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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sophers needlework Jul 18. 2024

고작

 비가 무섭게 온다. 200년 만에 한 번 올까 하는 그런 수준이라고 한다. 축사를 돌보러 나갔던 농민이 바람에 벗겨진 지붕에 맞아 죽고 주인 잃은 소들이 운다. 신축한 전원주택 뒤편을 살피러 나간 50대 남자가 죽었다. 새벽 배송하던 40대 여성 기사가 죽고 산사태로 집이 없어진 90대 노인이 한숨을 쉰다. 이 와중에 마트 오늘의 세일 문자가 온다.

 오전에 도서관 수업이 있다. 가는 게 맞나 고작 이런 고민이나 하고 앉았다. 결국 나는 길을 나섰다. 도로와 주변 경계가 안 보인다. 내 차가 튀긴 물보라가 시야를 가린다. 속도를 늦춘다고는 했지만 물이 저항하는 힘은 엄청나다. 뉴스에서 본 차가 생각난다. 터널을 빠져나온 차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회전하던 장면. 비상등을 켜 보지만 위안이 될 뿐 의미 없다. 빗소리에 깜빡거리는 소리가 묻힌다. 라디오 소리도 안 들린다. 인위적인 소리를 차단하고 자연의 무서움에 굴복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택배 주문을 미루고 음식 배달을 삼가고 꼭 주문해야 한다면 기사에게 따로 팁을 꼭 챙겨주고…. 아 무력하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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