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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같니? 빨갱이 맞아.

허허 어이쿠 과찬이십니다

by 해인
트위터 @aowhhr 동지의 빨갱이 스티커(노)



퇴사하러 출근한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사직서를 내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모른 것이 신기하다. IRP 계좌도, 퇴직금품도, 연차수당도.

오늘은 평소보다 출근 시간이 빠르다. 과장님이 점심을 사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엄청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다. 좋은 일은 회사에서보다 일하러 나갔던 바에서 바텐더들과 있을 때 더 많이 일어났다. 나는 이 회사가 그립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면 나쁘지 않은 때에 퇴사를 한다. 봄이 오고 있고, 날은 맑다. 좋은 일이 가득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오늘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 본관에서 지혜복 선생님의 밤샘 농성이 3일 째다. 성폭행당한 학생을 묵인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다가 부당해고를 당한 지혜복 선생님은 2월 19일 서울교육감 정근식과 3개월 전부터 잡은 면담에 바람을 맞았다. 1월 21일로 투쟁 1년을 맞은 지혜복 선생님의 곁을 동료시민들이 지키고 있다. 나는 내일 글쓰기 강의에 갈 수 있을까?

서울 교육청에서 밤을 지새우고, 2시에 강의에 갔다가 다시 광화문에 갈 수 있을까? 2주가 짧다고 생각했는데 강의날짜가 벌써 내일이다. 합평글도 안 썼고, 책도 읽지 않았다. 부랴부랴 도서관을 찾아보니 내 앞에 예약자만 5명이다. 강의에 참여하는 의미가 없다. 글쓰기 강의를 위해 내 속에 채워놓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강의를 신청한 것을 후회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괜히 신청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글은 언제나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것이 낫다. 퇴사를 하고 나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잘 모르겠다. 모든 게 핑계처럼 느껴진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동지들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자세한 판결은 다음과 같다.

김형수 지회장 징역 4년 6개월 구형, 징역 3년, 벌금 100만 원, 집유 4년 확정

유최안 부지회장 징역 3년 구형 징역 2년, 집유 2년 확정

그 외 피고인 징역 및 벌금형 확정.

난생처음 들어가 본 재판장에, 죄 없는 사람들의 선고를 들으며 숨이 막혔다.

집행유예.

너도 나도 운다. 아무 의미도 없지만 그냥 운다. 적어도 사형은 면했다는 마음이고, 무죄가 아닌 것이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이다.

그래도 당장 철장 안으로 갈 일은 없게 되었다. 동지들은 이 판결이 투쟁의 발목을 묶기 위한 것이라고, 기업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거통고지회와 함께 싸우던 시민 두 명이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노동자지회에 가입신청을 했고, 받아들여졌다. 나와 같이 빨간 띠를 두르고 있던 친구들은 이제 금속노조 흰 글씨가 수놓아진 남색 조끼를 입고 있다. 그들은 이미 훌륭한 조합원이다.

재판을 보고 창원에 단기계약 근로를 하다가 1월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장 노동자의 유가족 농성장에 다녀왔다. 번드르르 지어진 창원 컨벤션 센터 앞이다. 1월 1일, 내가 거제에서 동지들과 해돋이를 볼 때 유가족들은 아빠이자 남편이자 동생이었던 남자의 시체를 보았다. 사발면과 간식거리를 농성천막에 전해주다 조금 울었다. 한 달간 농성을 하다가 이제야 원청과 이야기의 물꼬가 트였다고 한다. 앳되어 보이는 외동딸의 눈가가 계속 빨갰다. 대신 내가 찔찔 울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부산 서면으로 가서 서면시장 부당해고 노동자의 수요집회에 참여했다. 많아봤자 스무 명, 서울에 비하면 한 줌거리인 인원인데 집회를 진행하는 허진희 동지는 연신 감탄하며 감사인사를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와줘서 고맙다고. 싸울 수 있는 힘이 난다고. 부산의 공기는 따뜻한데 사람들의 시선은 따끔따끔하다. 행진하는 우리가 빨갱이로 보이지? 빨갱이 맞아.

노숙에 쩌든 몸을 호텔에서 녹이고 대구의 태경산업 성서공단 농성투쟁장과 금호강 습지 지키기 삽질농성 현장에 다녀왔다. 서울 올라오는 길에 구미 표지판이 보여 한국옵티칼의 불타버린 공장에서 고공농성 중인 소현숙, 박정혜 동지를 보고 왔다. 하는 말은 늘 똑같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어요. 저는 100명 분의 마음을 가지고 왔어요. 다들 이곳에 오고 싶지만 이런저런 여건으로 오지 못했으니까요.

회사 컴퓨터를 반납하고 퇴사서류를 제출하면 서울교육청에 갈 것이다. 밤을 새우게 될지 모르니 두툼한 방한복을 챙겨야겠다. 회사에 다니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단한 게 맞다. 나는 이번에 글을 쓰기 위한 준비가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다. 무작정 덤벼들었다가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근데 뭐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한화빌딩 앞 거통고 저녁 선전전에 연대나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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