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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햇살 Mar 22. 2020

겨울이 지나가요

그리고 자라나요



 2018년 1월, 이사한 집은 내가 첫 세입자였다. 무던한 나에게조차 새집냄새가 강렬하게 났다. 미세먼지 마스크를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용감한 나조차 무섭게 만드는 냄새였다. 내 몸 생각하자고 다시 전기를 사용하며 윙윙 돌아가는 공기청정기는 어째서인지 갖고 싶지 않은 물건이었다. 그래서 미세먼지 정화식물을 알아보게 되었고, 집으로 맞이한 여러 식물 중 하나는 스파티필름이었다.


 싱그러운 초록색의 넓은 잎과 항시 피어있는 꽃과 하얀 불염포는 내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았고, 집에서 키우는 식물 중 요 녀석에게 가장 큰 마음을 줘버렸다. 내 사랑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스파티필름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풍성한 줄기와 잎을 갖게 되어 엄마에게 포기 나눔을 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9년 약국을 개국하면서 나는 잊었던 새집냄새를 다시 맡게 되었고, 매일 곁에 두고 보려 스파티필름은 집에서 약국으로 가지고 왔다. 손님이 오지 않는 한가한 시간마다 햇빛에도 쬐어주고 물도 분사해주며, 1년을 또 애지중지 키우게 되었다. 북향인 약국 탓에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실내가 아닌 약국 입구에 있는 데크 공간에 화분을 옮겨다 놓게 되었고, 그렇게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난 겨울이 춥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었다.  겨울 최저 생육 온도가 13도인 스파티필름에게는 냉혹하고 차가운 겨울이었을텐데, 다시 실내로 들인다는 것을 깜빡하고 영하의 온도에 화분을 몇일 방치해버렸다. 꽁꽁 엃어버린 잎과 줄기는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버렸고, 자신을 이지경으로 만든 나를 원망하는 마음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검게 변해버렸다. 특히 아직 잎이 다 펴지지 못한 줄기마저 얼어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 돌돌말린 잎사귀를 활짝 펼쳐, 햇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광합성 한 번 해보지 못한 줄기를 보며 더욱 서글펐던 것은, 처량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허망하게 2년간보살피던 스파티필름을 보내버렸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4월이 되면 새로운 스파티필름을 심겠다고 생각하며 화분을 빛이 잘 들지 않는 약국 카운터 뒤쪽에 숨겨 놓고 있었다. 얼마 전 양재 꽃시장에서 새로운 식물들을 잔뜩 사와 그 중 수선화를 이 곳에 심어보려 간만에 화분을 다시 찾았더니, 죽지 않고 새 순을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을 꽁꽁 얼려버리던 그 추위를 이겨낸 것도 모자라, 하나도 아닌 여러개의 줄기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녀석이 기특해서 왈칵 눈물이 날 뻔 했다.


 묵묵하게 스스로를 보살피며 봄을 준비하고 있던 스파티필름을 보자 문득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생명을 위협을 받은 적도 없으면서, 나는 어찌 감히 나의 시련과 이 아이의 시련을 동일하게 바라보았던 것일까? 그리고 지난 시련의 겨울 동안 왜 나는 무기력에 빠져 그 어떤 것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일까? 나의 보잘것 없는 투정에 잔소리가 아닌 몸소 행동으로 보이는 스파티필름을 보니, 내가 이 녀석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녀석이 날 키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겨울은 언제나 찾아온다. 그리고, 그 겨울이 끝나고 새싹이 자라는 봄 역시 언제나 찾아온다. 깜깜한 겨울밤의 시간에서는 사방이 어두워 주위를 살 필 수가 없어서 그 순간이 언제 끝날지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묵묵히 견디고 인내하다보면 다시 따스한 봄햇살을 맞이할 수 있다. 오늘은 햇살이 따스하고, 마음이 평온하다. 그간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햇살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보니 어쩌면 나도 스파티필름처럼 시련의 시간을 견뎌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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