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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sophers needlework Oct 06. 2024

살다가 헷갈릴 때

 - 참고할 종이가 필요하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코를 늘려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대바늘 뜨개의 경우, 한 단은 코를 늘리고 다음 단은 그냥 뜨고 이렇게 두 단을 반복한다. 원하는 길이가 될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데 작업이 길어지면 지금 뜨는 단이 늘림단인지 그냥 뜨는 평단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코 모양을 보면 알 수도 있지만 아주 숙련도가 높은 사람만 가능한 일이다.

 틀리면 다시 풀어야 하고 풀었던 코를 바늘에 바른 방향으로 모두 끼우기가 쉽지 않다. 한참 뜨다가 코를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면 참 난감하다. 푸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어코 회복해 보려고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종이에 내가 현재 어느 단을 뜨는 중인지 적어 가며 뜨개질을 한다. 숫자를 쓰며 홀수단은 늘림, 짝수단은 평단, 이런 식으로 적으면 나중에 총 몇 단이나 떴는지 안 세도 되고 여러모로 유용하다.

 물론 단이 바뀔 때마다 잊어버리지 않고 적어야 한다. 한 단을 마치지 못하고 전화를 받는다거나 자리를 갑자기 떠났다 돌아와 다시 시작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내가 지금 어디를 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바로 그때는 표시된 종이를 보면 아주 편리하다. 살면서 길을 잃을 때도 참고할 종이가 있으면 든든할 것 같다. 갑자기 멍하니 ‘지금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이런 생각이 들면 걷잡을 수 없게 마음이 무너진다. 누구나 이런 종이가 되는 것들을 만들어 갖고 있으면 덜 흔들리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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