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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글 쓸 시간도 없어 죽겠는데. 안 그래요, 별님?

by 해인


2022년 6월 22일부터 7월 22일까지 0.3평 남짓한 철창 속에 스스로 몸을 가두고 임금 인상 파업을 벌인 유최안 동지




나는

아마

내일도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통영 법원 아침 기자회견과 재판에 참관하고 창원 컨벤션센터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읍소하는 농성장에 연대한 다음에 부산 서면시장 부당해고 노동자들의 수요집회에 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하루의 반절을 차 안에서 운전만 하며 보낼 것이다. 핸들을 잡고 있으면 글도 못 쓴다. 글은커녕 밥 한 끼 맘 편히 먹을 시간도 없다. 차의 뒷좌석에는 농성장에 후원할 사발면과 간식들이 꽉 차있다. 전국 방방곡곡 투쟁할 구석 없이

놀러 다니기만 하면

참 좋겠다.

나는 지금 인생 두 번째 노숙 중이다. 첫 번째는 지난 1월 10일 경북 구미의 한국옵티컬 불타버린 공장 옥상에서 고공 농성 중인 박정혜, 소현숙 동지의 투쟁 365일 기념 1박 2일 투쟁문화제였고, 오늘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재판의 무죄선고를 촉구하는 통영 법원 앞 1박 2일 투쟁문화제다. 노숙이 싫어서 캠핑도 꺼리는 내가 살다살다 별 걸 다 해본다. 오늘 통영은 별이 아주 많다. 뚫린 텐트 지붕으로 별자리가 보인다.

구미에서 하룻밤을 날 때는 덜덜 떨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스즈끼 방한복에 발열침낭까지 챙겨갔는데 옷이 너무 두꺼워 핫팩이며 침낭의 열이 전혀 전달이 되지 않았다. 아스팔트 바닥에서는 한기가 올라오고 텐트 안에서도 입김이 호 호 나왔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추워서 깨기만 서너 번을 하니 아침이었다. 전날 밤 고공의 박정혜, 소현숙 동지와 함께한 투쟁 문화제는 즐겁고 따스했지만 지붕 없이 나는 새벽은 그렇지 않았다. 춤과 음악, 환호가 없이 나기에는 너무 시린 밤을 옥상 위의 동지들은 1년을 겪었다. 이런 짓을 두 번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며 혼자만 생각했다. 나는 절대 겨울산을 짚신발로 누비는 빨치산 투쟁은 하지 못하리라고.

그런데 또 이러고 있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24명의 노동자들이 2022년 51일의 파업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470억과 징역 20년 형의 재판이 코 앞이라잖아. 남쪽은 위쪽보다 따뜻하겠다, 겁도 없이 메모리폼 깔판에 침낭 하나 달랑 있는 1인 텐트에 기어들어왔다. 남쪽나라는 개뿔, 오늘도 춥다. 온몸이 오들오들 발발 떨린다. 내가 다시는 이 짓을 하나 봐라. 내일 무죄 선고만 떨어지고 봐라. 다음에는 1박 2일 투쟁이라도 무조건 호텔 잡고 한다 진짜.

그래도 그새 요령이 생겨서 옵티컬 때만큼 얼어 죽을 것 같지는 않다. 양쪽 발바닥에 핫팩 여섯 개, 오른쪽 왼쪽 겨드랑이에 하나씩, 목 뒤에 하나, 배 위에 하나, 그리고 방석 핫팩까지 깔아서 구스다운으로 두툼한 겨울 침낭 안쪽이 뜨끈뜨끈하다. 그러니 이렇게 속 편하게 글도 쓰고 있는 것이다. 내일은 분명히 글을 쓸 짬이 나지 않을 테니까.

통영은 최근에 한번 들른 적이 있다. <토지>를 다 읽고 박경리 작가에게 푹 빠져 있었던 나는 <시장과 전장>을 펼치자마자 통영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훌쩍 나와서 지리산과 통영 연화도까지 혼자 훌훌 돌아다닌 것이 작년 8월이다. 매미가 맴맴 울고 바다가 한없이 파랬던 작은 섬의 8월. 수국이 이미 다 지고 없던 고즈넉한 여름.

오늘 통영은 별이 많다.

지난 8월에는 왜 퍼런 천공만 바라보고 이 별들을 보지 못했을까.

같은 하늘 같은 곳에 떠있었을 텐데.

문화제에 모인 동지들은 종알종알 입을 모아 무죄판결이 나올 거라고 이야기했다. 나 역시 그렇게 확신했다. 노동자는 죄를 지은 것이 없으니까. 사람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하는 투쟁이 어떻게 죄가 될 수가 있어.

1월 1일 해맞이 문화제 시민토론에서 처음 뵈었던 김형수 지회장이 내일 통영 법원 재판에 선다. 투쟁의 선봉에 있었기 때문에 만약 유죄가 선고 된다면 가볍지는 않을 형량일 것이다. 문화제의 말미, 김형수 지회장의 발언을 듣고 주변의 동지들 훌쩍훌쩍 운다. 내 눈시울도 홧홧하게 달아오른다. 우리는 정말 기필코 무죄를 받을 거라고 믿고 있는데, 당신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낸 것처럼 초연해 보인다.

“2016년 조선업 위기에 소리 소문 없이 수만 명의 하청노동자가 찍소리 한번 하지 못하고 공장을 떠났을 때, 인생을 비관해 바다에 몸을 던진 노동자의 시체가 바다에 떠오르고 상담받으러 왔던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던 배 안에서 목을 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이제는 하소연할 곳이라도 있다는 생각에 노동조합 만들길 잘했다 는 생각이 듭니다. 법원은 그 노고를 치하하듯 우리에게 범법자라는 꼬리표를 달아주고 우리는 오늘 이렇게 법원 앞에서 밤을 새웁니다.

얼마나 더 많은 날들을 거리에서 잠을 자고 얼마나 더 많은 경찰의 부름과 검찰 법원의 등기를 받아야만 변할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되었을 때 느끼게 될 기쁨과 환희를 생각해보면 그 부름과 법원 등기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라 생각하겠습니다. 이곳에 함께하고 계신 모든 동지들 감사합니다.“

왜 그렇게 말해요.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통영은 별이 많다.

내란의 밤 이후 국회와 광화문과 남태령과 한강진과 그 뒤로 이어진 수많은 투쟁의 현장에 하늘을 보고 빌었던 것을 통영의 별을 보고 다시 기도한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본인들의 삶보다 타인의 삶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의롭고 용감한 투쟁을 하는 이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게 해 주시기를 비나이다

사람의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는 이들에게 무탈과 안정이 함께하게 해 주시기를 비나이다

올곧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만인에게 인정받는 세상이 되기를 비나이다

무죄가 나오게 해 주세요.

하청노동자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별님, 들어주세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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