


드디어 행사날인 9월 15일이다.

행사장소인 선학체육관에 도착하니 사전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중고등학생으로 이루어진 댄싱 팀들이 무대에 올라와 발랄한 춤을 추면서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다. 나와 아내는 행사티셔츠를 입고서 젊은이들과 어울려 활기찬 여러 장면들을 찍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온 우리는  간식교환권으로 간식을 배부받아 행사장 천막의 빈자리로 들어가서 음료수와 간식을 맛있게 먹었다.

생명사랑 밤길 걷기 출발 전


 7시에 11.1km를 걷는 참석자가 출발하였다. 우리는 주최 측에서 나눠준 노랑 주황 풍선 1개씩, 각자 2개씩을 들고서 상쾌하게 출발하였다. 걷기 코스는 선학체육관> 승기천로> 동막역> 연수체육관> 선학어린이공원> 선학체육관이다. 2~3km 걷다 보니 큰 실수 한 것을 깨달았다. 출발 전에 화장실에서 생리를 해결하고 와야지 무사히 쾌적하게 행사를 마칠 수 있다는 평범한 상식을 무시하고 바로 출발하였던 것이다. 우리 둘은 2~3km 지점부터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찾았으나 중간에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즐거웠던 걷기가 이제는 점점 고통의 걷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안내원에게 물어봐도 화장실이 중간에 있기는 한데 자세한 위치를 잘 모른다고 하니 참으로 난감하다. 마침 아내가 용기를 내어 걷는 코스 오른편 계단에 앉아있는 부부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니 공원에는 없고 걷기 코스를 벗어나서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 가면 이를 이용할 수 있다 한다. 우리는 대열에서 빠져나와  삼성전자의 서비스센터로 가서 로비에 서있는 직원들에게 체면을 무릅쓰고 화장실을 쓰게 해달라고 요청하니 아주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준다. 와 이렇게 고마울 수가...

급한 일을 마치고 걷기 코스로 가보니 대열이 안 보인다. 걷기 대회를 포기하려는 생각이 들었으나, 포기는 오늘 행사 참가의 취지에 안 맞는다. 뛰다가 걷다가를 몇 번 반복하니 대열을 잡을 수가 있었다. 대열에 합류하니 반환점이란다. 반환점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큰길로 나가 종착지인 선학체육관으로 향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반환점에 도착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다는 것은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조물주와 조상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라 생각한다. 자살하는 이유는 공동묘지의 묘지 수만큼이나 많겠지만, 그 원인을 크게 몇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심리적 요인으로서 우울, 불안, 스트레스, 자존감 저하, 대인관계의 문제, 가족 갈등, 취업 등의 생활 문제와 정서적 충격, 상실, 외상 등의 충격적인 사건이 있으며, 사회적 요인으로 경제적 문제, 사회적 고립, 대중 매체의 영향 및 문화적 요인이 있다. 또한 생물학적 요인으로 유전적 요소, 뇌 화합불균형, 신체적 질병 등이 있다.


반환점을 돌아 종착점으로 가는 동안 나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3건의 자살 사례들이 머리에 스쳐간다. 친구의 딸, 후배의 아들들이 각기 극단적 선택을 하여 이들의 장례식장에 가서 부모들을 위로하였던 생각이 난다. 애지중지하면서 키워 논 자식들을 보내는 부모를 마주할 때 나의 마음도 두 조각이 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마음도 이렇게 아픈데 본인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하는 생각에 귀가하는 중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난다. 자기를 키워준 부모의 심정을 만 분의 일이라도 알았으면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회사의 구매부서에서 팀장을 하다가 직속상관의 부당한 업무지시에 반하였다는 이유로 다른 부서의 4년 후배 팀장 밑의 팀원으로 발령받아 맨 앞자리에 앉아서 패배자의 쓴맛을 맛보고 있는 와중에 눈치도 없이 나를 위로한다고 전 부서의 부하직원이 나를 찾아왔다. 그가 사무실 입구에서 모습을 보인 순간 나의 구차한 모습을 보이기가 모멸스러워 창문을 박차고 나가 추락자살을 하려는 충동에 주위를 살펴보았다. 망설이던 나를 발견한 직원은 큰 소리로 ‘팀장님!’하면서 기쁜 표정으로 와서 나의 손을 덥석 잡는 바람에 극단적 시도를 접을 수 있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사람도 순간적인 충동을 잡아주는 주변의 관심과 배려가 있으면 그러한 유혹을 떨쳐낼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1위로 10만 명당 26명, 특히 청소년 자살은  7.1명이라 한다. 꽃봉오리가 피기도 전인 어린 나이로 이 세상을 완주하지도 못하고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회를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며 서로를 지켜주고, 서로 도와주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주변에 자살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인 도움을 제공하거나 요청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배려와 노력을 통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건강하고, 건전하고 행복한 세상을 이룩하는 길을 닦아야 한다.


만약,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려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들에게 다가가 손을 따뜻하게 잡아줍시다.

손잡고서 우리 함께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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