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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Nov 22. 2023

시댁 EP6. 조카딸 결혼식에서도

나 결혼할 때 참 불쌍했단다.

지난 주말 아이아빠의 사촌 아가씨의 결혼식이 있었다.

내가 결혼했을 때엔 고등학생이었던 아가씨.

진로를 고민하며 앳되고 앳되었던 아가씨였다.


내가 고등학생을 과외하기도 했던 터라 함께 모이면 과자 까먹으며 진로 이야기도 하며

호칭을 부르는 것이 정석이라는 걸 몰랐겠냐마는


동생같고 친구같아

사실 우리끼리는 이름을 부르는 일이 많았지만

질색팔색을 하는 어머님 때문에 꼭 아가씨라고 부르게 되었다. (과자 먹는 것도 혼나고)


그런 아가씨가 이십 대 후반이 되어 결혼을 한단다.

십 년을 치열하게 살아내더니 정말 누구보다 예쁘고 빛나는 신부로  결혼한단다.

정말 너무 예쁘고 예쁘다.


사랑할나이고 예쁜순간.


하지만

결혼한 선배로서 나는 참 이런 결혼식이 힘들다.

우리나라의 결혼이라는 제도가 저 앞에 서 있는 그 둘처럼 그렇게 장밋빛이 아님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둘이 살기 위해 결혼한다는 것은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다.


수줍은 목소리로 성혼선언문을 읽고 어떤 부부가 되겠노라 맛있는 음식을 해주겠다 같은 스타일의 어떤 부인이 되겠노라 다짐하는 아가씨를 보며

‘우리 예쁜 아가씨 그런 말 안 해도 되는데 아가씨 예쁘게 보이려 안 해도 괜찮아!’ 소리 내어 말해주고 싶더라.


사실 그런 예쁜 말들이 아직 어린 그 여인에게 얼마나 족쇄가 되는지 사람들이 점차 얼마나 그 편안함에 젖어드는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 작은 여인이 저 숨 막히는 어른들의 눈총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애써야 하는지 알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생각은 피곤하고 제도를 바꾸면  고생은 하고 돌아오는 것 없는 것 같음 본인들의 편의를 위해 개선하고 싶지도 개선해 볼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것 같다.


나도 못했지만 며느라기에 나오는 첫째 며느리처럼 아예 철벽을 치는 것이 감정소모가 덜 하다 믿는다. 물론 여기에는 당사자가 욕먹어가면서라도 자신의 기반을 구축해 갈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 그래서 나는 다 괜찮다. 나도 뚫어내지 못했던 것이니까.


나도 노력하고 있지만 첫 단추를 잘못 꿰었으니 나의 후배들에게 아랫세대들에게는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그러지 말자고 그러기에는 젊음이 너무 짧고, 그러기에는 우리 인생에 다른 중요한 것들이 너무 많다고.

그렇게 에너지 쓰는 거 아니라고. 지친다고.


속에서야 파도가 일건 말건

오랜만에 보는 시댁 숙모 삼촌들과 인사하며 많이 웃고 떠들었다.

아가씨의 안팎으로의 예쁨도 자랑스럽고 아깝고 아까웠고 말이다.


그 와중에 나의 시어머니는  신랑신부 예쁘다 반갑다 같은 인사치레는 패스하고

내 아들이 새신랑 같다느니 너무 멋있다느니 같은 말을 시전하고 아무 말하지 않았다.


급기야는 오늘 전화가 왔다.

아가씨 결혼식에 아들이 너무 멋있었다고

그리고 본인 결혼할 때 생각이 나서 집에 와서 몇 번이고 울컥했다고, 시댁 어르신도 안 계시는 잔치를 치러 본인의 엄마아빠께 너무 미안했노라고......


백번 양보해 본인 결혼식 생각이 났을 수 있지만 며느리에게 할 이야기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결혼식이 떠올랐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결혼할 아이들이 생각났다는 것도 아니고 더더욱이 결혼한 아가씨가 아깝다는 말은 아니었다니.


뭘 바라겠냐마는......


나는 집안 어른이랑 대화하고 싶다.


본인의 소녀성을 서른 살이나 어린 며느리에게 인정해 달라고 하는 공주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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