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세상의 둘째들은 기본적으로 서러운 마음이 얼마만큼은 있다. 첫째에게 밀리고 막내에게 치인다. 더군다나 딸, 딸, 아들 순으로 태어난 둘째는 우리 시절 더욱 그랬다. 인정받기 위해 언제부터 노력했을까? 잘 모르겠지만 아빠에게 작은 칭찬을 받았을 때 많이 기뻤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놀기 좋아하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했다. 잘 하고 있었는데 그해 가을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큰 슬픔에 잠긴 엄마가 걱정되어,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하며 씩씩하게 지냈다. 그런 노력이 1년 지나니 그만 힘들어졌다. 사춘기의 고민과 맞물려 다른 이를 생각하지 못할만큼 나만의 괴로움에 빠져들었다. 긴 터널의 끝은 생각지 못한 때에 찾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 봄이었다. 해결하지 못한 고민은 덮어둔 채, 잘 지내는 것처럼 살았다. 노래를 들었다. ‘나의 가장 낮은 마음’이라는 복음성가였다. 채플 시간, 대강당에서 전교생이 모여 있던 자리였는데 그날부터 일주일은 울며 지냈다. 학교에 작은 기도실이 있었는데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그곳에서 울다 너무 크게 울어 교목실로 불려 갔다. 누구에게도 속시원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친하지도 않은 목사님에게 털어놓았다. 누구에게 지기 싫었던 마음, 다른 이보다 위에 있기를 바랐던 마음이 아빠의 죽음으로 다 엉망이 된 것이 싫었다. 누가 나를 불쌍한 눈으로 보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마음은 잔뜩 움츠러들었고 얕보이지 않기 위해 긴장했다. 그 모든 애씀을 놓아버리니 울음이 터져 나왔나보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모든 긴장이 풀어졌고 마음은 편안해졌다. 남보다 낫지 않아도 된다니, 그리고 그런 낮은 마음을 기뻐해주시는 신이 있다니 너무 좋았다. 복잡한 심정을 정리하느라 조금 많이 울었고 그 울음이 그친 후 불안의 날들을 마칠 수 있었다. 남은 고등학교 생활, 입시 준비조차 즐겁고 재밌었다. 누구랑 비교하지 않으니 불안한 마음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공부 고민만 해결하면 다 인줄 알았던 학생의 삶이었기에, 몇년 후 다른 문제로 삶이 곤두박칠치기 전까지는 참 평안했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던 둘째의 마음이 자유를 얻었던 1996년 봄은 어느 때보다 화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