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oooa May 21. 2020

나의 이집트, 나의 다합

나의 보물




오늘의 새벽은 앨범을 뒤져보는 시간이었다.


잔잔히 마음을 울리는 모니터 속으로 빨려들어가니

당장 방 문을 열면 간혹 쥐가 나오지만

나름 깔끔한 다합의 우리집 앞마당이 있을 것만 같다.


기억을 더듬어 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보았다.

멀리까지 나가지는 않았고,

제이스 바로 앞에 묶여 있는 작은 배 까지만


쏟아져 내리는 빛줄기를 따라가다

몸을 뒤집으면 보이는 파도의 모양은

모래사장에 철썩철썩 밀려오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편하게 누울 수 있는 매트리스처럼 보드랍고 푹신할 것만 같다.

그래서 다들 바다에 누워 있는 걸까?


천천히 제이스 앞으로 걸어 나오는 내 모습은 세상 까맣다.

얼굴에는 마스크 자국이 남아 있고,

이랑 눈만 하얗게 보여서는 뭐가 좋다고 저리 웃고 있는지.

뜨거운 햇볕에 다 상해버린 머릿결이 바닷물에 젖어

착 달라붙어 있다.

눈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핀과 마스크를 테이블에 올려둔 뒤,

요즘 맛이 오른 수박쥬스를 입에 가져가본다.


카페에 들어와 입구를 바라보고서 오른쪽에 있는

넓은 테이블에는 동현이형이 병관이와 수업을 준비하고 있고,

같이 바다에 들어갔던 자주는 오늘도 입에 피를 머금고 있다.

별이랑 영훈이는 언제 나왔는지 이미 다 씻은 상태고

슬이는 고프로에 찍힌 영상들을 보고 있다.

가장 멀리에 떠 있는 부이에는 정현이형이 아직 트레이닝을 하고 있나보다.


라이트하우스 삼거리로 나오면 보이는 우리들의 아지트에는

유카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오늘도 유는 없다.

카운터에는 아문이형이 아무니카노를 만들고 있고,

노란 머리의 기범이형과 장발의 경복이가 쇼파에 누워 있다.

가장 바깥쪽 테이블에 사랑이 누나가 만든 

금요마켓의 컵밥이 보인다.

내꺼를 제외하면 나머지 3개는 누구꺼람?


분명 가장 차가운 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려놓았지만

따뜻한 물만 나오는 아프리카의 신비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땀 흘리며 씻고 나왔더니 카페는 어느새 술판이다.

오늘도 분명 은재형이 술 먹자고 찾아와선 여럿 꼬셨을거라


달아오르는 밤이다.

희중이 형 이름이 들리는 걸 보니 세계 일주가 시작됐나 보다

다이빙을 위해 당분간 술은 절대 안먹겠다던 홍팩은

옆에 있는 헣헣 웃음 소리의 형존버원 누나랑

불꽃남자 때문에 몇 잔 들이켰을거라 크크


몹시 그리운 여름날의 기억이다.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소중한 내 여행, 내 보물들.




작가의 이전글 #11.5 피어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