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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예리 Jan 11. 2024

마음에 하늘나라가

7. 괭이 할머니

꽃샘추위가 나가고 따뜻한 봄이 들어왔다.

밥주걱 만한 안방의 검은 자명종 벽시계가 뎅~ 울리는 여운이 사라지게 무섭게 또 뎅~ 그렇게 다섯 번을 울린다.

여느 날 아침처럼 샘터에서 아버지의 푸짐한 세수 소리와 흥겨운 양치질 소리가 들려온다. 샘터에서 안채 통로 따라 전방 대들보 기둥 향해 걸어가는 아버지의 발걸음도 흥겹다. 대들보 기둥 앞에 선 아버지는 왕문짝 상단 틈새에 껴 놓은 강목을 빼낸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문짝의 안쪽 표면 들 칸살짝 위로 추겨 올 동시 하단을 앞발로 툭 차 문턱 밖으로 떼낸다. 따라 순서대로  오른쪽  문짝은 오른쪽 안채 외벽에 왼쪽 문짝은 왼쪽 외벽에 세워 놓는다. 어머니가 안방에서 나온다. 저녁 폐점 시간마다 전방 로에 들여다 놓은 생선궤짝들, 채소단, 종류의 과일 궤짝들, 콩나무 시루, 두부 함지 등 하나씩 채소전과 생선대에 각각 제자리에 진열해 놓는다.

'엄니, 순딩이 깨워야해유.'

'오늘  굉일이잖여.'

'순딩이, 오늘 지아부지 따라 조치원장 가야해유. 어디 아파도 곰처럼 말없는 아이가 어제는 마루에 앉아 우는규. 보니께, 볼때기가 항아리손님처럼 붰더라구유. 돌덩어리 같은 흑설탕 그리 집어 먹더니 오른쪽 어금니가 새까많게 썩었더라구유.'

'그러잖아도 장날 아침이면 새벽부터 일어나는디 뭔 일인가 한 겨. 그러니까 인자 생각나네. 엇그제인게배 학교에서 와서는 어금니 아프다길래 사리돈 반 알 먹이고 반 알은 으깨서 썩은 어금니에 얹은께 괜찮은지 아무 말이 없대.'

'때워줘야 해유, 어제저녁에 엄니한테 야기한다는 게 깜빡했슈.'

'순딩아, 어여 나와! 세수 혀. 아버지 따라 조치원 치과 가야 헌디야.' 할머니가 외치며 샘터 양은 세숫대야에 물 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건넌방 이불속에서 나와 눈을 비비며 셈터로 나가 세숫대야 앞에 앉는다.

나는 까맣게 구멍 난 어금니에 벌레 머리만 내놓고 꿈틀거린다는 어른들 말에 잔뜩 겁을 먹고 있던 참이다. 요 며칠 견딜 수 없는 치통에 머리까지 아파도 소리 내 울지도 못하고 흐느끼다가 그만 어머니에게 들켰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한 모양이다.

'그렇게 아파도 말 않고... 참말로 곰, 곰이여, 고 오옴!'

전방에서 물건 진열하는 아버지의 한탄 소리가 들려왔다.

갑촌리에는 세 개의 의원과 네 개의 약국이 신작로에 자리하고 두 개의 한의원은 시장통에 자리한 오 약방과 극장 앞 광장을 마주하는 일선당 책방 옆 세탁소와 가축병원 사이에 자리한 유치원 친구, 영철이 아버지가 하는 김 약방이 있다.

나는 상행선 아침 통근열차로 조치원으로 장 보러 가는 아버지 따라 역전으로 나선다. 갑촌역은 우리 집 시장통에서 반경 200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역전으로 걸어가는 동안 아버지는 내게 아무 말이 없다. 가뜩이나 소심한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나는 침묵을 지키고 걸어가는 낯선 아버지가 정령 아버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 대합실 두 짝의 도르래 미닫이문은 양쪽으로 활짝 열려 있다. 반면 대합실 안쪽 두 짝의 개찰구 미닫이문은 아직 이른 시각인지 닫혀있다. 개찰구 오른쪽 코너 대합실에 자리한 한 평 남짓한 매점도 닫혀있다. 대합실 디귿자형 붙박이 의자에는 낯선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앉아있다. 아버지가 역 대합실 미닫이문 왼쪽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다. 매표소 상단 대문짝만한 열차 운행 시간표 간판이 붙어있다. 나는 대합실 문턱에 서서 개찰구를 등지고 역 광장 향해 바라본다. 지대 높은 역 광장 아래로 뻥 뚫린 일직선 신작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펼친 새벽녘 갑촌리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신작로 중간중간 지점에 전봇대와 누런 불빛의 가로등과 다방의 레온 사인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이때 성당의 심오한 새벽 종소리가 들려왔다.

'순딩아!'

열린 개찰구 입구에서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얼른 아버지에게로 간다. 아버지가 역무원에게 만화 왔다껍 만한 빳빳한 기차표를 내밀자 역무원이 실버 펀치개로 구멍 내 아버지에 건네준다. 아버지는 물색 봄 잠바 호주머니에 기차표를 넣으며 역 플랫폼으로 걸어간다. 앞에는 역무원 아저씨가 삼각 깃발대를 들고 열차 기관석이 정차할 위쪽 플랫폼으로 걸어가고 있다.


잠시 후, 저편 갑촌 터널을 뚫고 나오는 기관석 전조등 불빛을 드리우며 성당 뒤뜰을 휘감 반원형 선로궤선 따라 경적을 울리며 플랫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다. 플랫폼에서는 역무원이 깃발을 들고 기관석을 향해 오른쪽 왼쪽으로 흔들고 있다. 이윽고 사뿐히 플랫폼에 정착한 열차에 나는 하나, 둘, 셋, 넷 계단 밟고 오르는 기분이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나는 아버지가 앉으라는 창가 쪽 빈자리에 앉는다. 나는 아버지가 어려워 처음 기차 타는 기분도 내색하지 못한 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방황하다 억지로 시커먼 창문에 맞춘다. 나의 얼굴과 아버지의 얼굴이 창문에 비추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고개를 숙인다. 통근열차는 갑촌역보다 작은 두 간이역을 정차한 다음 역 향해 달리는 동안 날은 밝아왔다.  


통근열차가 조치원역에 도착했을 때 건너편 선로에 정차해 있는 열차의 환한 불빛과 좌석마다 씌워진 하얀 커버가 눈에 확 들어왔다. 순간 부자 사람만 타는 열차란 생각을 했다. 아버지 따라 개찰구를 나오자 조치원역 광장 주변 건물에는 아직 다방의 레온 사인과 식당을 알리는 불빛 간판이 켜져 있다. 역 광장에서 얼마나 걸어서 큰 시장에 도착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양쪽으로 길게 들어선 가게들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눈이 부시게 줄줄이 연결된 누런 알전구 불빛으로 찬란했다. 시장은 갑촌 시장통 몇 배나 컸다. 시장바닥은  온통 질퍽거렸고 생선 비린내가 왕등을 했으며 종류의 생선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오셨유!'

'아, 황 씨!'

하며 아버지는 잠바 봉창에서 적어 온 용지를 꺼낸다. 그리고는 목록을 불러준다. 생선장수는 즉각 가로세로 40~70cm 직사각형 나무 확고짝에 불러준 생선을 담다.

'황씨! 그럼, 늘 하던 대로 열차 시간 맞춰 역 소화물 자리에 부탁하네.'

'야-아, 걱정마셔유.'

아버지는 그곳에서 쭈욱 올라가 왼쪽 골목 첫 번째 건어물 가게 앞에서 멈춘다.

'오셨유.'

'예에.  아직 안 나왔유?'

'금시롱 여기 있던 사람이 귀신같이 사라졌구먼유.'

불 먹은 표정의 아주머니 말투다.

나는 건어물 가게에 진열된 종류의 멸치에 휘둥그레 한 눈을 하고 서 있다. 우리 가게에는 미꾸라지 만한 멸치, 중간 멸치, 작은 멸치와 아주 작은 잔멸치가 진열돼 있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작은 멸치에 섞인 꼴뚜기가 여기 이 가게에는 산더미처럼 진열해 있다.

'따님유?'

아주머니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묻는다.

'아, 예. 순딩아, 아주머니께 인사드려라.'

숫기 없는 나는 미적거린다.

'아이구, 어쩜 이렇게 아저씨를 도성했대유? 게다가 이름까지 수-순딩이유!'

아주머니는 무슨 유명 배우라도 되는 냥 나를 뚫어지게 본다.

'요 따님이 몇 째 따님이래요?'

'셋째입니다. '

'어-매, 셋째 딸은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은 말이 다 이유가 있다닝께유. 아이구, 내 정신머리 하고는 아줌니, 안녕하시지유.'

'예에.'

'아드님 많이 컸지유?'

아주머니는 정말 푼수 주책바가지다. 아버지 표정도 읽지 않고 연속 묻는다.

'예. 올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어매, 두 어르신 장사하신다구 외할머니 손에 키우시더니 벌써 대학생 됐유.'

'아, 이 여편네가 아침부터 뭔 잠꼬대여?'

한 아저씨가 툭명한 목소리로 나타났다.

'오셨유.' 아저씨가 정중하게 아버지에게 인사한다.

'아, 어디 갔다 오신대유? 또 다방 갔다오는규?'

아주머니가 불 먹은 소리를 하든 말든 아저씨는 아버지가 주문한 멸치마다 소세지형 누런 봉투에 포장해 콜크끈으로 꽁꽁 묶을 뿐이다.

'그럼, 방씨. 역전 수하물로 부탁하네.'

'아, 예. 걱정 마셔유.'

'그럼, 아줌니.'

''야, 들어가셔유.'

'이 여편네야, 방정맞게 무얼 그리도 알고 싶은겨? 한두 번 겪어 봐! 사람도 봐가며 야기할 것이 아니여! 눈치만 있지 코치는 없는 게 엥.'

'아, 내가 무슨 소리했다구 그런대유? 따님이랑 오셨길래 물어보고 안부 물어본 것이 뭔 눈치코치가 필요한담요?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양심에 찔린감유.'

'순딩아, 뭐하니 따라오지 않고?"

아, 치과 위치 기억이 희미하다. 치과 건물에서 조치원역 광장이 저만치에 보였었다. 그리 역전에서 떨어진 거리는 아닌 듯싶다.

이층 건물 수직으로 최치과의원 이란 간판이 크게 걸렸다. 아버지 따라 계단을 올랐다. 치과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잔뜩 겁에 먹은지라 사방이 하얀 치과 내부 이외 그리 많은 기억이 없다. 아버지가 나의 어금니 상태을 간호원에게 알리는 광경이 떠올랐다. 이어 간호원이 나를 검은색 등받이 의자 쪽으로 데려가 앉혀 주었다. 넓고 푹신한 의자 뒤쪽에서 덜그럭 소리가 거스릴만큼 치과 안은 살벌하게 조용다. 이윽고 안에서 남녀 대화 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오더니 허연 머리카락의 의사 할아버지와 간호원이 내게로 다가왔다. 의사 할아버지가 의자를 뒤로 젖히더니 내게 '아-아' 한다. 나는 양손을 꽉 끼고 배 명치 위에 올려놓는다. 의사 할아버지 손에 쥔 뾰족한 갈고리 같은 기구가 내 얼굴 위로 왔다 갔다 한다. 나는 두 눈을 꼭 감는다. 구멍 난 어금니 긁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복부 위에 올려놓은 양손에 힘을 준다. 어깨 한쪽으로 귀를 막으려 듯 몸이 기울인다,

'조금만 참아라' 의사 할아버지 말에 나는 원래 자세를 취한다.

간호원이 의자를 올려준다. 의자 옆에 준비된 물로 입 안을 가글 하라며 알려준다. 뱉어낸 하얀 용기 표면에는 녹슨 쇳가루처럼 한 이물질이 깔려있다. 나는 혹시나 벌레인가 싫어 잠시 빤히 쳐다본다. 정작 벌레라 해도 으서졌을 것이다. 나는 다시 등 제친 의자에 누워 '아-' 입을 벌린다. 역겨운 약 냄새가 입 안에 진동을 한다. 침이 고인다. 침을 삼키지 않으려 안절부절 못하는 내게 의사 할아버지가 '다 됐다' 하고 말한다. 간호원이 등받이 의자를 올리는데 입 안에 가득 고여 놓은 침을 그만 꿀꺽 삼켜버리고말았다. 꺼름직하고 있는  내게 간호원이 거울을 보인다. 나는 '아' 하고 입 안을 검사한다. 왼쪽 두 개 어금니에 회색 물질이 땜질돼 있다.

'오늘은 뜨거운 음식 먹으면 안된다.'

또다시 나는 입 속에 고인 침을 삼키지 않으려는데 그만 의사 할아버지 주의 말에 입 꼭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이다 또 꿀꺽 삼키고 말았다.

'아-으, 퇫이!'

치과에서 나와 아버지 따라 행길 위쪽으로 쭉 걸어간다. 저만치 조치원역 둥근 지붕이 점점 가까워 보인다.

역에 도착한 아버지는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고는 내게 수화물 창고에 장 본 물건들이 와 있는지 얼른 갔다 온다며  개찰구 바리케이드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아버지가 개찰구로 돌아왔을 때 목포행 호남선 완행열차가 곧 플랫폼에 들어온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하행선 오전 열차가 쏟아낸 갑촌역 플랫폼에는 승객들로 빽곡하다. 열차가 떠나가고 개찰구로 향하는 아버지 모습을 본 큰언니가 저만치 개찰구 쇠골조 바리게치트에서 손을 높이 들어 흔든다. 아버지는 개찰구에 서 있는 역무원에게 기차표를 주며 내게 역 광장에서 기다리라 하며 큰언니에게는 수화물 쪽으로 리어카 받치라고 지시한다. 누가 아버지 물건인 줄 어떻게 알고 열차에서 내려놓을까 궁금했는데 열차 맨 뒤 화물칸에 실린 물건마다 가는 철사에 매달린 종이 꼬리표에 '갑촌역 이갑수'라고 검은 사이펜으로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역화물소 인부임을 알아냈다.


큰언니가 앞에서 리어카를 끌고 아버지와 나는 리어카 양쪽 모서리에 손을 잡고 상체를 뒤로 젖히고 경사진 역 광장에서 내려와 신진 여인숙 팻말 꽂힌 신작로 막 이를 때다.

'아버지, 오빠 내려온다고 조금 전에 전화왔었유.'

'몇 시 열차 탔다고 하드냐?'

'용산역에서 9시 특급 탔대요.'

'다른 말은 없었더냐?'

'야아.'

아버지는 잠바 소매부리를 제치고 손목시계를 흘끗 본다.

'지금 조치원역에 도착했겠구나' 아버지의 속삭이는 말투와 표정에는 반가움 기색이 없다.

나는 전방 문지방을 너머 부엌으로 뛰어가며 '할머니 하고 외쳐 부른다.

'그래, 어금니는 때운겨?'

'으-응, 할머니. 여기, 아-아.'

약 냄새로 왕등한 입 안을 보인다.

'아프지는 않았던겨?'

'조금요. 괜히 겁 먹었지 뭐애요.'

'원, 아이두. 장에서 뭐 먹긴 한 겨?"

'아니요. 아버지가 약 냄새로 토한다고 해서 조금 배고픈 게 났다고 했어요. 정말로 약 냄새가 왕등을 해 할머니.'

'상 차릴테니 조심혀서 먹어봐.'

할머니, 나아 라면 먹고 싶어라.'

'아이구, 뜨거운 거 먹으면 때운 어금니 금세 고장 나는 겨. 아, 의사 선상이 말 안 혀?'

'했어요. 할머니, 찬찬히 식혀서 이쪽 안 때운 쪽으로 먹을게요.'

'원 아이두.'

전방이 훤히 내다보이는 안방의 유리 미닫이문과 가게 진열대 사이로 난 통로 바닥 중간에는 안방 연탄 고래가 있다. 할머니가 도르래 달린 연탄 화로 하단 고리에 긴 쇠장대로 끌어낸다. 시퍼런 불빛이 슬렁이는 센 불씨다. 작은 황금색 양은 냄새에 물이 금세 끓어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삼양라면 봉지를 뜯어 냄비 속에 막 넣을 때다. 군청색 네루 칼라의 대학 교복 우아기에 실버 버클로 장식된 검정색 대학생 가방 든 하얀 손에 들고 광이 반들반들 나는 검정색 가죽끈 구두 신은 오빠가 전방 문지방을 너머 통로를 따라 들어오는데 정말 멋져 보였다. 전방에서 장꾼들 맞이에 바쁜 부모님은 그렇게도 원하던 법정대학에 입학한 오빠 모습에 뿌듯한 눈빛뿐 아버지와의 거리감이 존재했다. 아니 우리 모두는 그다. 부모님에 대한 어린 내 마음에도 특히 냉정한 아버지로 어리광을 피우거나 떼기장을 부려 본 적도 부릴 줄 모른다. 아니 응석받아 줄 감정이라고는 삐지고 들어갈 틈조차 없는 부모님으로 지금도 장사하는 사람은 냉정한 사람으로 인식된 이유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전방에서 호두알만 한 검은 주판대를 들고 소쿠리에 담은 장꾼의 물건을 계산하고 있다. 큰언니가 리어카 운전대를 받친 뒤에서 아버지가 구입해 온 갈치, 물명태, 물오징어, 소금에 저린 고등어손을 생선대에 진열해 놓는다. 은빛 갈치 비늘에서 무지개 빛이 돈다. 오빠가 전방으로 간다.

'용산서 9시 특급 탄 거냐?'

'예.'

'곧 들어갈 테니 방에 들어가 있거라.'

'할머이.'

오빠는 부엌에서 상차림 준비하는 할머니를 부른다.

'그래. 서울 생활은 워뗘? 하숙집 음식은 괜찮여?'

'예.'

'어여, 안방으로 들어가 아버지랑 아침 같이 혀. 내 얼른 상 차려 가마.'

오빠는 포대기에 싸여 안방 구들목에 누워 쌕쌕 자고 있는 그러니까 오빠에게 다섯 번째 여동생, 성아의 볼을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서 너번 손등으로 비벼본다. 어릴 적부터 허약한 체질의 오빠에게 녹용을 먹여 키웠다고 언제가 할머니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상차림에는 쇠고기 장조림, 꽁치구이, 굴젓, 구운 김, 도라지 무침, 마른 명태 볶음, 계란  마른 명탯국과 밥이 올려 있다. 오빠는 밥상에서 아무리 맛난 음식이 차려 있어도 반공기만 먹으면 수저 놓는 습관이 있다. 김 모락모락 오른 따끈한 밥공기에서 반공기로 덜어낸다. 버터를 수저로 뚝 떠 밥공기에 넣고 그 위에 날계란 하나를 밥상머리에 툭 쳐 깨 넣은 다음 수저에 적당한 양의 샘표 왜간장으로 비빈다. 하숙 생활에 익숙한 오빠식 모양이다.

'워째, 밥 먹는 것이 노랑머리들이 먹는 거 같여.'

할머니는 오빠를 측은해한다.

'원, 아이두 보기만 해도 끼하구나.'

'아버지는유.'

 오빠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린다.

'하숙집은 괜찮으냐?'

'예.'

'필요한 게 있는 게냐?'

아버지는 정규적으로 오빠에게 필요한 모든 경비 준비해 서울에 올라가기 때문에 평일에 내려온 오빠에게 탐탁지 않은 표정이다.

'어-없습니다.'

오빠의 표정에는 뭔가 담겨 있다.

'그래. 어서 먹어라.'

'......'

'아-아버지, 어-엄니.'

'그래 뭐냐?'

차가운 아버지 물음에 오빠는 다소 긴장한 표정이다.

'제-제기동 작은 집 방문해 친할머니 어요.'

하고 오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버지가  '됐다' 하고  딱 잘라버린다.

아버지는 왜 당신의 어머니 소식을 중단시켜버리는걸까? 이상했다. 안방은 침묵의 싸늘함이 흘렀다. 부모님은 친할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화난 모습이다. 부모님이 표현한 친할머니는 생전 사랑이라곤 베풀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생김새도 또한 딱히 고양이와 같다 하여 우리 집에서는 '괭이 할머니'라고  부른다. 초등학교 어느 해 봄날로 기억다. 밖에서 놀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안채 사랑방 마루 밑에 벗어 놓은 티 하 묻지 않은 하얀 코빼기 고무신을 보았다. 순간 괭이 할머니가 오셨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할머니!' 하고 부르며 덥석 달려가 품에 안기고 싶은 반가움은 고수하고 뒷걸음질 치는 기피감이 앞섰다. 서울(작은아버지 댁)에서 거주하는 친할머니는 갑촌(큰아들인 아버지)에 내려오면 사람들이 북적이는 갑촌 오일장에 오시는데 먼저 갑촌 시장통과 신작로 주변을 배회하다 친인척 집에 찾아가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당신의 불만을 곱씹다 우리 집으로 오시는데 그 출로도 별채 쌍대문과 빗장 대문을 이용해 사랑방으로 살그머니 들어온다. 부모님은 친할머니에게 오셨냐는 인사 대신 바쁜 가게 장사로 무관심을 보인다.  외할머니는 별채에서 곳간과 돼지우리와 텃밭의 소일거리 찾아 하신다. 어른들 감정싸움에 나는 알 도리가 없지만 집안에 흐르는 냉기는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의 어머니는 아는 척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지만 누구 한 사람 눈길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부모님의 무관심에 친할머니의 섭섭함은 노여움으로 진전돼 담배만 연실 태우다 지쳐 서울로 올라가시곤 한다.

친할머니는 우리와 같이 사는 외할머니의 평범한 외모와는 달리 쌍꺼풀 큰 눈을 가졌는데 눈 모양이 딱히  초롱초롱한  고양이 눈과 같다. 단정하게 비어 내린 장지 머리에 은비녀를 꼽았고 하얀 피부에 질감 좋은 갈치 빛 도는 은빛 공단 한복 차림에 조끼 차림을 했다. 조끼 안감은 여우 털인지 족제비 털인지 보드라운 촉감의 옅은 이고 조끼 겉감은 모란고처럼 큰 꽃봉오리 문양 새겨진 짙은 회색 공단의 질감으로 인물이 더욱 돋보였다. 그러나 차갑고 괴팍스 친할머니는 늘 화가 난 얼굴이었다. 책상다리하고 앉심술이 나도 누구 한 사람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친할머니는 검정 가죽 빽가방에서 작고 납작한 상자와 펜대 만한 은색 담뱃대를 꺼내어 사랑방 앉을뱅이 책상 서랍마다 전부 열어본다. 재떨이용을 찾는다. 짙은 카키색 양철 직사각형 빠레트를 꺼내서는 중심에 담배 파이프로 짜증나게 두드리며 요란한 헛기침까지 토해 낸다. 성냥갑 만한 양철 상자 뚜껑을 열고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잎담배를 담배 파이프관에 채워 넣고 파이프를  입에 물고 성냥불을 붙인다. 붕어 입모양으로 뻐끔뻐끔 담배 파이프를 빨아 내뱉고는 참새 한 마리 보고 잡으려 노리는 고양이 눈처럼 친할머니의 눈초리는 독기로 번쩍인다. 포화 상태의 담배연기는 사랑 방문 틈새로 스멀스멀 흘러나와 가게 전방에까지 퍼져 부모님의 심기를 자극한다.


친할머니는 슬하에 세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인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와 두 우리로 스물둘, 스무 살 나이에 결혼해 불혹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일곱 어린 자식키우며 살림까지 도맡아 하신 외할머니를 대신해 부모님은 장사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장사로 모은 돈은 논과 밭 그리고 시장통에 자리한 건물을 구입해 놓았다. 아버지의 이름 '이갑수' 석 자를 대면 이웃 산골마을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나는 아버지를 도성했다는 이유로 갑촌 장터 이갑수 셋째 딸로 덩달아 유명세를 탔다. 지금에 생각건대, 아버지는 절대 타인에게 이끌리지도 부탁도 받지도 않는 대단히 자존감이 강한 자기중심적 냉정한 장사꾼 성향의 분이셨다.

둘째 아들, 서울 숙부는 의류업을 한다. 청량리 제기동 숙부네 이층 양옥집 일층에는 넓은 거실 중심으로 현관문을 마주하는 안방과 부엌방과 지하실 딸린 부엌과 이층 계단을 이루고 있다. 현관문 왼쪽에는 사촌오빠의 방과 세면장이 있고 오른쪽에는 미싱사와 시다들 숙소인 넓은 방으로 구성돼 있다. 방 두 개와 세면장을 헐어 이층 전체는 공업용 미싱대와 오바로꾸기가 놓였고 천장에 늘어진 스팀 다림대 줄과 재단 테이블이 놓인 옷 공장으로 개조돼 있다. 서울 숙부는 60년대에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보따리 장사로 시작했다고 한다. 옷장사가 돈이 된다는 걸 일찍 깨우친 숙부는 시장에서 잘 팔리는 옷가지들을 구입해 전문 기술도 없이 순전히 눈요기로 대충 본(패턴)을 떠 만들어 판 옷가지가 잘 팔리면서 직접 옷 공장을 운영하면서 보다 쉽게 만드러 빨리 판매할 수 있는 옷가지 생각을 해 낸 것이 나일론 운동복이었는데 시대의 운까지 따라 만들어 내놓은 대로 없어 못 팔 정도로 잘 팔렸다고 한다. 숙부는 재단사와 미싱사 그리고 시다 모두 열댓 명 고용과 동시에 동대문 평화시장에 점포까지 구입해 지방의 소상인들 상대로 숙모가 장사를 한다.

셋째 아들 막내 숙부는 치술이 전문 교육받은 의사 못지않게 뛰어났다고 한다. 실눈에 움푹 파인 광대뼈 골격의 서울 숙부의 매몰찬 인상과는 달리 아버지와 많이 닮은 잘 생긴 호남형으로 괭이 할머니를 많이 닮았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60년대 말이라고 언급했던 서울 숙모 말에 의하면, 당시 막내 숙부는 면허증 없이 치술을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정부 감시원인지 하는 사람들이 불시에 드리 닥쳐 조사하러 다녔는데 마음이 여렸다는 막내 숙부는 불행하게 그에 스트레스 받아 급기야는 신경쇠약으로 발전해 요양 차 이산, 저 산으로 방랑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어머니 장례식 치른  나의 초등학교 3학년이던 그 해 찬바람 불던 어느 겨울날, 온 집안 어느 곳이든 살벌하게도 음침해 마치 뭐가 나올 것만 같은 으스한 분위기였는데 생전 방문해 온 적 없던 막내 숙부가 우리 집에 오셨다. 해질 무렵이었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쌀을 담아 샘터에서 씻어 생쌀을 씹어 먹으며 내게 뭐라고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가 내게 막내 숙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듬해인지 그 이듬해인지 서울 숙부에 의해 정신양원에 입원시켜다는 소식을 들었을 무렵, 막내 숙부에게는 외아들이자 나와 동갑내기 사촌 병목 갑촌 돼지털 가발공장에 다니며 양조장 근처 감나무집에서 사글셋 방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 숙모에게 심기 변화가 왔다. 사촌 병목이를 숙모의 친정 경기도 양평에 데려다주고 서울 숙부네 부엌 대기로 갑촌을 떠났다.

          

'어-엉, 괭이 하-할머니다.'

나는 혼잣말로 속삭이며 사랑방문 틈새로 담뱃대 물고 뻐끔뻐끔 담배연기 내뿜는 친할머니를 확인한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한다. 이때 작은언니가 샘터 빗장 대문으로 들어왔다.

'왜 그러고 서 있니?'

나는 작은언니에게 사랑방 주목하라는 시선을 주었다.

''방, 왜에?'

작은언니는 투덜대며 마루 층계에 책가방을 휙 던진다.

'누구냐?'

'엉, 괭이 할머니! 야, 왜 빨리 말하지 않았어?'

'내가 신호했잖아.'

친할머니는 사랑방 미닫이 문짝을 훽 열다 그만 문짝이 문턱에 걸리고 말았다. 걸린 문짝 사이로 본 친할머니는 심술이 잔뜩 난 표정이다.

'하-할머니!'

'홱교 갔다 오냐?'

'예에.'

나는 마루 두 번째 층계에 걸터앉아 손아귀에 만화 딱지 한 뭉치를 쥐고 센다. 작은언니는 내친 책가방에서 산수책과 공책, 필통을 마루에 꺼내 놓고 엎드려 답 달아온 산수책에서 공책에 배긴다. 친할머니는 담배대를 입에 물고 뻐끔뻐끔 연실 담배연기를 뿜어댔다.

'순동아, 순동이 거기 있느냐?'

친할머니의 굵직한 저음이다. 나는 딱지 세는 데 집중해 있다. 작은언니가 친할머니가 부른다며 지우개 달린 연필로 내 발등을 콕콕 찌른다. 나는 세고 있는 딱지 다 세고 대답할 생각으로 무시한다.

'순딩아-!'

나는 마저 남은 딱지 다 세고 답할 생각이다. 마침내 대답하려 층계에서 내려와 열린 사랑방 문짝 틈새로 '네, 할머니' 할 참이다. 일그러진 친할머니의 눈에서 고양이 눈빛과 입술 근육이 상하좌우로 씰룩이는 것이다. '살 찬 독사 같은 년!' 친할머니의 목소리와 표정은 마귀 같았다. 나는 재빠르게 마루에서 내려와 바닥에 놓인 신발을 신는데 빌어먹을 신발이 뒤집혀버렸다. 작은언니도 들었는지 펼쳐놓은 책과 공책 연필통 전부 책가방 속에 쑤여 넣고 마루 코너에 내팽개치고는 도망치듯 달아나버린다. 친할머니는 누구에게 살 찬 독사 같은 년이라 했는지 매번 이런 식으로 우리 집을 떠나갔던 그 친할머니가 급작스레 병세가 악화됐음을 알려 주기 위해 오빠가 내려온 것이다.

식사 후, 오빠는 막내 여동생  성아가 태어나 처음 본 기쁨에 기념사진을 찍는다며 성아 안고 신작로 자연 사진관으로 간다.


오빠가 서울로 올라가고 며칠 지난 어느 날 오전 전방에서 전화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세요!' 냉랭한 아버지의 목소리는 위협적이다.

'...........'

귀에 수화기 댄 체 듣고 있는 아버지 표정은 무척 화가 나있다.

'못 해! 네 집에서 치러.' 서울 숙부에게 걸려온 친할머니 사망 소식이었다.

당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소식에 아버지는 슬픔 아닌 분노로 가득 찼다.

언제가 나는 아버지 혈압이 높다는 말을 할머니인지 어머니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니 장례식을 거부할 만큼 아버지가 화난 이유가 무엇인지 어린 나이에도 나는 궁금했다. 결국 서울 숙부 집에서 친할머니 장례식을 치른 다음 영구차로 갑촌 선산으로 모신 그날 친인척들이 참석한 안장식을 마치고 선산에서 가까운 동네에 거주하는 고모집에서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던 중 갑자기 서울 숙부가 술상을 박차고 일어나 헛간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서는 곡괭이 자루를 들고 나와 형수(어머니)를 죽인다는 험악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때 현장에서 목격한 당시 우리 집 산지기 허 씨 아저씨에게 나는 그날로부터 20여 년 세월이 지나서 듣게 되었다. 또한 외할머니와 오빠 그리고 큰언니는 그날의 야먄적인 숙부의 행위를 친척 어른 입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오빠와 잦은 싸움을 했던 큰언니에게서 이 사건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아마 어린 우리는 복자반 어른들 세상사에 모르는 게 상책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서울 숙부 내외가 친할아버지 제삿날에도, 명절에도 우리 집에 내려오지 못했던 것도 아버지가 친할머니 제사도 거부해 서울 숙부가 친할머니 지청 모시고 따로 제사 지냈던 것도 어린 나이에도 예민했던 나는 뭔가 느껴졌다. 그러나 무엇이 친할머니와 불화의 원인인지 모른 체 세월은 흘러 훗날에도 알아낼 수 없게 하기 위한 냥 부모님은 일찍 고인이 되신다.


1970년 여름, 어느 새벽녘.

아기, 성아가 무슨 일인지 새벽에 자지러지게 울어댄다.

'어이구, 엄청나네. 엄청나-아.'

엄마는 성아 기저귀도 확인해 보고 이부자리도 들쳐본다.

'아무 이상 없는데요.'

'젖 물린 게 빠져서 그러는감.'

'밤새 물고 있었유.'

'여이, 내가 안아 보마, '

'아녀유, 엄니. 주무셔유.'

어머니는 오른손을 괴고 누우며 '아이구, 삭신이여' 절로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성아에게 젖을 물린다. 그 뒤 잠에서 깬 할머니는 샘터 수챗구역 어귀 구정물통으로 간다. 뜬 물 쪼르르 딸궈 낸 적색 고무 구정물 바케스 들고 별채 샘터 수챗구역 어귀에 놓은 또 하나의 구정물 통으로 간다. 건더기만 남게 맑강물을 수챗구역에 쪼르르 딸궈 버리고 안채 구정물 양동이에 합쳐 돼지 막으로 들고 간다. 돼지는 할머니를 알아보고 돼지지밥통 앞에 와 서 꿀꿀거린다. 할머니가 돼지 밥통에 쏴아 쏟아 붓자 돼지는 돼지 밥통에 눈까지 잠기도록 깊숙이 잠수해 입 한가득 건더기 물어 고개를 들고는 쩝쩝 마시게 먹고 있을 때 할머니는 옆 곳간 사료포대에서 두 바가지 퍼 담아 돼지 밥통에 얹어준다.  돼지는 또다시 푹 잠수를 타서는 건더기를 물어 고개 들 쩝쩝 맛이게 먹는다. 돼지 얼굴은 온통 분가루로 묻어있다. 분가루가 묻어거나 말거나 돼지는 '아, 맛있어' 하는 기쁜 표정이다. 할머니는 돼지우리에 짚도 넣어 주고 돼지 밥통 옆 땅 속에 묻은 판내기에 가득 찬 돼지 오줌을 긴 장대 바가지 담덤탕에 버린다. 마지막으로 변소와 안마당을 빙 둘러보고는 안채로 돌아와 아침 통근밥을 하신다.

큰언니는 언제 또 세탁소에 교복을 맡겨 다림질 해왔는지 칼날처럼 세운 여름 하복 상의 허리선 다아트 위에 흰 플라스틱 버클의 교복 벨트로 꽉 조여 허리선 윤곽  두드러지게 보이려 낑낑거리며 올인원과 씨름을 한다.

'아, 웬만큼 졸라매여!이것아. 멋차리다 똥수칸에 빠졌다는 소리 못들어.'

'아유, 할머니는 뭘 몰라요.'

'뭘, 몰러. 해놓은 아침밥 안 먹어가매 허리 졸아 매는 네가 뭘 모르지.'

'할머니, 나아 가유.'

'여-잇, 서 너 숟가락이라도 떠먹고 가아.'

할머니는 부리나케 역전으로 뛰어가는 큰언니를 못마땅해한다.

'엄니, 내버려둬유. 배고프면 먹겄지유.'

'허우대만 멀쩡하지 철들라면 안 적 멀었어. 근디 밤에도 이렇게 잘자던 아이가 새벽에 그리 자지러지게 울었을까? 아랫목 구들장에 아기 요에 누워 쌕쌕 자는 성아 바라보며 할머니가 말한다.

'열도 없었유.' 어머니가 심란한 표정으로 말한다.

'지어머니 편하게 좀 해주지. 여이, 여기 좀 누워 봐아.'

'야-아. 엄니.'

그날 저녁 어머니는 장독대에서 촛불을 밝히고 사기 주발에 물 떠놓고 삼신할머니에게 빌었다.



'일동-차례! 경례!'

월요일마다 아침 조회가 열리는 초등학교에서 마이크 탄 선생님의 툭명한 목소리가 시장통까지 들려왔다. 이어 애국가 전주곡이 녹음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담임선생님은 물과 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보호한다는 애국가 가사는 다른 나라 애국가에는 없다며 열창해 부르라고 강조했다. 성주는 양지바른 쌀가게 앞에 웅크리고 앉아 땅바닥에 나무 막대기로 디귿자 새기며 애국가를 흥얼거린다.

'참, 엄니. 오늘 지아부지가 일손들에게 점심과 새참에 막걸리 대접하기로 야기해놓았데.'

'알았다. 그리고 여이, 변소 똥 풀 때 됐다. 내일 아침 일찍 임 씨 오라고 혀.'

'야, 엄니.'

할머니는 지난해 여름 '똥수 칸 사건' 이후 변소 확인하는 일이 잦았다. 바깥채 7번 가구 옆 변소 외벽과 나란히 새로 단장한 별채 시멘트 담쟁이까지 뻗은 무성한 호박 덩굴에서 할머니가 애호박 따고 있을 때 변소 똥통에 빠져 허위적거리는 창회을 할머니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를 했다. 아이가 있는 바깥채 젊은 부부 대부분은 그들의 요강을 사용한다. 더러는 텃밭 덤탕에 볼 일을 보되 아이 엄마가 샵으로 잘 치우라는 할머니 허락도 있었다. 하지만 사내아이가 엉덩이 까고 덤탕에 앉아 볼 일 보는 것이 부끄러웠던지 어른 기준의 똥다리 간격에 양다리를 벌리고 앉아 다리에 쥐가 나 엉덩이를 들썩거리다 그만 뒤로 발랑 넘어가면서 똥 칸에 빠지고 말았다. 그 똥수 칸 사건으로 할머니는 목공소에서 단단한 변소 똥다리로 새로 맞춰 놓았고 똥다리 간격도 자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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