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력, 끈기는 어릴 때부터 나와는 상관없는 단어였다. 무엇인가 시작하면 초기에는 열정 넘치게 끓어오르다가 금세 양은냄비 식듯 급히 식어버렸다. 스스로가 너무 잘 아는 약점이었다.
엄마의 바람으로 배웠던 피아노는 학원을 땡땡이치며 학원비를 날리기 일쑤였고 자존감 회복용으로 공부했던 영어는 수없이 시작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신청해 놓고 끝까지 듣지 않은 수많은 강의들. 그러고 보니 직업도 여러 번 바꿨다. 한 회사에 우직하게 근무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출발선에는 서지만 완주하기 전에 샛길로 새는 것이 특기였다.
지금도 그렇다. 나이가 들면서 끝까지 해내는 힘이 생기려나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다만 이를 약점으로 여기진 않고 관심사가 다양해서 흥미가 계속 옮겨 다니니 정착하지 않는 유목민 스타일이라고, 다방면에 재능을 쌓는 여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속해야 할 일이라 생각되면 환경을 세팅해서 일정 기간은 끌고 가는 테크닉 정도는 익히기도 했다.
이런 성향이라고 해서 꾸준히(꾸준히의 기준은 3년) 해 온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싫증의 협곡을 무사히 통과한 그것의 공통점은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지는 않아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재미’였다. 그중 몇 가지를 꼽아보았다.
책 읽기
20대까지는 책을 읽지 않았다. 독서란 따분한 취미라고만 생각했는데 30대가 한참 지나고 스스로 인생의 방향키 조절이 어려워지면서 독서라는 세계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자기 계발, 실용서 등 관심 있는 분야부터 읽기 시작해서 뇌과학, 인문학, 경제경영으로 분야를 넓혀나갔다. 소설을 읽는 시간은 사치라고 생각했으나 소설도 읽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재미있었다. 이런 신세계를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 억울할 정도로.
일상의 작은 습관부터 철학적인 문제까지 책에서 힌트를 얻으며 방향 조절을 할 수 있었다.
책에 입문 후 독서법이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담긴 책선 배의 책에서 배우고 디테일을 익혔다. 책을 끝까지 안 읽어도, 동시에 여러 권을 읽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좋은 습관을 만들고 싶을 때는 습관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계독하니 솔루션이 탁탁 그려졌고, 유럽 박물관 투어를 앞두고 읽은 미술사 책은 그림을 보는 디테일에 힘을 실어주었다. 책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책 속에 다른 책이 숨어있는 것이다. 보물찾기 하듯 책을 찾아 나만의 독서 리스트를 꾸려두면 읽기 전부터 든든하고 한 권씩 격파해가는 재미가 있다.
책에는 밀착 과외 같은 배움도, 여러 저자의 시각을 통해 나 자신과 조우하는 기쁨도 담겨있다. 이 재미난 활동은 앞으로도 스펙트럼을 넓혀서 계속하고 싶은 일 일 순위다.
정리가 있는 삶
2015년에 완주한 정리 미션 100일은 ‘나도 하면 되는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다. 습관적 미루기와 귀찮음을 이겨내고 달성했으니 성취감도 있었지만 정리의 쾌감을 맛봤다고나 할까.
나와 함께 갈 수 없는 물건에게 안녕을 고하자 남겨진 물건이 더 빛이 났다. 소수정예 물건만 남기는 비우기 작업이 고달프기도 했지만 청소가 편해지고 홀가분해지는 기분까지 덤으로 얻었다.
이 기분을 느끼려 어느 날은 몰아서 하루 종일, 어느 날은 15분 짬을 내서 정리를 했다.
정리를 시작하며 더 일하고 더 많은 물건을 사들이는 습관을 끊어냈고, 물건으로 시작한 정리를 정보 줄이기, 삶에서 불필요한 것 줄이기로 확장시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게으른 나도 지속할 수 있었던 걸 보면 정리에 숨겨진 ‘매력’ 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일상의 루틴처럼 반복하진 않지만 띄엄띄엄 정리에 시간을 내어준다. 욕실 하부장의 정리 비포 애프터 사진을 보며 씩 웃기도 하고, 정리 후 사진을 톡방에서 가족에게 자랑하기도 한다. 가족들이 놀라는 이모티콘을 톡에 보내주면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의 이모티콘으로 답한다. 정리에는 이런 소소한 재미거리가 들어있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끝이 없고 정답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정의하는 ‘완성’의 단계를 만날 때까지는 계속하고 싶다.
일본어
일본어를 접한 계기는 일본 드라마였다. 드라마에 푹 빠져 같은 드라마, 같은 장면을 수도 없이 돌려 봤고 대사를 외우기까지 했다. 공부용이 아니라 단순히 재미로 본 드라마지만 대사를 자막 없이 듣고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어학을 익혔다. 안 들리던 일본어가 귀에 들어와 쏙 박혔을 때의 그 '희열'과 성취감은 공부에 더 불을 지폈던 것 같다. 이후 모니터 안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한국에 유학 온 일본인 친구와도 적극적으로 교류했고, 일본 여행 후 알게 된 현지 친구들과는 밤새 눈에 실핏줄이 서도록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카톡이 없던 시절이다). 외국인 친구와 물 흐르듯 소통하고 싶은 욕구와 그 과정이 주는 즐거움이 일본어를 지속하는 이유였다.
어학에 약간 자신감이 붙자 본격적으로 현지 생활을 꿈꾸게 됐다. 일본 어학연수를 준비하다가 돈을 쓰지 말고 벌어오는 방향으로 선회, 운 좋게 일본 현지 회사에 취업하면서 시작된 일본 생활은 1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일본어 공부에 시간을 할애하진 않지만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된 분들의 초급 일본어를 봐 드리면서 일본어 탐험을 이어가는 중이다. 더해서 일본인 남편과 일본에서 생활하는 한 일본어는 '계속 카테고리' 안에 안정적으로 머물 예정이다.
제로 웨이스트
물건을 비우며 확장된 관심은 어느덧 제로 웨이스트에 닿아 있었다. 내가 버리는 쓰레기의 종착지를 생각하는, 쉽게 쓰고 버리는 물건을 최소화하는, 썩지 않는 쓰레기를 줄이는 일에 시선이 멈췄다. 우리 집에서 수명이 짧은 물건은 단연 일회용품이었다. 한번 쓰고 버리면서 생분해마저 어려운 물티슈, 부직포 청소포, 비닐 랩, 알루미늄 호일등을 순차적으로 우리 집에서 내보냈다. 편리하고 익숙한 도구를 대신할 대체제를 하나하나 찾아 내 살림으로 만드는 일은 눈앞에 포장도로를 두고 자갈밭을 걷는 느낌이었다. 발바닥은 아렸고 굳은살이 생기는 속도도 느렸지만 다시 포장도로로 돌아가 걷고 싶지는 않았다. 귀찮고 피곤할 만도 한데 꾸준함의 뿌리였던 '재미'가 덜해도 어떤 지속하는 힘이 나를 끌어가고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재미' 외에 싫증의 협곡을 지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우리가 숨 쉬고, 마시고, 발을 내디디고 살아야 하는 자연이 오염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공기와 물이 오염되면 절대 안 된다. 그런 문제에 내가 해를 끼친다면 자존심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음 세대가 숨 쉬고 마시고 서 있을 땅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 세대에 뭐라고 이야기할 것인가. (사람이라는)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린 디자이너 윤호섭 교수
디자인과 환경을 접목해 환경을 보전하고 자동차와 냉장고 없이 생활하는 윤호섭 교수의 인터뷰를 접했다.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을 위하는 실천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닌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말씀이 뇌리에 남았고, 자연을 보호하는 일은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는 구절에서 '자존심' 이 마음에 들어와 쏙 박혔다.
편리함과 자존심 사이에서 매번 줄다리기를 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하던 삶은 이제 정리할 시점이었고 마음은 자존심 쪽으로 기울었다. 생활패턴에 새겨진 습관을 바꾸는 일은 관성을 거스르는 작업이었다. 낯선 것을 일상 루틴으로 만드느라 피곤함도 느꼈지만 자존심을 건드리자니 차라리 피곤함을 택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피곤함은 자연에 해를 덜 끼친다는 뿌듯함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한정된 자원을 아껴 쓰고 쓰레기를 줄이는 일은 지속 가능한 미니멀 라이프와도 연결점이 있어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도 맞아 떨어졌다.
지속해야 할 가치도 재미를 빼면 섭섭한 일. 혼자보다 함께하면 꾸준히 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제로 웨이스트 그룹을 만들어 교류하고 있다. 함께 환경도서를 읽고 토론하고 아이디어도 나누면서 재미있게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모임이다. 매달 두 가지 미션을 정하고 지키는 재미도, 지속 가능한 삶을 탐구하면서 알아가는 재미도 있으니 앞으로 계속할 일 리스트에는 제로 웨이스트를 콕 박아두기로 했다.
계속해 왔던 일, 계속하고 싶은 일들이 내 삶을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위에 적은 일들을 계속하는 사람, 의미 있는 일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으로 불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