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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Oct 27. 2023

초전도적 예술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사> Vol.3 투고글

  8월 마지막 날을 맞아 이번 달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가만히 돌이켜본다. 날이 몹시 더웠고, 한편 비가 길게 내리기도 했다. 좋고 나쁜 소식도 하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8월 초중반 나와 내 친구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가장 ‘핫’했던 주제는 단언컨대 상온 초전도체 발견이었다. 우리 사이에서만 화젯거리가 된 것도 아니다. 동네 카페, 회사, 음식점, 뉴스와 잡지, 블로그며 유튜브까지 눈에 보이는 곳마다 온통 초전도체 이야기로 술렁였다.

  나와 친구들은 뉴스와 유튜브에서 설명해주는 내용을 몇 가지 들어보다가 이 신비의 물질이 ‘아무튼 대단하고 혁신적이라 좋은 것’이라는 두루뭉술한 개념만 가진 채 사태를 즐겼다. 나나 친구들이나 전도체에 대한 지식은 초등학교 내지는 고등학교 교육과정 이후로 전혀 업데이트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게 거기는 왜 적혀있는 대로 안 해서 이상한 걸 만들었대?”


  우리는 마치 스포츠 경기 중계라도 보듯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소식과 먼 나라 연구실의 발표를 보며 잘 알지도 못하는 물질과 실험에 대해 왈가왈부했다. 실험이 계속되며 ‘독특한 물질이긴 하지만 이것이 초전도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다른 증거가 더 있어야 하고, 그 전까지 이 물질은 역사상 수도 없이 많았던 ‘자칭’ 초전도체일 뿐이다.’는 쪽으로 결론이 기울어지기 시작했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이 해프닝이 받은 주목과 기대는 어마어마했다.

  커뮤니티와 SNS도 온통 상온 초전도체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아무튼 상온 초전도체라는 게 잘 개발되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산재한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고 실험을 응원했다. 누군가는 그 사이 큰 돈을 만져볼 기회라며 주식장을 찾아보며 실험의 성공을 빌었고, 누군가는 마침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는데 이 기술로 우리가 떼돈을 벌면 불로소득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게 될 지도 모르니 꼭 검증에 성공하면 좋겠다고도 했다. (후자는 검증의 성공 여부 자체에 대한 궁금함보다는 일단 퇴사를 하고 싶은 욕구가 더 커보였다.)


  하나의 현상을 보고도 창발은 수없이 분화한다. 그런데 실험의 결과에는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만 존재한다. 실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퍽 가치 있는 발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여하간 결과는 둘 중 하나뿐이다. 

  실험이 실패하는 원인은 일단 하나다. 무언가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의 실험은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가 쉽지 않다. 


  세상에는 양자택일로는 선택할 수 없는 가치가 너무도 많다. 맞거나 틀리거나를 판단할 때보다 내가 생각하는 ‘맞음’에 더 가까운 것과 내가 생각하는 ‘틀림’에 더 가까운 것을 판별하는 과정이 더 자주 일어난다. 시험지도 매번 ‘가장 옳은 것을 고르라’고 하지 않던가. 





  작년 겨울, 고향에 있는 동생에게서 서울에 올라가겠다는 연락이 왔다. 어쩐 일이냐 하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 전시를 보고 싶단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그렇게 유명하다고……. 찾아보니 전시작 중 <원탁>이라는 작품이 꽤 화제였다.

  별안간 ‘핫플’이 된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연 전에 없이 많은 관람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입소문을 탄 작품 앞에 서서 잠깐 카메라를 들었다가, 조용히 작품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지푸라기 인형들이 공을 얹은 원판을 등에 지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단순한 동작이 이어졌다.


최우람, <원탁>, 서울현대미술관(MMCA) 서울관, 2022.10.08


  5분 남짓한 퍼포먼스를 보고 난 뒤 나는 ‘동그란 공을 지키기 위해 지푸라기 인형들이 번갈아 쉬었다 일어섰다 하며 공이 떨어지지 않게 받치고 있다.’고 해석했다. 동생은 ‘동그란 공을 너도나도 가지고 싶어 지푸라기 인형들이 서로 경쟁한다.’고 생각했고, 옆에서 보던 사람은 “공을 가지고 싶으면 오히려 자세를 낮추어야 하는구나.” 하고 탄성을 질렀다. (작가의 실제 제작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검색해보기를 바란다.)


  같은 작품을 보고 감상은 수없이 분화했다. 이 가운데 ‘잘못’ 해석된 것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 과정은 실패라는 결과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실험이 실패하려면 무언가가 잘못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멋대로 한 상상은 잘못이 없다. 애초에 우리는 너무나도 불확실한 존재다. 옛말에도 이르길,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 않나.


  예술은 항상 불확실성을 상대해야 한다. 불확실성을 상대하는 방법은 맞서기일 수도 있고 포용과 조율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 어느 한 가지 방법을 이용하도록 통제하고 압박하지도 않는다. 예술은 그 과정과 결과물에 대해서는 자신의 신념, 경험, 목표나 비전에 기반한 다양한 해석과 정력적인 논쟁을 장려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어도 이 전제만큼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예술 앞에서 우리는 의견이 불일치하는 경우를 받아들여야 하고, 서로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초전도체는 전류에 대한 저항이 전혀 없는 완전한 도체를 말한다. 한 번 초전도체에 전류를 흘려주면, 초전도체에 흐르는 전류는 영원히 감쇠하지 않고 지속된다. 도체에 저항이 없으니 전류가 긴 거리를 이동해도 같은 에너지를 간직한 채 그대로 도착점에 도달할 수 있다. 다만 이 신비로운 물질은 대단히 낮은 온도에서, 혹은 대단히 높은 온도에서 극히 어렵게 구현된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상온 초전도체는 개발에 성공만 한다면 인류사의 커다란 족적이 될 것이라 하지만 학계 관계자나 평소에도 해당 기술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이 발견이 어느 만큼 대단한 것인지 뚜렷하게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결론이 무엇이든 상온 초전도체라는 주제를 둘러싼 막연한 희망과 기대감이 요 한 달간 우리를 들뜨게 했다. 수많은 실험 과정을 보며 과학기술의 전문가도, 직접적인 관계자도 아닌 우리는 안암역을 오가는 간선 버스가 호버크래프트가 되는 상상을 하고, 비싸서 구매하지 못했던 그래픽카드를 아메리카노 한 잔 값에 구매하는 희망찬 미래와 불로소득의 꿈, 일확천금 떼부자의 전망을 그린다.




  실험 예술은 누구의 잘못 때문에 실패하는 실험이 아니다. 작품은 거기에 놓여있을 뿐이고, 실험을 진행하는 대중에게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 평단의 찬사이든, 인스타그램의 주목이든 원하는 결과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을 것이다.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물질의 실험이 수만 가지 상상과 기대, 희망으로 우리의 일상을 채웠듯이, 다양성이 전제된 실험 예술은 무궁무진한 창발과 수만 가지 가치를 용인하는 순간을 만든다. 이 순간의 축적이 저항 없이, 어떤 시대와 공간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간직한 채 도달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만든다. 포용과 인정이 전제된 실험 예술은 실패하지 않는다. 비예술인들에게도 실험예술은 어떤 의미로 우리를 행복하게 할 ‘무한한 상상’의 계기다.

  바로 이것이 예술과 실험이 모두 필요한 이유다. 나는 우리의 상상과 희망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은 서울문화재단 서교예술실험센터의 프로젝트, <서사> Vol.3 [실험예술] 편에 실린 글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다른 필진의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seos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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