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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세요, 당신은 나치랍니다.

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감상

by 해인
트위터 @aowhhr 동지의 빨갱이 스티커(흰)



아니!

이놈 소설 참 마음에 든다.

마침 출근길부터 나는 빨갱이가 맞다는 글을 쓴 판에 “여기 빨갱이가 있네”라는 대사가 나오는 소설을 읽다니! 이럴 때는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 그래, 여기에 빨갱이가 있다.

투쟁하는 농성장에 가면 구석에서 얌전히 조용히 있게 된다. 그곳의 다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들이고 때때로는 중학생, 고등학생도 온다. 혹시 자랑처럼 잔소리처럼 비칠까 말 한마디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시퍼런 농성천막 안에서도 아이들의 목소리는 무지개처럼 퍼진다. 유쾌하고 통통 튄다. 때로는 내가 이해 못 할 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내가 저 나이 때는 해보지 못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눈만 꿈벅거리며 재잘거리는 전사들을 본다. 알아들을 수 없어도 그들과 여기에 있는 것이 좋다.

요즘 어린 친구들의 자랑거리는 이거다.

‘빨갱이’.

트위터의 한 동지가 새빨간 스티커를 만들었다.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네? 제가

빨갱이

라고요??

어이쿠 과찬이십니다~

노란 글씨와 흰 글씨 두 가지 버전이 있는 스티커는 불티나게 팔렸다. 투쟁현장에서는 다들 서로의 손에 뭔가를 쥐어주려고 안달이라, 갈 때마다 간식거리며 스티커, 핫팩이 한 짐 가득이다. 이 인기 많은 스티커를 나는 아직 받지 못했다. 하지만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김형수 지회장은 이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고 사진을 찍었다. 빨갱이. 말문이 막히기도 하고, 머리가 띵해지도 한다. 처음 국가의 민간인 학살을 뒤적이던 2022년, 나는 스스로가 빨갱이가 아니라고 설득하는 데에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사람의 죽음과 진실의 침묵에 분노하는 것뿐이고, 절대로 사회주의 공산국가 북한의 옹호자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기 때문에. 빨갱이 소리를 듣기 싫었기 때문에.

사람의 기본 교육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빨갱이와 베트콩을 누군가를 모욕하기에 가장 힘 센 말이라고 생각했고, 반공과 애국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것이었으며, 군인아저씨들께 편지를 보내고, 아이러니하게도 통일은 염원하는 표어를 썼다. 기이한 시절이었다. 어째서 그것들이 나쁜 것인지, 내가 사는 조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려주지 않으면서 강렬하게 뇌리에 남도록 세뇌시켰다. 나는 빨치산이나 빨갱이가 되기 싫었다. 그렇게 불리는 것들은 시뻘건 거죽에 도깨비 같은 외모를 한 괴물 같았다. 나 같은 건 한 손으로 들어서 산채로 와작와작 씹어먹을 것 같았다. 국가가 나에게 간첩과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고 가르쳤다. 해로운 짐승처럼(요즘은 해로운 짐승도 함부로 죽이면 안 되지만) 보자마자 총으로 쏴 죽여도 문제없다고 말했다. 빨갱이가, 간첩이 뭔지도 몰랐지만 그들은 죽여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이 아이들은 그런 세뇌를 받고도 이렇게 당찬 걸까? 나는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오그라들어 펴지지가 않는데. 용감한 척 두렵지 않은 척 광장에 나가도 언젠가 낙인찍혀 남영동에 잡혀가지 않을까 속으로는 무서워 눈치를 보는데.

소설 속이 어지럽다. 온갖 밈과 줄임말, 짤방과 비속어가 돌아다녀서 집중하기 힘들다. 예쁜 언어를 좋아하는 나는 이 시대에 대량 생산되는 신조어와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살게 된다. 아마 그래서 최근에 나오는 한국소설들을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 같은 것. 어떤 지점을 말하려 하는지는 분명히 알겠으나,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멀미하는 기분이 들만큼 힘들었다. 단어와 문장과 문단이 하나도 빠짐없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다. 내가 알려고 하지 않았던 요즘 어린 친구들의 정신상태가 이런 걸까?

눈살을 찌푸리며 읽다가 스스로가 너무 늙다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간을 폈다. 그냥 내 취향에 조금 안 맞는 묘사일 뿐이다. 하지만 작가가 이러한 방식을 선택한 이유도 알겠다. 세상은 이미 깊고 무거운 것들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으로 복잡해졌다.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 “

아니. 잘못된 건 세상이다.

알고 보니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자본주의고, 세상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게 사회주의더라. 그래서 너와 나는 빨갱이인 거야.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서 노동하는 것, 그 노동을 끊임없이 해나가도 쥘 수 없는 뭔가를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목에 걸고 있는 것, 그것이 세상이다. 나 하나가 잘못이라면 그냥 죽어 없어지면 된다. 세상에 인구는 수없이 많으니까. 그것은 기업의 생각이다. 자본가의 생각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인간으로 보이는 당신과 나는 빨갱이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은 빨갱이일 수밖에 없다. 내 소중한 사람이 일하다 죽지 않기를, 굶어서 죽지 않기를, 비관해서 죽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빨갱이일 수밖에 없다.

사람? 또 구해. 하겠다는 사람 많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인정하세요. 당신과 노동자는 다른 종족 같지요? 노력하지 않아서, 부모를 잘못 만나서, 공부머리가 없어서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벌레 같은 것들이 발 밑에 깔려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런 것들이 제풀에 죽어버리는 거야 본인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인정하세요.

당신은 나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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