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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Nov 10. 2021

언니 옷과 시나몬빵

2019년 11월 15일

<반죽을 만져본다 또, 이때 소금이 알맞게 들어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반죽을 조금 떼어서 맛볼 수 있다 _ 제프리 헤멀먼의 브레드 중에서>

˝여보 민선생님 댁에 빵이랑 커피를 보내면 어떨까?˝
˝응 빵을 만들라는 이야기네, 그래요 그런데 맛있어하실까?˝
˝신경 써서 만들어 봐요˝

아내의 주문으로 시나몬 메이플 빵을 준비했습니다. 빵에 무엇을 넣느냐, 어떻게 굽느냐, 수분을 얼마나 함유하는가에 따라서 빵의 이름과 맛이 달라집니다. 아직까지 달달한 빵을 만들어 본 적은 없어서 고민이 좀 되었습니다.  선물로 주는 빵을 주문받고 보니, 내 빵이 아내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씩 웃음도 나왔습니다. 제가 만든 빵을 아끼는 분을 들라면 정확히 두 손가락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 손가락은 아내, 한 손가락은 7호 집 누나. 이 추세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 몇 개는 추가로 구부릴 수 있겠다는 희망도 있습니다.   

다른 의도로 빵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즉흥적으로 시작한 일입니다. 지금 제가 만드는 빵의 용도는 주로 아침과 점심에 싸가는 도시락, 일요일 우리 동네 티타임 간식이 주용도입니다. 제 빵이 우리 동네를 넘어 처음 시내로 나가는 일이다 보니, 특별한 무엇을 만들어 보고 싶은데 궁리를 하고, 책을 보아도 천연발효빵이라는 장점을 앞지를 것이 없습니다. 실은 빵의 세계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아직은 저의 빵 실력이 무척 단순합니다. 

그제 저녁에 발효종을 준비하고, 앉은뱅이 밀과 통밀을 반반 섞고, 건강에 좋은 밀기울을 넣었습니다. 밀가루 비율의 60% 정도 물을 넣고 살살 반죽을 해놓았습니다. 지난여름 빵을 배울 때 반죽의 느낌과 지금 손안에 감기는 반죽의 질기가 확연히 다릅니다. 빵을 하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손에 감각이 익을 때까지 계속하라고 합니다. 단 발효종과 통밀가루로만 하면 스스로 좌절을 할 수 있으니 가끔은 다른 것도 해보라고 합니다. 

요즘 들어 다른 것을 섞어 보고 싶은 욕구가 올라옵니다. 이번처럼 빵 주문을 받고 선물을 해야 할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다시 통밀과 발효종 100%로 반죽을 합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우리 가족이 시골에 살면서부터, 옷을 얻어 입을 기회가 많이 생겼습니다. 이웃이 많아지기도 했고, 허드레 옷도 필요해지면서 도시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간소한 옷차림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동네 안에서는 1년에 한 번 물물교환 같은 성격의 바자회도 열립니다.  딸아이는 내려받은 옷이 95%고 사주는 옷은 5% 정도 될까요? 생일날도 옷을 사준 적은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시내에 있는 문화센터에 가는 길에, 어린이 옷 코너에서 한 번 사준 기억이 있고, 눈이 제법 오는 우리 동네에서 겨울에 신을, 발목까지 오는 부츠를 구입해준 정도입니다. 아내 역시 아이의 속옷이나, 가볍게 입을 수 있는 면류의 옷 이외에는 아이의 옷을 신경 쓰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딸아이의 옷은 지금껏 주변에서 내려받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문받은 빵을 보낼 곳은 지난 4~5년간 딸아이에게 신발과 옷을 보내준 집입니다. 지역에 살다 보니 모임에서 만난 이웃들과 특별한 관계없이도 친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같은 또래의 엄마 아빠들이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왠지 모르게 가까워지는 그런 사이들 말입니다. 딸아이의 옷을 보내주는 민선생님 댁이 그런 경우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시민단체에서 주관하는 자연학교에 다녔는데 자연학교의 선생님이기도 하고, 풀뿌리 시민모임의 회원이기도 해서 일 년에 몇 차례 전체 모임에서 만나고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이웃입니다. 이웃이라고 하기에는 시골과 시내 사이의 거리가 멀기는 합니다.

민선생님은 딸만 셋입니다. 큰딸은 고등학생, 둘째와  셋째는 중학생입니다. 그 아이들이 입던 옷들을 우리 딸아이가 물려받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여러 집에서 오는 옷 중에 민선생님 댁에서 오는 옷들을 좋아합니다. 신발도 오고, 다양한 취향의 옷들이 섞여 있고, 디자인도 좋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브랜드에 눈을 뜨면서 상표가 달린 옷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일전에 보내준 체육복은 검은색 바탕에, 팔에는 노란 줄이 세 개 그어져 있는 브랜드 상품입니다. 아이는 일주일 정도 그 옷을 매일 입고 다니더니 ˝아빠 이 옷 빨아야겠지?˝ 시골에서 살면 남들과 비교될 일이 없어서 좋습니다. 회사일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동네에서의 제 옷차림은 헐렁이 같다고 하면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다시 빵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민선생님 댁에 보낼 빵을 아침에 구웠습니다. 이번에 만든 빵은 시나몬가루와 메이플 시럽을 넣고 발효종으로 만든 빵입니다. 모양도 잘 나오고 향도 좋습니다. 두 덩어리를 만들어서 하나는 포장을 했습니다. 아내에게도 보여주니 괜찮다고 하네요. 아내는 원두커피와 책, 미술전시회 입장권 3장을 잘 포장해서 민선생님에게 다녀오겠다고 합니다. 뿌듯한 아침이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 3호 집 누님은 쉬는 날에는 식사 손님을 초대해서 손수 밥을 지어 줄 때가 행복하다고 합니다. 식당에서 사주는 밥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자기 손으로 쌀을 씻고 올려서 따뜻하게 한 끼 밥을 대접할 때가 자기에게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하는데, 저도 그 말에 공감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번에 빵을 구워서 처음 시내로 내보냈습니다. 건축가가 웬 빵을 하느냐고 의아해하는 분들도 계신데, 이럴 때 써먹으려고 배웠다고, 앞으로는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빵을 보내고 나서 커피를 내리고 빵칼로 빵을 자르고 시나몬 메이플 발효빵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쩌죠? 이일을 어찌해야 하나요? 빵을 반죽할 때 소금 넣는 것을 잊었나 봅니다. 소금이 안 들어갔어요. 소금이 안 들어가면 아무 맛이 없는데 그런 빵을 선물로 보냈습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 민선생님께 잼이나 소금 간 한 야채샐러드랑 같이 드시라고 이야기 좀 해줄래?˝

민선생님께 보낼 빵인데 모양으로 보아서는 평점이 그리 좋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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