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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1월 1일 해인의 노래

by 해인


잊지 않을게요



오후 세시반에 공항에 도착하니 검은 뱀 같은 추모줄이 길게 서있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두 시간 반 정도 예상된다고 하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1월 1일에 본인의 새해보다 함께 새해를 맞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곳에 온 것이다.

전라남도 무안군에 있는 국제공항에.


2025 년 1월 1일 무안공항 제주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다.

2024년 12월 31일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노동자들의 해맞이 문화제에 참여하고 해돋이를 함께한 참이었다. 2025년의 새해는 화살처럼 강렬한 빛살에 둘러싸여 떠올랐다. 남색 조끼에 노란 리본을 달고 모자에는 차별금지법 찬성 핀을 주렁주렁 단 중년의 남성들과 함께 맞는 아침. 그날의 태양은 내 인생에 떠오른 서른 번의 태양 중 가장 찬란한 빛이었다. 세상의 온도가 달라질 정도로. 언뜻 새 세상이 온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밝아지는 조선소의 풍경을 보며 이 눈부신 새해를 비통 속에서 마주해야 하는 어딘가의 유족들을 생각했다. 12월 29일, 고작 사흘 전에 일어난 일이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감히 상상하려 하지 않는다. 빛이 침투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슬픔이 있다.


거통고 해맞이 문화제 소식은 12월 28일 토요일에 올라왔다. 거제도에서 투쟁 중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이미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노동조합, 단식, 농성, 원청 협상, 이런 것들. 마음속으로만 응원하고 넘어갔던 뉴스들이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 이후로 어깨에 짐처럼 얹혔다. 마음으로만 기도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응원한다는 걸 저들이 평생 모를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럴 수는 없지. 누군가의 편에서 함께 싸우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르고 바보같이 마음만 보낸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지. 이제 눈에 보이는 곳에서 지지해야지. 당신들이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나 역시 그 길에 빚을 졌다고 직접 말해야지. 31일 휴가를 쓰고 30일 퇴근 후 바로 출발하면 5시간 운전의 피로를 풀고 문화제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화제 행사날짜 이틀 전, 비행기 사고가 났다.


머리 위가 시꺼메지는 기분이었다. 무겁다. 살아있는 게 무겁다. 이 무거움을 어떻게 감당하지? 도저히 새해에 떠오를 태양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아니야. 이런 마음으로 문화제에 앉아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혹시 행사 취소 소식이 올라올까 기다렸지만 일정에는 변함이 없어 보였다. 하루를 꼬박 고민했다. 문화제라면 분명 떠들썩하고,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고. 광장에서처럼, 남태령에서처럼, 그렇게 할 텐데.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아.


하루를 꼬박 고민했지만 결국 가기로 했다. 문화제를 열어도 열지 않아도 노동자들은 투쟁해 왔을 것이다. 그들도 수많은 죽음과 애도를 넘어서 지금까지 왔을 테니까. 가야지. 가겠다고 결심했다면 망설이지 말고 가야지. 재미있고 즐겁기 위해서 가는 게 아니니까, 당신들을 지지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가는 거니까.

출발하기 전 캐리어에 짐을 싸는데 모든 옷을 검은 옷으로 챙기다가 질질 울었다. 왜 집에 검은 리본 하나 두지 않았을까.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르는 슬픔에 대비도 해두지 않았을까. 캐리어 속이 지옥처럼 까맣다.


기껏 참석한 문화제에서도 공연을 보면서 청승맞게 울었다. 왜 울었냐 하면, 그곳이 너무 따뜻했기 때문이다. 남쪽 바닷가의 조선소는 길바닥에 앉아있어도 될 만큼 온난한 날씨였다. 그리고 안전하고 포근한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에게 위해를 가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걸 증명하려는 것처럼 다정했다. 난생처음 보는 노동자들 사이에 끼어있는데 우리는 서로를 너무 소중해서 만지지도 못할 보물을 보는 것처럼 신기해했다. 지금까지 혼자 싸우게 해서 미안한 사람과 비로소 누군가 자신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실감한 사람들이 만났다. 눈만 마주쳐도 미소가 지어졌다. 활짝 웃을 수 없던 것은 거기 있던 모두가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슬픔의 이틀 뒤에 만났기 때문에.

거제는 따뜻했다.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과 온도가 이 정도라면 어둠도 겨울도 두렵지 않을 만큼 따뜻했다. 어딘가에 있는 분들도 이렇게 따뜻하게 맞아야 할 새해였는데.


거제에서 무안까지는 두 시간 반이 걸린다. 썩 멀지 않은 거리다. 2025년 1월 1일, 나 혼자만 보기에는 너무 예쁜 태양이었다. 올 한 해, 남은 인생이 다 괜찮아질 것만 같은 그런 해였다. 이 따뜻함을 조금이라도 매달고 먼 길 가는 분들을 배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서였다면 슬픔이 무거워서 주저앉을 것이다. 모여있는 고통을 직시하는 것보다는 멀리서 기도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12월 3일 전의 내가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추모줄 옆에서 봉사자들이 핫팩과 물과 간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가 춥고 아픈고 배고픈걸 이렇게나 싫어하는 민족이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12월 3일 이후 계속 광장에서 거리에서 마음속에서 실체 없는 적과 싸워왔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다정은 처절해진다. 집회에 갈 때마다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배곯지 말고 뜨끈한 국물과 지글거리는 핫팩으로 몸을 목이라는 듯 여기저기에 생필품 간식거리가 쌓여있다. 내 나라가 이렇게 고통을 싫어한다. 안간힘을 다해 한주먹 한주먹 아픔을 덜어주려 한다. 그리고 다시 폭풍 같은 역경이 몰아쳐 온다. 모두가 잊어버릴 때쯤, 이 정도면 원래대로 되지 않았나 하고 안심할 때쯤 다시 토네이도 같은 고난을 일으키는 건 대체 누구지? 그래도 우리는 다시 돌아와서 주섬주섬 고통을 덜어낸다. 한 줌 한 줌. 여전히, 한 명이라도 덜 아프길 바라기 때문이다.

추모행렬에 서서 광장에서 느꼈던 처절함을 떠올린다. 갓 내린 아메리카노를 나눠주는 커피차와 작은 마트에 온 것처럼 나눔을 기다리는 생필품들. 절대 맛없는 걸 먹이지 않겠다는 듯 비건 유당불내증 사탕 과자 종류별로 늘어서 있는 간식거리들. 내 나라는 이런 줄에 서있는 사람조차 고생시키기 싫어 안달을 낸다. 이런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한없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자꾸 희망을 꿈꾸게 하는 나라가.


추모줄에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보였다. 새해 절을 올리고 온 건지 한복을 입고 온 사람도 있다. 아무도 웃지 않는다. 검은 뱀처럼 조용히 줄만 서있다.


한 시간을 기다려서 국화꽃을 올렸다. 이 나라는 한국의 명산 하나를, 전라도의 한 도시를, 진도의 바다 한 군데를, 그 바다의 항구를, 서울 이태원의 작은 길목을 장례식장으로 만들도고 모자라서 조용하고 질서 있는 공항까지도 슬프게 만들었다. 그저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토네이도 같은 고난을 일으키는 건 대체 누구지?


누군가는 헛소리라지만 나는 1월 1일마다 새해의 첫 노래를 신경 써서 고르고 있다. 그 노래가 한해를 결정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2025년의 노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었다. 12월 21일 광화문에서 라이브로 처음 들었던 노래였는데, 그때 나는 광장에서 누가 나를 툭 치기만 해도 훌쩍거릴 만큼 눈물이 많았다. 이만큼이나 용기 있고 사랑스러운 사람들 사이에 서있는 게 감격스러워서 시도 때도 없이 잉잉 울었다. 12월 21일, 집회 후에 남태령에서 밤을 새우게 될 줄도 모르고 그 순간에 들었던 그 노래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1월 1일 열두 시가 넘자마자 들었던 노래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


그리고 무안공항에서 나와 아빠네 집으로 가는 길, 졸업을 틀어놓고 엉엉 울면서 운전을 했다. 나밖에 없으니 놀릴 사람도 눈치 볼 사람도 없다. 12월 29일부터, 어쩌면 12월 3일부터 속 시원하게 통곡하지 못했던 것을 한풀이하듯 원 없이 울었다. 하늘님도 찾고 부처님도 찾았다. 내 몸에 있던 따뜻함이 국화꽃에 실려서 먼 길 가는 분과 같이 갈 수 있을까? 다정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혼자만 맞았던 눈부신 아침을 조금이라도 속죄할 수 있을까? 유족들의 발끝만치도 따라갈 수 없는 슬픔으로 애도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감히 상상하지 않는다. 빛 한 점도 들지 않는 칠흑 같은 슬픔을, 감히.

마음껏 울고 난 후에 아빠를 보고 꽉 안았다. 아빠를 너무너무 사랑해요. 우리 아무도 죽지 않을 것처럼 살자.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처럼, 세상은 미쳐있지만 우리는 가버린 사람들을 잊지 말자. 잊어버리는 건 허무하게 포기해 버리는 거니까. 계속 기억하면서 살자. 우리가 계속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살자.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


브로콜리 너마저 -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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