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야기
매년 12월 1일이 되면 사랑의 열매를 상징으로 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연말 모금 운동을 시작한다. 사랑의 온도탑을 세우고 실시간으로 모금 상황을 알린다. 구세군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빨간 냄비를 걸고 종을 치며 모금을 시작한다. 교회와 상업 시설에서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고 캐럴이 울린다. 예전만큼 캐럴이 풍성하지 않은 이유가 불황 탓이기도 하지만 저작권료나 소음 규제 이런 것들 때문이라는 것 같기도 하다. 불경기가 이들을 다 포함한다. 돈이 잘 벌리면 까짓 저작권료 좀 내지 뭐, 하거나 좀 시끄러우면 어때, 할 것이니.
가정에서는 고민이 생긴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 때문에 복잡해진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아이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바라는 선물이 무엇인지 비밀이라고 입을 꼭 다물어 버리면 알아내야 하는 부담까지 져야 한다. 우리 아이는 꽤 커서까지 산타클로스를 믿었다. 어렴풋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굳이 애써 알려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외면해서인 것 같다.
전설의 시작
산타의 전설은 놀이방이나 유치원에서 시작되었다. 아이는 빨간 옷에 흰 수염을 붙인 배불뚝이 산타를 철석같이 믿었다. 신나는 분위기에서 직접 선물을 주는 할아버지를 안 믿을 까닭이 없다. 그렇게 처음 만난 할아버지는 일 년에 한 번만 온다고 했다. 그것도 착하게 굴어야만 선물을 주었다. 부모들은 이 협박을 써먹을 수 있어서 산타를 좋아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나면 약발이 금방 떨어졌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졌다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다음 해 12월이나 되어야 다시 약효가 생겼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산타에 대한 믿음이 강해서 산타 할아버지한테 무슨 선물을 받고 싶으냐고 물으면 얼른 대답해서 준비하기가 쉬웠다. 미리 알고 몰래 사서 집안 어딘가에 숨기기도 수월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가 잠이 들면 베란다에 선물을 놓아두고 시치미만 떼면 되었다.
의심 없는 믿음은 불완전하다
정확하게 몇 살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이가 ‘산타는 루돌프 사슴이 끄는 수레에 선물을 가득 싣고 하늘을 날아서 우리 집 굴뚝을 타고 내려온다’는 동화를 읽고는 걱정이 태산이 되었다. 우리 집에 굴뚝이 없는데 어떡하느냐는 것이다. 요즘에는 아파트가 많아져서 산타가 베란다에 선물을 두고 가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나는 그럴듯하게 보이라고 베란다에 선물을 두고 창문을 조금 열어두었다. 그렇게 또 한 해를 넘겼다.
어느 해에 아이는 산타에게 고맙다며 베란다에 우유와 쿠키를 놓아두었다. 산타가 오는지 보려고 기다리느라 잠을 자지 않아서 우리도 덩달아 잠을 설쳤다. 버티다 곯아떨어진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산타 선물은 베란다에 두고 준비된 쿠키와 우유를 먹었다. 그건 우리가 먹어도 되는 거였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기쁨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올해도 무사히 넘어갔구나 하며 늦잠을 잤다.
그다음 해에는 아이가 산타에게 원하는 선물을 말하지 않았다. 나름 정말 산타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그런 것 같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는 친구 중에 산타를 안 믿는 아이들이 산타는 없다고, 엄마랑 아빠가 몰래 선물을 두는 것이라고 했을 것이다. 여러 명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궁리 끝에 아무 말 안 했는데도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받게 되면 산타는 있는 것이라고 믿을 작정이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까지도 말을 안 해서 산타 판타지는 올해가 끝이겠거니 하는데 왠지 내가 서운하고 아쉬웠다. 이리저리 구슬리고 유도 신문하여 얻어낸 답은 ‘산타는 핀란드에서 오니까 핀란드에서 만든 것이라면 아무거나 괜찮다’는 것이었다. 정말 큰일이 났다. 그 밤에 어디서 메이드 인 핀란드를 구한단 말인가. 급한 대로 편의점에 가서 수입 과자류를 살피는데 핀란드제를 구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어서 자일리톨 껌과 외국산 과자를 사서 포장도 제대로 못 하고 베란다에 두었다.
다음 날 아침 걱정했던 대로 아이는 베란다에서 아이고! 어쩌구저저구하면서 울었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걱정했던 대로 핀란드 과자가 없다고 했다. 나는 산타도 바쁠뿐더러 갑자기 착한 아이들이 늘어나 선물이 부족해지면 오다가 여기저기 들러 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어떤 집은 산타가 엄마 지갑에 선물 살 돈을 넣어 두기도 한다고 둘러댔다. 아이는 미심쩍어하면서도 전설을 부정하는 위험부담은 싫었는지 믿는 척하였다. 문해력이 생기고 어설프게 외국어도 알아서 제품 포장지를 꼼꼼하게 읽어볼 정도는 되었으니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래도 있었으면 좋겠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가며 산타의 전설을 키우는 데 나도 큰 힘을 보탰다.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고 며칠 후 바로 아이 생일이다. 두 날을 퉁쳐서 선물 하나로 해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선물 두 개를 꼬박꼬박 챙겼다. 산타 선물은 평소 나라면 절대 안 사줄 것이었지만 아이의 요구를 충실하게 따라 샀다. 생일 선물은 엄마가 사줄 법한 실용적인 것으로 준비했다. 나는 참으로 집요한 엄마였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산타의 전설을 지키려고 했을까? 나 어릴 적에는 산타가 없었다. 크리스마스라고 들떴던 기억도 물론 없었다. 그래도 국민학교 때 크리스마스 선물을 딱 한 번 받았는데 참 좋았다. 그 기억의 힘이 산타의 전설을 만들고 지키게 한 것 같다. 내 아이가 산타에게 선물을 받고 나처럼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선물을 두 개씩 사고, 거짓말을 지어내고 마음을 졸이며 잠을 설쳤다.
아이를 행복하게 하기는 쉽다.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게다가 아이는 아주 작은 것을 바란다. 행복을 선물할 수 있을 때 많이 할 걸 후회가 된다.
이제 그 아이는 다 자라서 내가 산타 이야기를 이렇게 까발려도 상처받지 않는다. 받아야 할 상처는 핀란드산 과자가 없던, 한글로 떡 하니 쓰인 자일리톨 껌을 받았던 그날 아침 다 받았다고 한다. 그랬음에도 산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산타를 믿고 싶은 그 아이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어떤 전설을 만들어 낼까 궁금하다. 나는 또 열심히 그 음모에 가담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