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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sophers needlework Aug 07. 2024

6,661명의 희생자를 위한 진혼곡

- 다큐 영화 "1923 간토대학살"을 보고

 1923년 9월 1일 일본 중부 관동 지방에 최대 진도 7.9에서 8 이상의 지진이 일어났다. 관동지방은 현지 발음에 따라 간토이고 대도시 도쿄와 요코하마로 대표되는 지역이다. 당시 그 지역에는 목조가옥이 많아서 지진은 화재로 이어졌다.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300만 명 이상이 집과 터전을 잃었고, 10만 명이 넘게 사망했으며, 5만이 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다. 취사와 난방을 위한 가스와 석탄이 화재를 가속시켰고 수도관이 끊기면서 진화가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불은 사흘 동안 이어지며 화염 폭풍을 일으켜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죽게 되었다. 공장이 있던 자리에서는 4만에 가까운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

 지진 직후 일본 정부는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이를 빌미로 계엄령을 내렸다. 조선인이 일본인을 죽이려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일본 국민들의 공포를 더 크게 만들었다. 천황은 추밀원의 재가 없이 계엄령에 서명했다. 뿐만 아니라 군인과 경찰, 자경단이라 불리던 민간인들에게 조선인 학살을 부추겼다. 일본 정부는 국민들 뒤로 숨어 조선인들을 학살하면서 101년 동안 책임을 부인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우리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간토 대지진 100주년이야말로 일본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 사과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스기오 국회의원도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토 학살의 피해자를 기리는 탑 앞에 무릎 꿇은 젊은 여성은 ‘그 시절에 살았다면 나도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해하려 한다는 소문을 믿었을 것이고 학살에 가담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게 제일 두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봉선화라는 시민 단체 활동가들은 간토 대지진은 학살이었다고 널리 알려야 된다고 말했다. 일본말은 잘 모르지만 활동가들의 말 속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라는 단어는 여러 번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추산한 간토 대지진 조선인 희생자의 수는 6천 명이 넘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에서는 300명 정도의 조선인이 그것도 지진 때문에 죽었다고 발표했다. 간토 대학살 100주년을 맞아 책임을 묻는 야당 국회의원의 질문에 정부 관계자는 기록이 없어서 더 이상 조사할 수 없고 조사할 의지도 없다고 답변했다.

 영화 말미에 일본의 어느 공원에서 간토 대지진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행사 장면이 나왔다. 하얀 종이로 사람 형상을 오려 나무와 줄에 걸고 사람들이 품에 안기도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종이들이 죽은 자들의 혼이 쓰인 듯했다. 아기들, 아낙네들, 남자들. 혼이라도 고향에 가자는 노랫말이 나왔다.

 이런 사실들을 “1923 간토대학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쓴 피해 규모 수치가 정확하지는 않다. 사람들의 이름이 틀렸을 수도 있다. 숫자는 희생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정도로만 내 머릿속에 남았다. 사람들의 이름이나 지명 등을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해도 학살이 없었다 주장하고 있구나,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일본인들도 자신들을 피해자로 느끼며 분노하고 있구나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조선인에 대한 집단 학살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그에 따르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밝히는 과정을 따라가면 그렇게 큰 사건을 어떻게 모르고 있었는가 놀라고 부끄럽다 느끼게 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큰 지진에 일본 정부는 당황했을 것이다. 다른 나라였어도 이런 상황에서 냉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자연재해를 극복하려고 했던 선택은 이해받기가 어렵다. 인간의 힘으로는 예측과 제어가 어려운 자연재해가 발생한 사실은 안타까운 일로, 살아남은 자들이 힘을 합해 새 터전을 일구며 극복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대지진 이후에 했던 행위들로 인해 그들에게 치욕의 역사가 되었다. “나는 몰라요. 내가 안 그랬어요.”라는 변명은 너무 옹색하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한다. 그 힘은 아는 것을 써먹을 때 생긴다. 여러 사람이 알면 힘도 더 커질 것이다. 알고 나면 반성하고 분노하게 되고 항의하게 될 것이다. 여럿이 따지면 신도 놀라 왕을 내린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 놓아라 내어 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 일본 정부는 반성하고 사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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