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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Oct 26. 2023

나에게 불친절한 미니멀 라이프#3. 홈메이드 요거트

과정까지 완벽한 친환경 홈메이드 요거트?!

집에서 만든 요거트를 좋아한다.

온전히 발효가능한 분말을 구입해 우유만 넣고 만든 요거트 말고 불가리스 바이오 같은 시판 요구르트를 우유와 섞어 만들어 약간의 포도향이나 사과향이 퍼져서

이건 원래는 시판 달달한 요거트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딱 그 정도의 요거트!


번거롭지 않으면서도 건강도 챙기고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뿌듯함을 주는 적당한 맛이다.


 딸들은 꼬꼬마 시절부터 요거트를 참 좋아했다. 큰 그릇에 떠주면 자기 입에 먹는 것 반, 식탁과 벽에 바르는 게 반이었지만 나는 아이와 요거트를 간식으로 먹는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아이와 어른의 밥이 다를 수밖에 없던 즈음이었는데, 아이와 햇살이 떨어지는 거실에 앉아 여기저기 묻히면서도 방글방글 웃으며 같은 것을 먹을 수 있는 기쁨이 컸다.

이틀이 멀다 하고 요거트 메이커에 요거트를 만들었다. 로이첸 요거트 메이커를 사용했는데 친환경소재라고 했지만 어쨌는 우리 눈에 보기에는 플라스틱으로 보이는 용기였다. 언젠가부터 미니멀라이프와 제로웨이스트라는 키워드가 내 삶에 들어오고부터 그 용기가 거슬렸다. 그간 잘 먹었던 요거트도 내가 아이에게 혹여 환경호르몬을 과다 투입한 건 아닐까 고민하게 이르는 지경이 되었다.


나는 온라인 레시피를 뒤져가면서 냄비하나로 요거트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요거트 1회분씩 소분할 수 있는 유리용기와 보온성이 꽤 괜찮은 냄비를 준비하고 요거트가 잘 발효될 수 있도록 살폈다. 다행히 첫 작품은 성공으로 끝났는데 그 한 번의 성공이 어쩌면 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갑자기 잘 쓰던 요거트 메이커를 냉장고 윗장으로 보냈고 유리병과의 사투를 벌였다. 유리병과 냄비로 완성하는 요거트는 상대적으로 일관적이지 않아 어떤 날은 요거트가 되다만 순두부 같은 형상을 보였고 어느 날은 그냥 우유에 요거트가 섞인 채로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를 했다. 완벽한 레시피를 찾기 위한 장인도 아닌데 졸지에 시간 온도를 체크하는 레시피페이퍼까지 동원하며 나는 요거트에 목매고 있었다. 그 과정의 장인이 되겠다며 그 많은 유리용기를 구입하고 택배를 받으며 탄소를 배출했다는 것은 이미 잊었고 하수구로 버려지는 우유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엉뚱한데 100퍼센트 아니 120퍼센트의 에너지를 사용해 버린 나는 어차피 불가리스 하나와 우유 하나를 구입하느니 큰 요거트를 하나 사서 떠먹으면 용기가 한 개밖에 배출되지 않는다는 기적의 논리로 접근하며 요거트를 만들지 않게 되었다.

급기야는 대형마트, 친환경 매장들을 돌며 가장 맛있는 요거트를 찾아 헤맸다.


아무리 먹어도 내가 좋아하는 포도향만 나는 꾸덕한 홈메이드 요거트는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나는 왜 이런 미련한 짓이 나와 지구와 내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어떤 것이든 몸에 배이는 과정에서는 광적인 행동이 나오게 마련이라지만 글을 쓰는 지금 순간에도 웃음이 번진다.

결국 나는 내가 고수하던 방식으로 요거트를 다시 만들었고 우리는 다시 아주 많이 요거트를 먹게 되었다.

미니멀한 삶, 친환경적인 삶의 방식은 어쩌면 그 과정의 완벽성보다는 간단하고 쉽고 반복할 수 있는 일상을 만들 때 더 가까이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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