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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Jan 17. 2023

어느 날, 싸늘한 밤거리가 따라 들어왔다



 부엌이 우리 집 거실만한 그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 벽보다 큰 TV와 로봇청소기 두 대, 식기세척기 등의 가전제품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생활의 질이 달라져요." 대화 중 그녀의 권유에 괜한 말로 웃어넘겼지만, 뭔가 찜찜했다. 분명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내 안에 물결이 일렁였다. 아이들은 반나절을 뛰어놀고도 집에 가자는 소리에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녀도 저녁까지 먹고 가라며 아쉬운 내색을 비췄지만,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오늘을 되씹느냐 뒷좌석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빨간 신호에 슬쩍 본 옆좌석에는 이것저것 챙겨주던 손에 찢길듯한 쇼핑백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떠미는 신호에 달리는 도로의 밤거리가 시린 달에 어두워 싸늘했다.


 나의 일상은 충만했다. 우리 집은 유난히 햇볕이 잘 드는 거실 창가에 옹기종기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훈기를 나누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아이들이 커가는 숫자를 층층이 새긴 나무 기둥과 낡아서 삐거덕거려도 손때 묻은 물건마다 간직한 시간이 소중했다.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었다. 아이들이 클수록 쓰고 그릴 수 있게 된 오늘에 더욱 감사하던 나날이었다. 끼이익 열은 현관문으로 싸늘한 밤거리가 따라 들어왔다. 차가운 방바닥에 발을 디디고 주위를 둘러봤다. 소파조차 넣을 수 없는 좁은 집에 볼품없는 살림살이로 집안 곳곳이 너덜거렸다. 익숙한 공간은 비교되던 순간부터 이미 낯설어졌다. 내게는 늘 낯섦이 비참했다. 그래서일까? 기대감에 설렌다는 누군가와 다르게 익은 자리에만 머물려고 한다. 이만하면 따뜻하다는 남편의 말에도 보일러는 돌렸다. 그리고 가장 따스한 곳으로 파고 들어가 초라한 나를 늘어놓았다. 이기적이었다. 그리 보통날로 돌아가려고 가족에게 나불댔지만, 어두워지는 밤거리가 차갑게 미소 지었다.


 개인의 감정과 상관없이 햇살은 눈이 부시게 빛나고 하루는 생각에 머물 틈도 없이 째깍거리며 달려가던 나날 이어졌다. 그렇게 잊지 못할 것만 같던 어느 날의 기억도 지나간 수많은 날처럼 무뎌지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태권도 학원으로 가는데 예솔이 물었다.

 "엄마, 삼촌은 왜 집에 있어?"

 "회사 그만뒀잖아."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짧은 침묵이 흐르더니 아이가 물었다.

 "아빠는 어디 있어?"

 "작업실에 계셔."

 "아빠가 계속 일했으면 좋겠다."

 "왜?"

 "일 안 하면 그지 되잖아."

 운전대를 잡은 손이 얼어붙었지만, 놀란 가슴을 삼켜내고 되물었다.

 "예솔은 거지 되는 게 걱정돼?"

 "응, 밥 못 먹잖아."

 다시 내 자식에게 투영된 내면의 불안함과 마주 섰다. 아이들에게 가난은 물려주기 싫은데 엄마의 자격지심이 스며든다. 아이들을 학원에 들여보내고 불쑥 찾아온 어느 날의 거리를 배회했다. 운명은 때때로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몰아 시린 밤거리를 내달리게 만든다. 그럴 때면 자신이 광활한 우주의 규칙에 따라 떠다니는 먼지같이 느껴져 온몸이 가느다랗게 떨려온다. 장을 볼 때마다 치솟는 물가에 몇 번이나 마트를 돌며 계산기를 두들긴다. 다음 달에도 학원을 보낼 수 있을지 가계부를 노려보며 낮은 숨을 내쉰다. 그토록 썼던 최선이란 단어가 과연 최선이었는지 의심하게 된다. 똑. 갑자기 머리끝이 차갑게 젖어 흘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비 같은 진눈깨비가 세상을 뿌옇게 흩트려 내렸다. 갈수록 식어버린 도로 위로 하얀 눈송이가 이불을 덮인다. 마치 겨울이 지나도 겨울일 것만 같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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