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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sophers needlework Mar 04. 2024

삶에는 여러 길이 있다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읽고

참으로 어리석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내게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것을 찾으라 하니 열심히 생각해 보았지만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아내는 것이 숙제 같아서 머리가 아팠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데도 못하는 내가 한심하기까지 했다. 하고 싶은 게 없으면 하기 싫은 거 안 하기라도 해 보자 했는데 그것 역시 모르겠다. 이렇게 헤매던 중 디스카운팅 메커니즘(discounting mechanism)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디스카운팅 메커니즘이란 심리학 용어로 행복을 느끼는 능력이 감퇴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일이 일어나도 감사한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고 점점 강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음에 쏙 드는 목걸이를 선물 받은 날은 뛸 듯이 기쁘지만, 며칠 지나면 뇌는 그 목걸이에 더 이상 놀라움도 행복도 느끼지 않게 된다. 뇌는 왜 그러는 걸까. 살아남기 위해서다. 뇌는 지금의 행복보다는 미래의 위험을 감지하는 것에 더 큰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다 보면 뇌는 기쁨이나 설렘 같은 소중한 감정에 둔감해지게 된다. 이에 따라 인간의 마음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에 끊임없는 걱정으로 가득 차게 된다.     

 디스카운팅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그 내용을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왜 생각나지 않았는지 알 것 같다. 삶의 위협을 방어하는 데 골몰하여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던가 보다. 나를 잡아먹으려 달려드는 짐승으로부터 도망 다녀야 하는 수렵시대도 아닌데 감사함이나 기쁨 대신 위험, 생존 신호나 탐지하다니 참으로 어리석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불안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꾸준히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하고 여행을 가고 뭘 배우고 아주 열심인 지인들에게 조용조용 책 읽으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내 삶의 태도에 확신이 없었던가 보다. 하지만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읽으며 나도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다는 확신을 좀 갖게 되었다.       


선택하는 삶     


《숲속의 자본주의자(박혜윤 지음, 다산초당 펴냄)》는 임금 노동 없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것이 가능한지 궁금해서 직접 해 보기로 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 사람은 가족과 함께 미국의 시애틀 근교 시골에서 텔레비전도 없이 산다. 직장도 안 다니고 직접 구운 통밀빵과 찐 채소를 주식으로 먹는다. 스마트폰도 없다. 고 2와 초등 4학년 자녀가 있는데도 그렇게 산다. 땅이 넓어도 크게 농사를 짓지 않고 이웃과 교류하며 일을 벌이지 않는다. 가족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몽상에 빠지고 자고 싶을 때 잔다. 그렇게 살면서 자신의 일상에서 위대함을 발견해 낸다.      

 이 가족이 살아가는 법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나는 의식주 외에도 아이들 교육비에 노후 자금, 갑자기 아플 때를 대비해서 의료비, 비상금 등 필요한 돈이 수입을 넘는 생활만 알고 있다. 그런데 글쓴이는 정말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면 돈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한다. 사는 게 놀이라서 노는 데 따로 돈이 들지 않는다. 단순하게 먹는다. 빵을 팔더라도 많이 팔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큰 기계를 안 사도 된다. 참 쉽다. 이미 7년이나 그렇게 살고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글쓴이는 불교와 에피쿠로스 쾌락주의가 주장하는 대로 삶의 의미나 행복, 마음의 평화 같은 것을 얻기 위해 욕망을 줄여왔다고 한다. 애써 노력했다기보다는 그런 성향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수월하게 살아왔던 것은 아니다. 불만이 없고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되었나 생각해 보다가 욕망이나 꿈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대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보자!’는 마음으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워싱턴주의 시골에서 살기 시작했다.       

 글쓴이가 무모해 보이는 삶을 선택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음미하는 데에는 고전들이 큰 역할을 했다. 소로의《월든》, 사르트르, 카뮈, 푸시킨의 시, 톨스토이 등등. 고전을 통한 인문학적 사유에서 삶의 지지를 얻었다. 많은 이들이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오히려 못 읽고 있다. 고전의 무게에 압도당하지 않으려면 읽고 싶을 때 읽으면 되고 혹 읽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내 느낌에 당당해져야 한다. 이런 태도가 고전을 대하는 예의라고 말한다.

 고전 외에도 영화, 드라마, 신문 기사, 이웃에 사는 사람 등 살면서 만나는 여러 장면에서 생각하고 깨달은 것들을 써 놓았다. 친절한 이웃이 트럼프 지지자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놀랐지만, 사람을 선입견 없이 대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아는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람을 대할 때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믿음을 버리면 세상을 더 풍요롭게 느낄 수 있다.     

  

삶에는 여러 길이 있다      


 글쓴이가 숲속에서 산다고 해서 사회를 등진 것이 아니다. 돈을 조금만 필요로 한다고 해서 자본주의를 배척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며 살다가 그 끝에 만나게 될 그 무엇조차 소중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하는 삶의 태도를 가졌을 뿐이다. 이런 삶의 확신이 부럽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이 나이에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헤매는 일을 더 해도 될 것 같은 자신감은 좀 생겼다.      

 인문학 열풍이 불었을 때 인문학이 무엇인지 참 궁금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은 자연과학(自然科學, natural science)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주로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지칭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정의를 보아도 모르겠다.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설명 또한 이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인문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사나, 어떻게 해야 잘 사나, 꼭 살아야 하나, 저 사람은 왜 그럴까, 나라도 그렇게 했을까 이런 생각들이 인문과 관련이 있었다.     

 삶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살아간다고 해서 크게 답을 얻은 것도 없다. 그래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은 덕분에 불안하고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지지와 격려를 받는다.《숲속의 자본주의자》는 하루 종일 열심히 살았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운 나에게 삶에는 여러 길이 있다고 알려준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는데 나만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 소심해진 나에게 책을 펼치는 그 순간 자유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등을 토닥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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