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딛고 있는 모든 땅에서.
아이고 죽겠다.
글 쓰는 일이 죽을 맛이다. 너무 오래 글을 쓰지 않았더니 글 쓰는 근육이 죄다 퇴화되어 버린 모양이다. 새 글을 깨작거려도 헌 글을 건드려봐도 썩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지 않는다. 나라 걱정한다는 핑계로 오래 게으름을 피웠다. 이제는 새벽마다 깨서 뉴스를 확인하지도 않고 강박처럼 라이브 방송을 틀어놓고 잘 필요도 없으니 더 이상 핑계를 댈 수도 없다. 다시 글을 써야 한다. 여기저기 헛소리 가득한 글만 써대던 인간이 이런 시대를 겪으며 남긴 것이 없다면 나는 이 더러운 게으름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기 때문에.
두 달 남짓한 시간 속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절대 잊지 못할 일들이. 글로 남기지 못한 채 지나간 순간들을 붙잡아야 한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고 지나가기에는 지나치게 생생하고 드라마틱하다. 감정이 요동쳐서 누구에게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있다. 으레 이런 내용들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문장으로 시작되지만, 나의 것은 아주 명확하다. 그것은 2024년 12월 3일 밤 열 시 삼십 삼분, 내란범이 계엄을 선포하면서 시작되었다. 아주 선명하고 또렷하게, 아무도 그날을 잊을 수 없게.
아니, 어쩌면 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을 수도 있겠다. 업무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2022년 싱가포르에서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을 보고 중국의 티벳과 위구르, 파룬궁 탄압을 알게 되었을 때가 시작이었나? 홍콩의 민주화 시위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 뉴스를 찾아보았던 게 시작이었나? 수많은 홀로코스트 영화를 보아놓고 미국의 원주민 학살에 대한 작품은 왜 보이지 않는지 궁금해하던 게 시작이었나?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더니, 동생이 출판한 친할머니의 구술생애사에 6.25 전쟁 중에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아빠가 태어난 마을의 지명도 민간인학살백서에 올라가 있다. 해군과 경찰이 번갈아 마을을 점령했던 석 달 동안 약 2000여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던 아빠의 고향 태안. 여름마다 바다수영을 하러 갔던 만리포 모래밭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졌던 태안. 40년의 일제 탄압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국가로 새로이 태어났다던 내 나라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혼란스러워하면서 한국근현대사 도서를 찾아 도서관을 뒤지던 어느 날, 2018년도의 기사를 하나 보게 되었다.
서울 민간인 학살 암매장 첫 확인.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최소 8구 이상. 확인된 민간인 학살 매장지는 서울 우이동 우이동신설선 북한산우이역 인근 등산로 입구.
서울 우이동 우이신설선 북한산우이역. 당시 나와 동생이 사는 곳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의 거리였다. 집 옆에 우이천이 졸졸 흐르고, 그림 같은 산자락이 펼쳐져있는 예쁜 마을에서 사람이 죽었다. 전쟁 통에 쥐도 새도 모르게 총에 맞아 이름도 모르고 그대로 묻혔다.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죄가 있어도 이상해보이는 민간인 희생자다. 지하철역 보수공사를 하지 않았으면 더 오래 알지 못했을 무명의 죽음들.
너무 놀라서 엄마의 고향인 충남 천안과 아산의 기사를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도 사람이 죽었다.
한국전쟁시 천안민간인 학살 진상 구명 필요.
2019년도 기사다.
설마설마하며 작은어머니가 살고 있는 대전으로 갔다. 여기서도 또 사람이 죽었다.
‘민간인 학살’ 대전 골령골에서 유해 발굴 개토제 열려..
2022년도 기사.
내가 좋아하는 바가 있는 전주지역을 보았다.
전주 형무소 ’민간인 학살‘ 강산 7번 바뀌고 ‘세상 밖으로’.
2020년 발 기사.
사람이 죽지 않은 곳이 한국에 있기나 할까?
당신의 고향에서 사람이 죽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수한 죽음이 국가에 의해 자행되어 광복 80년이 다 되어가도록 땅 아래에 묻혀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글로 쓸 수 있을까? 좌와 우를 떠나서, 죽음이 정말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되고 이미 일어난 죽음이 헛되지 않은 것이 되고 억울한 죽음이 그나마 덜 속상한 죽음으로 해명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만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세상이 싫다. 사람이 죽어도 산 사람은 계속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세상이 싫다. 죽은 사람이 있었기에 산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도 바뀌어 온 것 아닌가?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죽음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의 죽음이 모욕과 수치에 절은 채로 잊혀가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면, 타인의 죽음도 그렇게 귀중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나라도 목숨을 구할 수 있고 한 사람이라도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산사람도 언젠가는 죽는다. 나는 멀쩡하게 죽고 싶은 거다. 70년 뒤에 지하철 역의 보수 공사를 하다가 채 다 썩지 못한 뼈다귀로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이름과 위패로 애도의 마음을 받으며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의 고향에서 사람이 죽었다. 당신의 나라는 사람을 죽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70년 동안 등을 돌리는 나라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죽게 하지 않을 거야.
국회의 담을 넘은 국회의원들도, 트랙터를 타고 서울에 온 농민들도, 광장에 모든 200만 명의 시민들도, 하물며 내란을 일으킨 범죄자조차도 죽게 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사람이란 건 그렇게 쉽게 죽어선 안 되는 거니까.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결심을 그렇게 쉽게 말해서는 안 되는 거니까. 이미 벌어진 죽음들을 끌어안는데만 해도 충분히 마음이 아프니까.
정말 너의 오체분시를 원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그래도 사형집행에 반대한다. 그러니까 눈 똑바로 뜨고 오래 살아. 너희들이 지금껏 망가뜨려온 것들이 하나하나 어떻게 다시 새살이 돋고 싱그러워지는지 그 더럽고 때가 낀 낯짝을 아무리 돌려댄대도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아 내가 다시 너 때문에 죽게 되더라도 먼 훗날 누군가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것들을 고민하고 ‘자생간첩’ 딱지에 두려워하면서도 광장에 나가서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불명예스러운 죽음이지 네가 아니야. 너를 두려워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으로서 너무 수치스러운 일이야. 감옥으로 꼭 이 편지를 보내줄게. 잘 지내라, x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