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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Feb 14. 2022

서른은 왜 그렇게

작년 11월 쯤 어린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떡해. 내년에 저 30이에요. 진짜 미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은 올해 스물아홉으로, 연휴 중 생일 선물을 골라보라 했더니 “내 진짜 서른 되면 어떡할지 모르겠다, 언니야.” 엉뚱한 대답을 했다. 그리고 서른이 되었을 때 나는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기분이 어땠는지, 정말 슬프고 초조하고 묘하게 쓸쓸했는지. 


그랬나? 서른 살이 되는 해 나는 어땠더라.

해가 뜨고, 달력이 바뀌었고, 그 외에 다른 건 없었다. 하던 대로 커피를 마셨고 좋아하는 책을 읽었으며 인터넷 쇼핑몰을 한참 구경하기도 했다. 서른 살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제까지 있던 그런대로 좋은 하루가 서른 살의 첫 번째 날에도 그대로 반복된다. 


여전히 딴 소리 없이 나이 들면 ‘벌써 우리랑 이만큼 살았냐. 고맙다.’고 축하해주는 가족들.


스무 살이 될 때는 일종의 해방감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서른 되면 죽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안 죽고 잘 살아있다.) 미성년자였다가, 성인이 된다는 게 처음에는 그렇게 상쾌하고 좋다가 문득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어제까지 미성년자였다가 오늘 법적인 성인이 된 나는 뭐가 그렇게 달라졌는지 말이다. 단 하루만에 나는 어른이 되었을까? 썩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어른이란 무엇인가.

서른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번듯한 어른이 되어야지.’, ‘가정을 가지고, 평생을 생각해볼 직장에 정착해야지.’ 누가 정했는지도 모를 여러 가지 어른의 충분조건들 때문이다. 앞자리가 3이 되면 이제는 나도, 남도 나의 실수를 용납해줄 수 없는 나이인 것 같다. 그럴까?


시간이 지나자 ‘대출 서류를 준비해봐야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른이란 무엇인가.

그게 충분조건이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서른은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두 분께 여쭤보면 그때 우리가 어른이라서 가정을 가지고 정착했던 건 아닌 것 같다고 하신다. 어른이 언제 되는지는 몰라도 몇 살, 몇 살을 기점으로 오는 건 아닌 거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친구는 요즘 구직 중이다. 결혼 후 아이를 가지면서 일을 그만두게 된 몹시 자연스럽고 하많은 케이스 중 하나다. 아직 미혼인 나와 아이 이야기, 커리어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엔 서른이라고 어른일 필요가 없지 않냐.”고 한다. 조심스럽게 덧붙이는 말은 ‘변명 같겠지만.’이다. 

도대체 뭘 변명한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일찍 결혼해서 귀여운 아이도 있으니 환갑 때 돈 봉투 말고는 가지고 갈 게 없는 나보다 부모님께 보여드릴 게 많다. 


나는 나이를 먹을 때마다 축하받고 감사받았다. 무사히 스무 살이 되어줘서 고맙다. 벌써 스물여섯 살이 되었구나. 그런데 유독 서른 살이 되는 해만 ‘아유. 너도 결국 이렇게 서른이 되는구나.’라는 구슬픈 축사가 오는 까닭은 왜일까. 



“저 내년에 서른인데 뭐 준비해야할 거 있을까요?

뭘 해놔야할까요? 조언 좀 부탁해요.”


“없다.”

답을 생각하기 귀찮아서가 아니라 정말 없다. 20대에 하면 안 됐던 일은 30대에도 하면 안 되고, 30대에 하면 안 되는 일은 그때도 안 하는 게 맞다. 저축 많이 해두어라, 여행 다녀라, 아프면 미루지 말고 병원에 가기, 밤 새지 말기, 밤 새서 실컷 놀기(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꼭 30대가 20대에게 해야 할 조언인가 싶다. 왜냐하면 저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지금 40대에게 듣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 지금도 계속 해야한다. 아프면 병원을 가는 게 맞다. 장담하는데 내가 마흔이 될 무렵에는 오십 대가 나에게 저 당연한 조언을 해주고 있을 것이다.


서른이 되어서, 서른 살이라는 사실이 우울한 게 아니라 그때 즈음해서 자조적인 성찰을 해보니 그런 거 아닌가. 가엾은 서른에는 죄가 없다.


단언컨대 나를 가장 우울하게 만든 건 서른 살 생일이 아니라 편도 1시간 50분에 신도림역 환승을 끼고 있던 출퇴근길이었다. 감염병으로 사람을 못 만나는 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방으로 뛰쳐가도 21시에 임박하는 하루에 취미생활도 문화생활도 운동도 죄다 뒷전이 되었다. 놀러가고 싶어서 이불 덮고 누워 울어본 적이 있나. 나는 꽤 자주 울었다. 어디 가고 싶어서……. 


신도림역이 나를 이렇게 미치게 만드는데 서른살 까짓게 다 뭔가.


서른을 앞둔 나의 동생에게.

해야 할 조언, 없다. 해줄 말, 생일 축하한다.


일신우일신 좋지만 그렇게 계속 새로워지다가는 사람이 아니라 반도체가 될 것이다. 쥐도새도 모르게 일신하자.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고, 크게 더 못할 것도 나을 것도 없는 나의 시간에 더해. 

열아홉 살과 스무 살의 경계가 별 거 아니었듯이, 나의 서른 살 첫 날은 스물아홉 살의 마지막 날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서른아홉 살 마지막 날이 마흔 살 첫 날과 그리 다르지 않기를 바란다.



서른 살이 된 해 겨울, 어머니와 동생. 세 모녀가 함께 바다가 잘 보이는 해운대의 호텔에서 일출을 보았다. 서른을 맞이하는 이들의 생일을 함께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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