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셉 Feb 05. 2022

갓생까진 말고

그냥 좀 잘 사는 인생


“갓생이 무슨 말이니?”

“시간 허투루 쓰는 거 없이 공부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부지런히 사는 거예요. 외국어 공부나 자격증 공부하면서 자기계발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직장 생활도 하고…….”

“갓은 뭔데?”

“신요. ‘God’ 말이에요. 되게 좋은 걸 표현할 때 붙이는 말이에요.”

“그게 갓생이냐? 그냥 사는 거 같은데…….”


공직자인 부모님, 마찬가지 공직자인 동생은 ‘회사’의 업무 방식에도 조금 모호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소위 ‘요즘 것들’에도 많이 느린 편이다. 그나마 부모님은 업무환경의 특성이 있어 요즘 것들을 자주 접하기는 하지만, 접하는 것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건 좀 다른 문제인 모양이다. 세 사람 모두 처음에는 새로운 것들을 찾아야하고, 참신한 것들을 떠올려야하며,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궁리해야하는 업무를 듣고는 그렇게 어떻게 평생을 사냐고 되물었지만(공직에 도전해보라는 은근한 권유이기도 했다.) 요즘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고 이해해보려고 한다.


그러게, 나도 잘 모른다. 어떻게 평생을 살는지.




“그게 갓생이냐?”

요 며칠 회사 내부에서 화제가 되었던 건 갓생살기다.

‘갓생’ 같은 건 아무래도 연령대가 20대 초반까지 낮아져야만 먹히는 키워드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작업을 마치고 노출해서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30대인 나도 작년 말에 2022년 갓생살기 목표를 세 가지 세웠다.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동시에 사주명리에 무척 신경을 쓰는 분이시고, 복이 반사되어 나가니까 현관에는 거울을 두지 않으려 하시며-복이 반사되는 성질인지는 모르겠으나.-, 천둥이 크게 치면 하늘이 노한 것이니 다들 착하게 살아야한다고 당부하시고, 쥐가 나면 입으로 야옹 소리를 내신다.

아버지는 친구를 사귀려고 가톨릭 신자가 된 분으로 신앙심의 발로보다는 커뮤니티 생활을 즐기려는 속물적인 목적으로 성전에 들어갔다. 미신 같은 건 전혀 믿지 않고, 가끔 어머니가 밤에 손발톱 깎으면 안 된다고 걱정하시면 십 분쯤 손톱과 귀신과 영체의 청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신다.


두 분은 사람의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할 수 있는 만큼 해서 되면 뿌듯하고 안 되면 아쉬운 것, 그만하면 사는 거라고 한다. 그렇게까지 잘나야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까지 돈이 많을 필요도 없다고. 그게 육십 년을 살며 느낀 부모님의 깨달음이든, 일종의 위안이든 새삼 갓생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자니 뭐가 ‘갓생’인지는 말하는 중간부터 점점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왠지 부모님이 하루종일 일 분도 낭비하지 않고 공부하고 운동하고 일하는 걸 갓생이라고 이해하신 듯하여, 같이 듣던 동생도 거들었다. ‘잘 놀고 쉬는 것도 잘해야 갓생이에요.’ 오해는 더 커진 것 같았다. 그냥 쉬는 건데 잘 쉬는 건 뭐고 잘 노는 건 뭐냐신다. 주말에 피곤해서 2시까지 자면 갓생이 안 되는 거냐고 물어보시길래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조셉도 갓생 살려고 하는 거냐?”

“그러고 싶죠.”

“카타리나도?”

“저도 뭐…….”


동생이 인스타그램을  갓생을 이해하기 쉬운 예시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어머니가 ‘요샌 사람들 참 희한한 걸 한다.’ 하고 웃는다. 호응은 해주시는데 썩 와닿지는 않으시는 듯하여 아버지를 봤더니 다른 질문을 하신다.


“갓생 살면 뭐가 좋으냐?”

“그냥 뭐 보기 좋죠. 저도 뿌듯하고 성취감도 있고.”

“계획 세우고 실천하고 자격증 따고 좋은데 그거 또 그렇게까진 하지 마라. 사람이 인생이지, 그냥 좀 잘 살면 되는데 뭘 갓생까지 사냐.”


감자샐러드맛 어썸에 어머니가 좋아하는 포카칩 어니언맛 한 봉지, 각자의 앞에 칭따오 맥주 한 캔씩을 놓고 떠들다가 아버지의 ‘그렇게까진 하지 말라.’의 ‘그렇게까지’를 생각한다. TV에서는 맛녀석 멤버들이 앉아서 콩나물국밥을 먹고 있다. 그냥 잘 사는 인생이면 됐지 무슨 갓생까지 사냐고, 사람은 주제에 맞게 인생을 살아야 속이 편하다고 하신다. 너무 못 사는 것 같아서 부끄러우면 좀 잘 살아서 그럭저럭 자랑하면 됐다고.




그렇게까진 하지 마라.


나는 거의 매일 부모님과 전화를 하는데, 부모님이 빠지지 않고 물어보시는 것이 있다. 요즘 재미있냐고.


일하다 해 넘어가는 것을 보면 카메라부터 든다. 정신 차리고 보니 벌써 이 시간이구나! 오늘도 꽉 채웠네!


그 때마다 늘 재밌다고 한다. 일이든 사는 것이든, 사람이든.


힘들어도 일은 재미있다. 낯선 분야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자료를 조사하다보면 신기한 것이 많아서 즐겁다. 사는 게 재미있다. 신년 다이어리를 고르는 중인데 종류가 많아서 고민이 길어지는 것이 좋다. 갑자기 로제떡볶이 생각이 나서 가장 가까운 분식집을 간다고 800m를 걷고 있는 중인데, 처음 포장주문한 집이라 기대된다. 공백기가 길었던 친구가 취직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줘서 두 시간이 넘게 전화로 떠들었다.

그런가하면 아침에 일어나는 게 유독 싫은 날이 간혹 있고, 힘들어서 친구나 애인에게 불평을 털어놓고 싶을 때, 얼굴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SNS에 속풀이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매번 낙첨되던 로또가 5천원이나 맞아서 커피값이 굳는 행운이 오기도 한다.

그런대로 즐겁고, 가끔 속상하고, 적당히 벌고, 조금 비싼 것은 열심히 저축해서 사는 그냥 좀 잘 사는 하루…….



서울로 돌아오는 KTX 안, 가방 안에 챙겼던 마케팅 도서를 책받침 삼아 다이어리를 편다.

그리고 올해 갓생살기 목표 중 하나였던 ‘반 년 25권 독서하기’를 좀잘생살기 목표로 슬그머니 수정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빈 냉장고를 변호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