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팔 년 전 학교를 다닐 때는 매일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주로 조림한 야채나 구운 채소를 준비해 찬거리로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냉장고 안에는 대체로 손질한 과채소들과 맛간장이 들어있었다. 간장 특유의 쿰쿰한 냄새나 식초 냄새가 한참이나 냉장고에 배어있기도 했다.
간혹 본가에서 사과를 십 킬로그램씩 보내주어(혼자 사는데…….) 냉장실 아래위 칸이 발갛고 매끈한 사과알로 그득하기도 했다.
사블레나 스쿱 쿠키, 스콘, 파운드 케이크처럼 특별한 기술 없이 만들 수 있는 티푸드는 직접 구워 먹었다. 한쪽 구석에는 분량에 맞게 미리 잘라놓은 버터와 생크림, 초콜릿칩이 들어있는 때도 있었다.
이따금씩 친구들이 방에 와 냉장고를 보고는 사람 냄새가 난다고 했다.
비인간적 캐릭터나, 정서적으로 메말라버린 사람, 여유가 없어 소위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의 공간에는 빈 냉장고가 일종의 상징처럼 자리잡고 있다.
장면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두침침한 방, 적막 속에 우두커니 놓인 냉장고 안에는 생수만 채워져있거나, 술병이 가득하기도 한데, 그 장면을 보노라면 그의 현실 내지는 그 인물이 무척 냉혹할 것이라는 연상을 할 수 있다.
지금 자취방의 냉장고는 좋게 말하면 미니멀하고, 나쁘게 말하면 든 게 없다.
아니나다를까 냉장고를 본 친구들이나 애인은 삭막하게 이게 뭐냐고 안쓰러워하기도 하고, 반찬 좀 보내줄까 하는 감사한 오지랖을 보이기도 한다.
왜 빈 냉장고는 외롭고 서글픈 정서를 부를까?
사실 이 황량한 냉장고도 내가 쓸쓸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냉장고가 가득찰 일이 없는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냉동 도시락을 잔뜩 사놓고 데워먹는 건 끼니 생각도 못할 만큼 사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서이고, 문칸에 물 한 병밖에 없는 건 생수를 구입할 때 세 병 이상 사지 않기 때문이다. 쌀을 먹지 않으니(밥솥도 없다.) 식사빵은 적당량을 구입해 1회분씩 잘라 냉동실에 둔다. 야채와 과일은 하루이틀 안에 먹을 수 있는 양만 사서 바로바로 먹으니 남는 것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냉장고가 이리 된 까닭은 설명하지 않으면 나만 아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께는 못해도 이틀에 한 번 전화하고, 화상통화로 얼굴을 비추곤 한다. 할 이야기가 그만큼 있냐는데, 점심으론 무엇을 먹었고, 새로 생긴 가게의 음식이 어땠으며, 얼마 전 산 원피스를 입고 갔더니 동료들이 예쁘다고 해주더라, 아침에 늦잠을 잤다 정도의 이야깃거리면 충분하다. 본가 쪽에는 눈이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눈이 온 날마다 화상으로 눈이 내린 풍경을 보여드리기도 한다.
어머니가 냉장고를 보고는 하시는 말씀. “아유, 깔끔하네.”.
어째 어머니는 삭막하다 소릴 안 하신다 했더니 뭐 먹고 지내는지 아니까 그렇단다. 그제야 퍼뜩 머릿속에 스치는 게 있다. ‘사람 냄새가 난다.’고? 텅 빈 냉장고가 사람 냄새가 적은 이유가 따로 있을까. 빈 냉장고가 외로워보이는 건 내가 그의 삶을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모르는 사람의 빈 냉장고를 보니 이것저것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에게 식사도 잘 챙겨먹기 어려운 사정이 있겠지.’하고 말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한 번쯤 이렇게 내가 혼자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를 고민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별안간 쓰러질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 그때 내 방에 찾아온 타인들은 이 방을 보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하고, 조립해보는 것이다.
그 냉장고를 쓸쓸하게 만드는 건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라서일지도 모른다.
내 방 냉장고에 대한 변호는 말하자면, 저녁 시간마다 했던 전화가 대신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