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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sophers needlework Aug 17. 2024

시를 읽는 자유

- <오감도 시제9호 총구>를 읽고

  “이상 문학, 그 비밀을 찾아서”(이천시립도서관 지혜학교) 4차시 수업 주제는 ‘섹스 포에지의 비밀’이었다. 이상의 오감도 중 제9호 총구라는 시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섹스 포에지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여 검색창에 타이핑했더니 청소년에게 해롭다며 자료 제공을 못하겠다고 한다. 참 친절하고 오지랖 넓은 검색포털이다. 그래서 섹스는 빼고 포에지만 물어보니 대답을 해준다. 포에지(poésie)란 프랑스어로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진다고 설명되어 있다.     


1 시의 세계가 가지는 정취.

2 문학의 한 장르.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다. 형식에 따라 정형시ㆍ자유시ㆍ산문시로 나누며, 내용에 따라 서정시ㆍ서사시ㆍ극시로 나눈다.

3 시를 짓는 규칙, 방법, 수법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언어의 운율과 표현 수단 따위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다.      


 이 설명 중 세 번째가 제일 잘 이해가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섹스와 결합해 이해해 보니 섹스 포에지란 성적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성적 경험과 욕망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시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포털이 섹스에 대해 경기를 일으키는 것처럼 시에서 섹스에 대한 표현은 그 한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 하는 논의를 피할 수 없다.      


烏瞰圖 詩第九號 銃口

每日가치列風이불드니드듸여내허리에큼직한손이와닷는다. 恍惚한指紋골작이로내땀내가숨여드자마자 쏘아라. 쏘으리로다. 나는내消化器官에묵직한銃身을늣기고내담을은입에맥근맥근한銃口를느낀다. 그리드니나는銃쏘으듯키눈을감이며한방銃彈대신에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여배앗헛드냐.

- 「朝鮮中央日報」, 1934. 8. 3.     


오감도 시제9호 총구

매일같이열풍이불더니드디어내허리에큼직한손이와닿는다. 황홀한지문골짜기로내땀내가스며드자마자 쏘아라. 쏘으리로다. 나는내소화기관에묵직한총신을느끼고내다물은입에매끈매끈한총구를느낀다. 그리더니나는총쏘으드키눈을감으며한방총탄대신에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어배앝았더냐.

-《이상 전집 1 시》 권영민 엮음, 태학사 펴냄     


 위는 원문, 아래는 현대어로 고쳐 쓴 것이다. 이 시를 읽는 순간 총구를 입에 물고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상은 일제강점기에 고등교육을 받은 자로 살면서 폐결핵을 오래 앓았다. 당시 폐결핵은 치사율이 매우 높은 질병이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극에 달하는 신체의 아픔과 지식인으로서 시대의 슬픔에 괴로워 죽어 버리려는 시도로 총을 입에 물었던 것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화자는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절망만 더한다. 허탈함을 읽었다.

 시 안에서 ‘열풍’은 화자가 겪는 내적 갈등일 것이다. ‘손이 와닿는다’는 괴로워하는 심정이 구체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된다. ‘황홀한’은 형용사로 찬란, 화려. 달뜸 등의 뜻 외에 알기 어렵거나 분명하지 않다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흐릿하고 미묘하여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으로 읽으면 갈등 상황이라는 가정과 어우러진다.

 <오감도 시제9호>를 섹스 포에지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해석이 많다니 한번 생각해 보았다. 영화나 소설에서 묘사한 것을 보면 섹스에서 얻는 쾌락은 다양하고 방식도 많다. 가학과 피학 성향의 섹스에서 목을 졸라 거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쾌락의 정점에 다다른다는 묘사를 본 적이 있다. 또 교살(스스로 죽거나 아니거나)의 경우 남성 시신이 발기된 경우가 있다는 말도 들었다. 굳이 여성 시신이 아닌 이유는 육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의 천박한 지식에 비추어 이 시를 죽음 목전에서 느끼는 감각이 섹스의 극치와 닮아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이런 의견은 내가 이 시를 읽고 느꼈다기보다는 섹스 포에지로 해석하는 학자들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다.

 시문학은 의미가 숨겨져 있고 해석이 열려 있어서 다양하게 읽을 수 있다고 배웠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나 기법, 맥락에 따른 이해로 다른 사람들이 설득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내 맘대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말일 듯싶다. 내 뜻대로 자유롭게 해석하고 싶으면 시를 읽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 자유를 누리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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