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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Jun 08. 2022

ㅅㅅㄷㅂ : 기역 - 가뭄 (feat. 양양 여행)

속에도 비가 내려야 뭐가 씻겨내려갈 텐데

조셉, 잘 지내니? 서울엔 비가 온다며.

좋겠다. 여기도 비가 와야할 텐데…….


한 달도 전부터 어머니와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마다 어머니는 몹시 꾸준히 비를 찾으셨다. 땅이 너무 말라서, 공기가 건조해서, 신천 물이 줄어서, 산불이 저렇게들 나서. 비를 기다리는 이유는 전화를 할 때마다 조금씩 바뀌었다. 농사도 짓지 않고, 취미로 작물을 키우는 것도 아닌데 어머니의 애닳음은 나날이 심해졌다.


“거기는 비가 왔니? 큰일이다. 비가 오질 않아서.”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비를 기다리는 어머니는 그저 땅이 말라서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이 말라서 비를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양양 여행은 아주 즉흥적으로 결정되었다. 동생도 나도 여행을 계획할 때 장소나 일정을 그다지 꼼꼼하게 짜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6월 4일 시간 돼?”, “응!”, “양양 갈래?”, “양양? 그러자!” 단 두 번의 문답으로 여행길이 정해졌다. 전시와 뮤지컬, 팝업스토어 나들이로 숨통을 틔워본들 서울은 서울이다. 갑갑하던 차에 얼마나 반가운 제안인가!

마침 플라이강원에서 대구-양양 노선을 특가로 운행해주고 있어 가는 김에 어머니와 아버지도 같이 가면 좋지 않을까 해서 제안을 드려봤는데, 두 분 모두 매우 ‘조심스럽게’ 거절하셨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경증 치매인 할머니를 한 분씩 모시고 있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강한 애착과 자부심을 갖고 있던 직장도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기로 하셨고, 명예퇴직을 알리며 안부전화를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메마른 아쉬움과 쓸쓸함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동생과 나는 갈 만한 곳은 거의 다 가봐서 딱히 멀리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장문의 메시지로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믿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간만에 어린 친구들과 놀아보게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봐야겠다고, 괜히 눈치 없는 척 답을 하면서 말이다.


양양 여행은 출발일보다 한 달도 전에 결정되었지만, 서울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차표는 몽땅 팔려나가고 없었다. 스크롤 내내 새빨갛게 [매진] 글자를 줄세운 코레일톡과 차편 검색도 되지 않는 고속버스 어플리케이션을 허망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차표가 이 지경이면 숙소도 없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아니나다를까 숙소는 고르고 말 것도 없이 한 군데만 남아있었다.)


다른 방법이 없을지 머리를 더 굴려보다가 서울→대구(KTX)→양양(비행기), 양양→대구(비행기)→서울(KTX)라는 아름다운 쐐기꼴 경로로 움직이게 되었다. 동선을 짜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옛말에도 있잖나. 새옹지마라고. 결과적으로 이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서울역을 숱하게 다녔지만 이만큼 북적이는 걸 정말 얼마만에 봤는지 모른다.

역과 터미널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했던가. 삶의 절반을 뜨내기로 살고 있는 나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보면 묘하게 마음이 즐겁고 편해진다. 몇 주만에 찾아간 서울역은 가히 코로나 시대의 어떤 명절보다도 북적이고 있었다.

맥도널드와 파리크라상 밖으로 끼니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 것도 오랜만에 보았고, 탑승구 앞 계단에 엉덩이 붙일 곳이 없도록 사람들이 앉은 것도, 대합실 의자 앞뒤로 사람들이 크고작은 트렁크를 끼고 앉아 저마다의 차편을 기다리는 모습도 반갑고, 낯설고, 가슴 벅찼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온 거야?


업체 여덟 군데를 수배하고도 렌트카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양양 여행에선 사치스럽게도, 모든 이동을 택시로 해결했다. 택시비가 비싸기는 했지만 기사분들의 치고 빠지기 기술이 상당히 좋아서 전혀 불쾌하지 않게 관광할 수 있었다.

유월 사일 오전부터 서울을 출발한 차들은 한참이나 강원도로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 평소 두 시간이면 왔을 거리가 여섯 시간, 일곱 시간 거리로 늘었다더라며. 도대체 누가 ‘우리’ 렌트카를 다 빌려갔나 했더니 서울에서 놀러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나도 고속버스 표를 사서 왔더라면 동생이 강원도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했겠지. 이래서 사는 건 새옹지마다.



덜컥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던 주문진 바다.


“인천 바다요? 비교가 안 되죠. 동해는 물부터 다르잖아요.”, 적당한 오지랖과 선을 넘지 않는 제안, 외지인들이 잘 모르는 양양의 명물 이야기와 숨은 명소, 택시 기사가 알려주는 ‘택시비 아끼는 법’까지. 네 번째로 탑승한 택시에서 우리는 다시 ‘비 바라기’를 들었다. 기사님은 소일거리 삼아 심은 상추들이 빗물을 못 받고 죄다 타버렸다며, 작물 심기를 포기하고 텅 빈 채 내버려둔 밭들을 보시라고 못내 안타깝게 탄식을 하셨더랬다.

축축한 바닷바람과 내리는둥 마는둥 한 여우비에 눅눅히 젖은 우리는 끝도 없는 바다를 오른편에 끼고 가물어 큰일이라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누었다.



동글동글 귀여운 양양 체리는 생자몽을 좋아하는 조셉의 입에는 딱. 동생은 이가 시려서 못 먹겠다고.


마침 장날이라 찾아간 양양시장. 양양여성협동조합이 만드는 양양샌드를 구입하고 시장을 둘러보았다. 시큼한 맛이 일품인 양양 체리와 시장에서나 맛볼 수 있는 국자 냉커피로 정신을 번쩍 깨웠다. 맛있어보이는 배는 네 알 만원이라고 되어있는데, 내가 물 많은 과일을 싫어해서 동생이 혼자 먹어야하는지라 네 개까지는 좀 많다. 고민하는 동생에게 “시장인데 쇼부 쳐봐.” 찔러보았다. 숙소 냉장고에는 배 두 알을 넣어놓게 되었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숙소는 가장 가까운 편의점까지도 자전거로 십 분을 달려야하는 곳에 있었다.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길목 양옆으로 무논과 대파며 옥수수가 심긴 밭이 늘어져있었고, 옆집에서는 경계심 많은 개와 닭이 번갈아 우짖었다.


몇 시간을 앉아있어도 차 다니는 소리 하나가 들리지 않았다. 뻐꾸기가 이따금씩 우는 사이 호스트님이 말한 길고양이가 제집처럼 숙소 앞을 왔다갔다했다.

온 사방이 무척 조용한 게 아니라, ‘너무’ 조용했다. 메밀꽃이 서로 몸을 부비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릴 정도로. 



훤한 낮처럼 보이지만 오후 여섯 시 반이다. 페달 열심히 밟아 핸들에 걸고, 등에 이고지어 온 이른 야참상.


하조대까지 페달을 밟아 옥수수 막걸리와 치킨 한 마리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같이 나눈 이야기들은 사실, 집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나 화물차 지나는 소리, 경적 소리와 담 큰 폭주족들이 새벽을 깨우는 소리가 가득한 도시에서는 못 느껴볼 감흥에 젖고 보니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세 질리고 새로운 자극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야할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도외지는 짜릿한 자극이 된다.

대기번호가 사오십 번을 넘어가는 맛집은 못 가봤지만 아무렴 어떤가. 양양 BBQ는 서울 BBQ랑은 다르다.


주일 미사는 꼼짝없이 건너뛰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다리 하나 건넌 곳에 쉰 명이나 들어가려나 싶은 작은 성당이 하나 있었다. 미사 참석자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무애한 수평선을 눈에 담아 가뭄을 달래고

지난 달 업무 차 사전 인터뷰를 하러 인터뷰이를 찾아갔을 때, 마침 그분도 양양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시기에 일은 잠시 제쳐두고 각자의 여행 계획을 떠들었다. 왜 양양이 목적지냐는 질문에 나는 아마도 바다일 거라고 대답했고, 그분도 바다를 향한 묘한 애착을 말했다.


“내륙 사람이라서 그런지 아주 갑자기, 불현듯이 바다를 보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강도 안 되고 호수도 안 돼요. 무조건 바다로……. 바다가 아니면 안 되는 때.”


나는 꼼짝 없이 도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따금씩 꼭두지른 빌딩이 사위를 가득 메운 이곳이 무척 건조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진다. 이곳을 무작정, 어떻게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어쩌면…….
문득 그만 가물어야한다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조금 울적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달랑 1박 2일의 여정인데도 오래 묵은 답답함이 씻겨내려갔다는 이 후련함, 역시 해갈이 아닐는지.


대구공항에 내렸을 때는 오랜만에 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있었다. 대구공항을 향해 몸을 낮추는 비행기 창문에 빗물이 사선으로 그어진다. 가족톡방에는 비가 온다는 어머니의 기쁜 메시지가 보였다.

집으로 가는 길. 동대구역 가는 택시를 잡아타자마자 기사님이 반은 투정, 반은 안도감을 섞은 한숨부터 내쉰다.


“아이고, 비가 뭐 인제 와갖고……. 이래 한바탕 좌아악 내리줘야될 낀데.”



부록


반년만에 찾은 낙산사에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사색에 빠진 동자 스님들을 만났다.


양양여성협동조합에서 만드는 양양샌드는 송이맛과 연어맛, 두 가지를 맛볼 수 있다. 둘 모두 꽤 맛있으니 다음 양양 갈 때는 기념품으로 잊지 말고 살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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