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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May 13. 2024

나는 나랑 싸우고 싶지 않다

하면 할수록 진만 빠지니까



“학문을 잘못하면 병이 들 수도 있을 거요. 자기 자신을 찾다 보면 좁쌀이 되니까요.”


박경리, <토지 5> 중


*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많은 일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산다는 게 그냥 늘상 무슨 일이 생기는 과정이다 보니 이제는 다 그냥 시큰둥해졌다. 어제까지 나한테 있었던 일을 다시 글로 쓰는 건 복장을 터뜨리는 짓밖에 안 될 것 같아서, 하루하루 지렁이처럼 흘러가는 것이나 적어봐야겠다.

독서란 건 책등이 아무리 두터워도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반나절만 지나면 어느새 여남은 페이지만 팔랑팔랑 남기고 있는 줄 알았는데, 토지는 읽어도 읽어도 끝이 나지 않는다. 게으름 피운 게 없지 않지만 석 달을 내내 붙들어 간신히 딱 절반까지 왔다. 18권 중 9권. 사람이 살아있는 것처럼 책도 흘러간다. 단단했던 동학도들의 기세는 화분흙처럼 바스라지고, 갈피를 잡기 힘들고 흉흉한 뜬소문이 부유하는 시대. 이미 죽은 사람과 곧 죽을 사람과 기꺼이 스스로 죽는 사람들이 한데 구르는 9권. 대하소설의 허리를 지나고 있다. 동학농민운동과 3.1 운동이 일어난 지도 한참 되었으니 앞으로 책의 내용은 더 서슬퍼래 질것이다. 귀한 책이다. 열여덟 권 통째로 오물오물 씹어서 뱃속에 넣고 싶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귀하디 귀한 책.


나는 나에 대해서 분석하고 기대하고 평가하는 걸 포기했다. 나는 내가 생각보다 더 이기적이고, 기만적이고, 가식적인 멍청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심지도 없으면서 콧대만 살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아닌 척을 한다. 도망가지도 못해 그냥저냥 산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을 평생 감추면서 살 수 있을 정도의 껍데기는 만들어놨으니까. 나는 나랑 싸우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해도 더 좋은 사람이 못된다는 걸, 아는 척을 해도 넓은 시야를 가진 명민한 사람과는 다르다는 걸, 사려 깊고 싶었지만 속물적이고 혐오스러운 사람이라는 걸 내 자신이 안다. 이 모든 걸 외면하지도 못할 만큼 어중간한 양심은 있어서는. 차라리 몰랐다면 머릿속에 뇌 대신 복숭아 깡통이 굴러다니는 해맑은 젊은이로 살 수 있었을까. 연인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으면서, 지금처럼 죽지 말아야 할 이유를 노트에 적으면서 되새기지 않아도 될 만큼 스스로를 지키면서.

나는 나와 싸우고 싶지 않아서 나한테 잘해주고 싶지도 않다. 그냥 뇌도 몸도 꿈도 눈도 다 따로 노는 것 같다. 회사에 가면 일을 해야지. 술을 진탕 마시면 기분이 좋아. 죽고 싶으면 죽을 생각이 안 들 때까지 마셔야지. 이러다 죽으면 뭐, 바라던 바다.


날씨가 좋았던 것을 기록한다. 오늘 창밖으로 청명한 북한산을 보며 확인한 날씨 예보에 ’미세먼지 어제보다 나쁨’ 표시가 떴던 것을 기록한다. 맥주캔에 심어놓은 무순 새싹이 햇살 드는 방향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기록한다. 대청소를 하고 가구를 바꾸며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을 기록한다. 그리고 나는 뭔가를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안돼. 멍청한 짓 하지 마.


학문을 제대로 해본 적도, 식견이 넓었던 적도 없는데 나는 좁쌀이 되었다. 귓구멍만 한 틈으로 세상을 본다. 쿰쿰하고 시체냄새가 나는 총알구멍 안에서 숨 쉬듯이 고민만 하는 것에 지친다. 나도 햇빛을 듬뿍 받으며 말린 이불처럼 커다래질 수는 없을까. 없다. 영 그럴 일 없는 인간이다. 이런 서글픈 생각을 하기 싫어서 죽고 싶다. 나는 나와 싸우고 싶지 않다. 이제 나를 싫어하는 데에도 진절머리가 난다. 생각해 보면 세상 보는 눈이 귓구멍보다 커야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냥 시체냄새나는 구멍 안에 있어야겠다. 아늑하게 허울 좋게 썩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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