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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 Mar 27. 2021

byebyebye

라이프 7

 그랬지. 나는 그런 사람이었지. 끝장을 봐야 하는, 그런 성격이었지. 아주 오랜만에 내가 이런 사람이었음을 다시 확인했다. 하트가 박힌 이모티콘을 바라보며, 피드를 내리다가, 인스타그램을 꺼버리면서. 익숙한 감정. 싫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맘에 들지 않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질. 이것이 저런 것으로부터 기원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취향이 맞지 않는 유튜브 영상을 꺼버리듯 인스타그램을 꺼버린 내가 좀 우스웠다. ~한다는 말이. 참기 어려웠다. 왜. 내가 그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게이가 헤테로에게 ~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이러고 있는 것인지,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지 나도 이해가 되지 않으니 가타부타 괜한 참견은 삼가겠다. 그저 이 혼란의 흐름 끝에, 결국 내일 어떤 말을 하게 될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 쿨한 척 포장한, 내가 너를 좋아했었다는 말을 참지 못하고 해 버리게 되는 건 아닌지. 나는 그것이 궁금한 것이었고, 예측 따위 전혀 가능하지 않았으므로, 돌아오는 길에는 택시를 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비가 올 거니까.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는 것은 드라마 속 주인공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

 S대생이 들어왔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놀려댔다. 괜한 자격지심이 들어 어떤 사람인지 슬쩍 살펴봤다. 나쁘지 않군. 괜찮았다. (친구들은 별로라고 했다.) 그래서 치근덕댔고, 밥을 같이 먹으려 갖은 수를 썼고, 노래방을 같이 가려고 난리를 피웠다. 인권감수성이 굉장히 결여된 말들을 참았고, 진지한 조언을 해줬으며, 아무렇지 않게 먹을 것을 사줬다. 어떤 소득이 있었나? 여러 건의 착각을 불러일으킬만한 대화가 있었다. (주위 친구들은 나를 갖고 노는 것임을 확신했으나) 원래 심각한 경우 착각이라도 가능한 것에, 그 망상 속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한 법이었다. 그나저나 키스를 한 건 그 옆에 있던 다른 애였지만.


 첫인상이 맘에 들어야 오래갈 수 있다는 내 비루한 연애학적 가설이 세워진 것도 이러한 흐름에서 온 게 아닌지. 솔직히 말하면, 최근 연애 비슷한 것을 하며 느꼈던 감정이 저 친구를 좋아했을 때만큼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다 끝난 뒤에서야 했다. 그렇구나.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그럼 앞으로 억겁의 시간이 걸리던 말던 첫인상이 눈에 띄는 사람을 대상으로 자만추를 빙자한 꼬시기에 도전하거나 쉴 새 없이 앱을 돌려보면 되겠구나. 드디어 나는 헤테로를 지리멸렬하게 좋아해 버리는 파릇파릇한 게이 특유의 교양 없음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했고, 한층 더 성장한 나를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

 빙빙 돌려 얘기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아직도 저 친구를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친구들로부터 개시될 돌팔매질을 조금이나마 막아보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으로서 억지로 어중간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며, 정말 나도 잘 모르겠다는 얘기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만 집중해보기로 하자.


[오늘 점심쯤, 그에게서 귀엽다는 메시지와 함께 인스타 디엠이 왔고, 의미 없는 대화 후 내일 저녁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저 친구의 계정을 들어가, 태그 된 게시물 리스트 중 럽스타를 보고 헉, 했으며 두어 장의 사진을 넘기다, 아래에 붙은 “사랑해(이모티콘)” 댓글을 보고 견딜 수 없음에 인스타그램을 종료했다. 끝.]


 이것만 가지고는 이렇다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지금 나는 또 쿨한 척 고도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

 첫 문장을 쓸 때만 하더라도, 내가 굉장한 정념에 휩싸여 있다는 착각에 휩싸여 새벽 감성을 저격하는 글 하나를 탄생시키려고 했으나, 역시 본성은 어디 가지 않았으니 쓸데없는 괄호와 억지웃음 유발을 위한 각종 미사여구가 동원되고 있다. 이 말인즉슨, 지금 이 주제가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그렇지만 이젠 정말, 이 굴레에서 벗어나 다른 생산적인 일에 몰두해야 할 때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했던 기억을 떠나보내는 것에 나는 심히 미숙했던 것 같다. 착각이라 부정하기도, 상대를 최악의 쓰레기로 규정하기도 했다. (근데 걔는 진짜 쓰레기가 맞다.) 별다른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상황과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알아서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능하다면 24시간 이내로 이 굴레를 벗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드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커피를 마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 말을 꺼내 상상만 해도 박복 그 자체가 될 결말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어떤 방법이 있을지. 더 이상의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된다 해도 놀라지 않을 만큼 그의 반응을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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