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평소 자주 카카오톡을 주고받던 친구와의 대화가 갑자기 끊겼다. 단순히 귀찮아서 답장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왜 답장을 하지 않느냐며 나는 계속 친구를 채근했다. 그런데도 친구는 계속 메시지를 읽기만 하고 답장을 하지 않았다. 숫자 1이 분명 사라져 있는데 이유도 모른 채 계속 답장을 하지 않으니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을까 드디어 답장이 왔다. 그리고 답장을 읽는 순간 나는 모든 상황이 한꺼번에 이해되기 시작했다.
할머니 돌아가셨어... 장례식장 정해지면 연락 줄게
친구에게 할머니는 엄마보다 더 큰 존재였다. 어릴 적 낳기만 하고 집을 나간 엄마 탓에 엄마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내게 얘기했었다. 그래서 친구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중학교 땐 같은 반이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도 친하게 지냈던 친구라 나는 누구보다 친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항상 밝게 학교생활을 했던 아이였다. 그렇게 밝게 살 수 있었던 건 모두 할머니의 사랑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상심이 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답장으로 받은 메시지만 읽어도 친구의 슬픔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지는 듯했다.
친구는 슬픔을 혼자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모든 순간을 기억나는 대로 글로 기록했고 그 글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새벽 다섯시쯤 멸치볶음을 만들러 주방에 갔을 때만 해도 살아계셨던 할머니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소파에 엎드린 채로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그저 주무시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셨고 호흡을 확인했을 땐 이미 숨을 쉬지 않고 계셨다, 어떻게 해서든 할머니를 붙잡고 싶은 마음에 친구는 구급차를 부르고 구급차가 오는 동안 심폐소생술을 했다. 이윽고 구급차가 바로 왔고 각혈로 인한 피가 할머니의 입가에 묻을 정도로 긴박한 심폐소생술이 이어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끝내 돌아오지 않으셨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친구의 글을 읽으며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빨리 만나서 위로해줘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고 생각했기에 주변 친구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급한 대로 가까운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부조금을 걷었고 가장 친한 친구 한 명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장례식을 하는 동안 친구는 내내 울기만 했다. 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친구였기에 그 눈물이 더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하염없이 울고 있는 친구를 꽉 안아주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저녁밥이라도 먹고 가라며 나를 자리로 안내하던 그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자리에 앉자 육개장과 흰쌀밥을 테이블 위에 놓고 소주 한 병을 가지고 온 친구는 술 한 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못다 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이제야 할머니의 죽음이 조금씩 실감이 난다면서 착한 사람은 먼저 하늘나라에 간다는 말을 믿기로 했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눈물을 참았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헤어짐을 겪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도저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고 믿기지 않는 헤어짐은 우리를 슬픔의 늪으로 빠트린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만약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잘 이겨낼 수 있을지 좀처럼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인생을 살면서 가슴 아픈 헤어짐을 피할 수 있고 미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보 같은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나와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작별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