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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Aug 09. 2024

501호 반장아줌마의 엄마

할머니 저는 아가야가 아니라 단비입니다.

501호에는 우리 할머니보다 더 나이 많은 할머니 한 분이랑 

우리 엄마보다 더 나이 많은 아줌마 두 분만 산다.

할머니는 본인을 501호 반장아줌마의 엄마라고 소개하셨다. 

"아가, 할머니 딸이 반장이야." 어른들도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지만 

뭐 할머니들 학교도 있는 거고 대학교 다음에 다니는 학교도 있다고 했으니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단지 나이가 엄청 많은 할머니가 누구누구의 엄마라고 소개하니 이상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묶어서 대표를 뽑는데 반장이라고 한다고 한다. 

이전에 주소가 지금처럼 도로명이나 아파트 이름이 아니었을 때에는 몇 통 몇 반이라고 했다는데

그래도 왜 이름을 헷갈리게 학교에서 쓰는 반장이랑 똑같이 반장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501호 할머니에게는 손자나 손녀가 없지만 할머니는 할머니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신다.

이 아파트에 이사 온 게 내가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할머니는 아직도 나를 볼 때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이사 올 때 퐁퐁을 돌렸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그러니까 5년 동안 들었다는 거다.

퐁퐁이 뭔지 몰라 엄마에게 물어보니 주방세제란다.

주방세제가 왜 퐁퐁이 되었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옛날에 유명한 퐁퐁이라는 세제가 있었단다.

여하튼 퐁퐁이건 프로쉬건 몇 년 동안 날 볼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 덕분에 

나는 슬금슬금 피하기 마련이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엄마아빠가 지나갈 때면 나는 이 아파트에 십 년 넘게 살며 뭐 받아본 건 이 집이 처음이라고 

애기들도 이쁘게 자라고 아주 너무 좋다고 그 이야기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다.


할머니가 좀 참견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할머니와 마주치면 인사를 꼭 한다.

그날 일을 잊을 수 없다.

발레를 다녀오는 날이었는데 발레 보강이라 조금 늦은 시간에 끝나버렸다. 

늘 가는 길이었는데 집 앞이 많이 어두웠다. 

우리 아파트 밖으로 통하는 작은 화단이 있어 등을 켜두어도 어둡다. 

cctv도 있고 바로 옆에 아파트 도서관도 있고 우리 집이 층이 낮으니 엄마가 내다보고 하면 무섭지는 않은데 그날따라 교복을 입은 언니 셋이 우리 동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한 언니가 휴대폰을 들고 낄낄대며 친구들이랑 유튜브를 보고 있었고 한 언니는 담배를 들고 있었다.

 분명 담배였다. 

교복을 입고 아파트 앞에서 저렇게 담배를 피운다는 게 너무 이상해서 가짜같이 보였는데 냄새가 분명 났다.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쩌지? 하필이면 그날따라 폰을 집에 두고 왔다. 

엄마라고 크게 외치고 싶었는데 언니들이 모두 나를 쳐다볼 것 같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양손 가득 장을 보고 돌아오시던 할머니가 "아가, 왜 여기 이러고 있어 얼른 들어가자." 하셨다.

너무 무서웠어서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는데 

이 언니들이 무서운 거랑  할머니를 불편해했던 마음이 뒤섞여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 이후 할머니는 종종 늦은 시간에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시는 일이 늘었는데 

그게 나 때문인지 할머니가 정말 산책을 하시는 건지 알 수없지만

나는 그냥 든든했다.


할머니는 조금 불편하고 많이 따뜻한 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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