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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Nov 19. 2023

일상에세이#10. 정작 나에게 필요한 인테리어

사람의 공간

직접 타일을 자르고 페인트를 칠하며 시작했던 우리의 첫 공간 꾸미기는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와 우리 가족에게 좋은 공간을 만들고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고민했다.’라고 마침표를 찍지만 여전히, 아직도 ing형이다.


2024년 중반에 이사를 앞두고 있다. 2012년에 결혼하고 8번째 이사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5년을 꼬박 채우고 나가는 걸 생각하면 정말 지긋지긋하게 이사를 다녔다.

신혼집은 실평수가 13평 남짓한 아주 작은 아파트였고 중간에 49평의 아파트에서 네 가족이 살았던 것까지 고려하면 우리 집의 공간 변화는 어마어마하다. 몸으로 공간을 익힌 '공간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다. 심지어 매 공간 나는 진심이었다.

디자인 회사에서 일했던 탓인지 어릴 때부터 내 공간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서 인지 어떤 공간에서 살든 나는 늘 마음에 쏙 드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고자 꽤 노력했다. 내 집이 아니라서 혹은 잠깐 살집이라서 어영부영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큰돈 드는 공사는 못하더라도 내 손으로 뚝딱뚝딱 고쳐보기도 하고 가구를 구입해 공간을 구성해 보기도 하며 매일을 공간고민을 하며 살았다. 남편은 극성스러운 부인을 덕에(?) 준 인테리어 전문가가 되어버렸다.

공간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각종 마케팅에 속지 않으리라 다짐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가꾸어야지 생각도 많이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물건을 구비하고자 고민하다가 광고에 속기도 하고 정작 사고 싶었던 아이템은 비싸다고 뒤로 젖혀 두었다가 엉뚱한 아이템에 돈을 왕창 쏟아붓는 일도 다반사였다.


내년이사를 앞두고 내가 살고 싶은 공간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평수를 4평 줄여서 이사하다 보니 더더욱이 고민이 깊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살 공간에서 선택과 집중이 꼭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꼭 하고 싶은 것에 과감히 투자하기 위해서는 미니멀 ‘라이프’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비용과 에너지 시간 어느 하나 한정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우리가 무한히 얻어낼 수 없기에 선택은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공간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한정적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우선으로 두고 공간을 배치하고 꾸밀 것인가를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집에 이사 올 때쯤 나의 취향은 거의 완성형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목적지가 있어 그곳에 다다르는 완성형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궤도에 올라서서 이제는 그 길을 따라 물건도 구입하고 살림을 해가며 그렇게 그렇게 나이 들어갈 수 있었던 완성형!

그런데 취향라이프에도 코로나의 영향이 컸다. 나는 취향과 시각적 이미지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눈앞에서 집이 쉴 시간 없이 돌아가며 어질러지는 모습이 너무 괴로웠다. 내 공간이 구획과 크기에 있어 그 모든 것을 품어줄 수 없음이 어떨 때는 슬펐다. 심리적으로도 햇빛을 많이 보지 못하고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던 시기였기에 스스로의 판단력도 흐려졌을 뿐 아니라 가벼이 대화를 통해 마음을 털어낼 수 없는 기간이었다. 그럴 때 운동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더 많이 자고 더 많이 읽고 썼다면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혼란 속에서 현명하지 못했다.  

 공간에 사는 사람을 보려 하지 않고 어떤 공간인지만 내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다 같이 복닥이고 먹고 자고 싸우고 울고 웃는 그 공간에서 어질러지면 함께 치우고 혼자 있고 싶으면 한편에 앉으면 될 것을 개개인의 공간을 더 확보해야 할 것 같고 더 많은 공간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걸 물건을 구입하면서 채워보려고 했던 것 같다. 잘못된 물건의 선택은 또 다른 잘못된 물건을 불러왔고 자신했던 나의 취향도 무너졌다.


 다음 집을 기획하며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선은 내 마음을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것! 백지에 나의 그림을 채워간다고 생각하고 그려가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 공간의 사람들이 할 행위, 공간의 기능을 반드시 집어넣는 것이다. 우리 집 사람들은 앉아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많이 좋아하므로 앉을 공간을 각공간에 모두 만들어야 한다라든지 각 공간에 옷 입고 화장하고 자고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능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 같은 것이다. 지금 집에서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디자인을 했다가 옷을 모두 한 공간에 보관한다든지 하는 데서부터 공간구성이 무너지고 물건이 필요해지고 급하니까 사들인 물건으로 공간도 내 마음도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모였을 때 즐거이 함께 할 수 있지만 각 방에서 문을 닫고도 즐거울 수 있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를 나는 놓치지 않겠다. 그리고 취향을 고려할 때는 사회적인 인간일 필요는 없다는 점! 이 두 가지를 꼭 마음에 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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