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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Nov 03. 2022

A

 


 쎄했다. 언제나처럼 단톡방에 글 한 편 올려두고 두근거리며 글쓰기 모임을 기다리는데 평소와 다르게 너무 조용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때문일까? 갑작스러운 뉴스를 접했을 때 A가 머릿속에 스쳤지만, 그저 그런 나 같은 사람에게는 별일이야 없을 거로 생각했다. 아니,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랐다. 우리는 당연히 월요일에 만날 것이라고 믿었다. 내 개떡 같은 글에도 발 빠르게 하트를 꾹 눌러주며 다정한 답글을 달아주던 A에게 긴 시간 답이 없었지만, 그저 바쁘다고 여겼다. 그날은 아침부터 다들 모임에 참석하기 힘든 사정도 있었다. 어쩌면 A도 그럴 거라 치부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A 선생님은 어떠세요? 저희 다음 주에 뵐까요?' 뒤늦은 안부에 대한 톡이 왔을 때 A는 더 이상 A가 아니었다. 아주 못된 장난이거나 오늘이 만우절이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애도를 표하는 글들과 명확한 장례식장의 주소가 냉혹하게 현실이라 말했다.

 

 나는 매주 A의 글을 기다렸다. 줄줄이 A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은 글과 낱낱이 감탄을 자아내는 문장과 단어들이 부러웠지만, 그냥 A가 좋았다. 나와 닮은 듯한 우울함에 마음이 갔고 나와 다른 열정에 대리만족을 느꼈다. 어디인지 모르는 노트북 화면 속에서 조금 지친 눈으로 배시시 말갛게 웃는 A를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무해한 사람. 모임이 끝나면 남편에게 A를 그렇게 전하고는 했다. 내 부족한 글에서 좋은 점을 찾아 꾸준히 쓸 힘을 주었고 항상 같이하자며 손을 내밀어줬다. A의 감각적인 글처럼 농담 섞인 느릿한 말투가 귀여웠고 매번 진지하게 마음을 나눠줘서 위안받고 고마웠다. A는 여러모로 배우고 싶은 동료이자 친동생 같은 사람이었다. 이상했다. 나는 기억력이 나쁜데 뿌연 화면 속에 A가 선명해졌다.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술 한잔해요." 수줍게 스치던 제안에 그놈의 "언젠가…."로 답했다. 다음에 만나려 했다. 나는 우리의 시간이 영원히 이어질 줄 알고 오만했었다. 감출 수 없는 눈물이 새어 나오지 못하게 꽉 잠가두다가 아이들을 재우고서 조금씩 열어봤다. 단톡방의 오래된 파일은 열리지 않았지만, A가 남긴 자국을 따라 천천히 눈을 맞췄다. 나는 왜 이제야 마침표를 찍어 덮은 이야기를 다시 펼쳐 읽고 있는 걸까? 그때 술 한잔 마시며 같이 이야기 나누지 왜 시간을 부숴 과거로 되돌아가려 할까? 정의하지 못할 복잡한 감정들에 멍하니 A의 글만 읽었다.


 가을이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반짝거리며 유영하다 땅바닥에 수북하게 쌓여가는 날, 나는 A를 적는다. 떠오르다 가라앉은 수많은 문단을 쓸고 쓸어내 가장 예쁜 단풍잎 하나만을 책갈피 꽂아두는 마음으로 A를 남긴다. 우리는 올해 3월에 만나 겨우 반년을 알아갔을 뿐인데 일상을 글로 나눠서일까? 지금 적고 있는 문장 속에도 위태로이 기울인 술잔 안에도 힘겨이 일으켜 뻗어본 젖은 몸에도 A가 툭 툭 묻어있다. 꿈꾸듯 슬픔을 걷는다. "안녕" 인사도 못 한 갑작스러운 이별은 처음인지라 나만의 방법으로 A를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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