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로그 00. “언제부터 여자를 좋아했어?”
17년지기 동성의 친구와 연인이 되었습니다.
커밍아웃할 때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꽤 여러 번 들어본 질문이고, 심지어 지금 애인에게도 들은 질문인데, 질문이 좀 바뀌어야한다.
“언제부터 여자‘도’ 좋아했어?”로.
[그런] 경우의 수는 없는 삶
26살까지 남자친구만 있었다. 지금 곰곰 생각해보면 남자친구만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사귀면 당연히 이성과 사귀는 거고, 그 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행위를 꺼리거나 하기 이전에 그런 행위를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러니까, 나도 성소수자일 수 있을까?라는 다음 단계의 생각 자체를 애초에 한 일이 없는 주류의 삶을 살았다.
친구나 가족들, 동료들과 애인 이야기를 하면서 저 사람 애인이 동성일 수도 있다는 발상을 해본 적이 없다. 당연히, 이성의 연인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여자도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26살 막바지, 내년의 대학 마지막 학기를 기다리고 있던 무렵이었다. 교양 수업을 듣고, 외부 활동을 하다 보면 대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인연은 꽤 많은데, 이때 만난 ‘친구’와 꽤 가깝게 지냈다.
맛집이 있다고 하면 둘이 같이 찾아가 메뉴판 도장깨기를 하고, 예쁜 소품이 많다는 편집샵이 있으면 약속한 것처럼 같이 놀러갔다. 자취방에서 맥주와 과자를 까놓고 영화를 보기도 했고,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들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놀이공원도 함께 갔고, 장래에 관해, 가족에 관해 고민거리가 생기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집에 놀러 가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대학 친구도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구나.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동네 맛집에서 꽤 기분 좋게 취하고, 시간이 늦어 내 자취방에서 친구가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아침 차 타고 가면 되지 뭐. 여기까진 평소와 그다지 다를 것도 없었다.
그런데 좁다란 침대에 누워 좀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는 술기운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입을 맞추더니, 네가 좋다고 했다. 사귀고 싶다고.
당황했지만……. 당황한 까닭은 술에 취한 친구가 내게 입을 맞췄기 때문이지 그 친구가 동성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알겠는데 나 취한 사람한테 이런 얘기 안 듣고 싶어. 일단 자. 자고 술 깨고 얘기해.”
내 대답을 뭐라고 생각한 건지, 친구는 등을 돌린 채 미안하다고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고민을 털어놓다 서로 엉엉 운 적은 있어도, 친구가 이런 식으로 우는 건 처음 본다. 나는 좀 불편한 마음으로 옆에 누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친구는 가장 먼저 나에게 사과부터 했다. 술김에 무례한 짓을 한 것 같다고.
혹시 그때 했던 이야기도 술김이냐 하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나랑 사귀고 싶다고?”
“응.”
머릿속으로 친구였던 우리가 연인이 되는 모습을 짧게 상상해보았다.
딱히……. 지금과 다를 것 같지 않은데. 좋은 친구이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관심사나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음 맞는 사람과 연인이 되는 거라면 나쁘지 않다. 소개팅으로 만난 상대는 오히려 모르는 것 투성이이지 않나. 오히려 좋은 일인지도 몰랐다.
몇 가지 고민에 친구의 성별이 개입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 그러자.”
여자‘도’ 좋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렇게 맥없이 증명됐다.
[그런] 경우의 수일 가능성
우리는 ‘있다’는 인지조차 안 되고 있어서 때로는 편하고 때로는 외롭다는 말. 무슨 소린지 이제는 안다.
회사에 여자친구의 사진을 둔 적이 있다. 몸의 윤곽이 다 드러나는 사진을 걸어두어도 누구냐는 질문에 애인이라고 답하면 “남자친구 잘생겼다.”는 답이 돌아온다. 우리라는 경우의 수는 애초에 검토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편하고, 때로는 외롭다.
간혹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나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여자랑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자그마치 27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여자가 나의 선택지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않고 지냈다. 그런 경우의 수는 나의 관념 속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상대의 성별이 어떻든 그 성별을 타서 사람을 사랑하고 말고를 가리는 성향은 아니라는 걸 안다.
누군가는 동성의 만남을 껄끄러워하거나, 미워할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성별’이라는 개념이 만날 사람을 정할 때 개입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연인도 내가 사람을 사랑할 때 성별을 괘념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제부터 여자를 좋아했냐 묻는다면 그건 알 수 없다.
언제부터 사랑할 수 있었는지는 나도 스물일곱이 될 때까지 몰랐다.
좀 늦게 알게 된 건데.
나는 여자도 좋아할 수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