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셉 Jun 26. 2024

오래된 하굣길

17년지기 동성의 친구와 연인이 되었습니다.

17년 만에 둘이 함께 하교했다. 

곤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너와 하교했던 시간이 내 삶의 큰 위안이었다.’고 했고, 나는 어렴풋한 그 기억을 행복과 위로로 되새겨준 곤에게 깊이 감사했다. 나에게 너무도 일상적이었던 그 길이 누구의 긴 위로가 되어 상처받고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게 도와주었다니 그런 기꺼운 우연이 어디에 있나.

나는 걷는 것이 좋아서 학교에서부터 집까지 걸었고, 곤은 교통비를 아끼려고 학교에서부터 집까지 걸었다. 이유야 어떻든 가는 길이 같은 덕분에 반이 달라도 곤과는 제법 친해질 수 있었다.


그때를 분명하게 기억하는 곤은 20~30분 남짓한 귀갓길에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고 했다. 당시의 나는 지금처럼 살갑지 못해서 말이 그리 많지 않았고, 곤도 내가 아주 막역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때라 이야깃거리랄 게 별로 없었단다. 


그런데 희미한 그 기억 가운데 두 사람이 명확하게 기억하는 순간이 있다. 

언젠가 교과서에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실렸던 적이 있는데,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는 구절이 몹시 유명한 바로 그 시다. 곤과 함께 귀가하던 길 음식점 앞에는 허옇게 다 탄 연탄이 쌓여 있었는데, 딱 우리가 걷는 길목에 주먹만한 크기로 깨진 연탄이 굴러다니고 있었던 거다.


갑자기 곤이 후다닥 뛰더니,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하고 허연 연탄을 뻥 걷어찼다.


다 타서 힘이 하나도 없는 연탄재는 폭죽처럼 공중에서 터져 휘날렸고,

나는 귀신이라도 들린 듯이 숨 넘어가게 웃기 시작했다.


곤이 항상 말하는, ‘조셉이 그렇게 큰 소리로 웃는 걸 처음 봤어. 계속 웃게 해주고 싶었어.’의 순간이었다.


교제를 시작하고 나서도 한 번씩 대구에 내려가면 그 길을 걸어보자고 했다. 그 때 우리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갔지만, 이번엔 학교 근처 괜찮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보자고. 


대구에 몇 번인가 함께 내려갔지만 막상 그 길을 다시 걷게 된 것은 내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한 이후였다. 당연하지만 어머니의 반응이 그리 좋진 않았다. 난생 처음 듣는 어머니의 울분 섞인 목소리를 듣고 심란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소식을 궁금해하던 곤도 나와주었다. 

중학교 앞에서부터, 다시 집으로. 우리 집까지 걷는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뭐랄까, 그렇게까지 온몸이 꺾일 만큼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까먹으면서 어수선한 속내를 두서 없이 꺼냈다.


“그땐 거리가 꽤 됐던 것 같은데, 지금은 뭐 금방이네.”

“그러게. 아이스크림 다 먹기도 전에 도착했네.”

“다음엔 술 한 잔 하고 걸어보자.”


오래된 하굣길 위에 다시 선 나는 세상도 부모님도 그리 밉지 않았다.

단지 그 먼 추억을 같이 걸을 사람이 있다는 게 막연한 위안이 되었다.



중학교 때 나는 대부분의 내 또래들이 그랬듯 다소 어둡고 우울한 감상에 빠져있었다. 고작 십오 년을 살았는데 삶에 대한 회의는 왜 그렇게 많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 무렵 나를 제일 괴롭게 했던 것이라 해봐야 시험 점수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는 것 정도였을 텐데, 시험이 어렵게 느껴지는 게 왜 세상을 그토록 원망할 이유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세상이 밉지는 않다.

다음 하굣길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그때 약속했던 대로 술 한 잔 하고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커밍아웃 로그 00. “언제부터 여자를 좋아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