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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un 08. 2024

피가 도는 항아리

벌떡벌떡, 울컥울컥.

Hello, Bones!


입 안에 무언가를 넣는다니, 실은 대단한 일 아닐까.

바깥에 있던 음식을 안쪽으로 넣는 것인데.

다들 잘도 그렇게 무서운 짓을 할 수 있구나. 어떤 위험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입부터 엉덩이까지 미지의 무언가가 통과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꽤나 대담한 짓이다.


가시라기 히로키, <먹는 것과 싸는 것>


*

또 건강검진을 받고 왔다.

회사돈으로 몇 가지 추가 검사를 넣었더니 한 시간이면 끝나던 검진이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골밀도 검사, 심전도 검사. 부정맥 검사. 뭔지도 모를 기계들이 선을 주렁주렁 끌고 내 몸 부분 부분에 연결된다. 그냥 허부적거리는 줄만 알았던 몸에 무게감이 생긴다. 이 안에 뼈도 있고 피고 있다. 바늘하나 꽂았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뽑혀 나오는 피를 보면 얌전히 몸속에만 담겨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피가 꽉 찬 작은 통 네 병을 보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본 것보다 훨씬 검다고. 마침 어제 현충일 영화로 <황산벌>을 틀었다가 백마 피를 들이켜는 장면을 본 참이다. 입 옆에 말라붙은 것조차도 빨갛던 피. 나한테서 나온 것은 장미가 썩어버린 색에 가깝다. 하긴 환기도 안 되는 몸 안에서 뱅뱅 도는 액체가 깨끗하면 얼마나 깨끗하겠어.


초음파를 하는데 간호사분이 나직하게 말한다.


동맥을 봐야 해서, 고개 들고 오른쪽 벽을 보실게요.


두터운 혈관이 있는 곳에 차가운 젤이 묻은 초음파 기계가 문대어진다. 반대쪽 보실게요, 해서 왼쪽 벽을 본다. 방금 봤던 피가 벌떡벌떡 흐르는 곳일 테다. 목빗근을 따라 심어져 있는 동맥을 보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사타구니 쪽 지나가는 가장 큰 정맥 볼 거예요. 엉덩이 살짝 들어주시면 바지 내리겠습니다.


나는 진짜로 몸이 있구나. 골반에 정맥이 지나가는 줄도 몰랐다. 그것도 몸 중에서 가장 커다란 정맥, 더러운 피가 심장으로 들어가는 관이 이런 데 있었다니.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하반신이 없는 사람들은 두껍고 중요한 혈관을 잃은 채 살고 있는 걸까. 우리 몸에 있는 장기는 세 종류라고 했는데. 없으면 죽는 것, 없어도 죽지는 않는 것, 없어도 상관없는 것. 대정맥은 없어도 죽지는 않는가 보다. 콩팥도, 폐도, 간도 일부만 적당히 떼어내면 죽지는 않는 것. 어쩌면 아까 봤던 진한 피는 새것이 아니라 몸을 돌고 돈 낡은 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았던 것보다 까맸는지도. 내 골반에 정맥이 지나간다. 목에는 동맥이 지나간다. 폭포처럼 피가 몰아친다. 조금의 틈만 생겨도 당장에 뛰쳐나올 것처럼.


동맥경화 검사를 하는데 발목과 종아리에 기계를 감았다가 새삼 놀랐다. 팔로 혈압을 재던 느낌이 다리로 가니까 낯설구나. 위협받는 느낌이다. 건강하려고 하는 검진이 심리건강에는 영 좋지 않다. 깊게 깊게 빠져든다. 내가 몸을 가진, 몸이라는 항아리 안에 갇힌 존재라는 상념에. <황산벌> 전에 보았던 영화 <헌트>에서 대학생들을 고문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옹송그린 채로 밧줄에 팔다리가 묶어서, 바베큐 고기처럼 쇠막대에 매달려있던 사람들. 거기에도 피가 나왔다. 전기도 나오고, 뼈도 나왔다. 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전기가 통하는 고기로 태어나 쉬이 빠지는 수각이 달린 인간이기 때문에.


새삼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입으로 들어가 항문으로 나오는 구조라면 인간도 섬세한 지렁이가 아닐까. 밖에 있는 것을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이면 섹스도 식사의 개념이 아닐까. 받아들이는 쪽이 식사라면 박아 넣는 쪽은 배설인 것이다. 참 무서운 짓이다. 정체 모를 것을, 온전히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을 항아리에 담고 항아리에서 꺼낸다. 먹는 것도 싸는 것도 건강검진을 하는 것도 암에 걸리는 것도 다 이상한 일이다. 인간이 하는 일중에, 인간 몸에서 작동하는 것 중에 멀쩡히 이해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존재 자체가 이상하다. 벌떡벌떡, 피가 도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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