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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햇살 Dec 17. 2015

버리는 것도 어렵지만 사지 않는 것은 더 어렵다

소유에 관한 고찰

지난 10월, 나는 11개월간의 짧은-어떻게 보면 꽤나 긴-  멜버른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한 달 간 떠날 호주 동부 여행을 위해 짐을 꾸렸다. 그와 동시에 한국으로 보낼 짐들도 정리했다. 


거의 1년을 머무르면서 불어났던 짐을 줄이느라 나는 한 달간 애를 먹었다. 1년 뒤에 떠날 것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나는 최대한 짐을 불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잘것없는 내 육신 하나 보살피기에 필요한 물건들이 어찌나 많은지, 나는 그 많은 짐들을 꾸리는 내내 끝없이 튀어나오는 물건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먼저 두 번 다시 사용하지 않을 물건들을 폐기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주로 의류였으며 두 번째로는 의외로(!) 책이었다. 구매 당시에는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리라 예상되었던 그것들이, 제 몫을 하고 난 뒤에는-혹은 그러지도 못하고- 그 가치를 상실하고 폐기 대상에 오르게 되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짐을 보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멜버른에서 지내면서 사용하던 모든 물건들을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자니 총 대형 박스 4개의 분량이었다. 배송비용을 고려하여 2박스로 한정지은 나는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작업 중에 다음 2가지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첫 번째로 내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건이 생각보다 많이 없다는 것이다.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큰 배낭 하나와 보조용 백팩 하나, 그리고 보스턴 백에 총 두 달간-호주에서 태국으로 넘어가 3주를 더 여행을 했다- 필요한 물품들을 채워 넣었다. 큰 배낭에는 여행기간 동안 사용할 옷가지와 세면도구들을 담았고, 보조용 백팩에는 랩탑과 필기구, 지갑 및 여권 등을 담았으며 마지막 가방에는 카메라를 담았다. 놀랍게도 이 것들이 내게 필요한 전부였다.


둘째로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물건을 구매할 때 지불했던 비용에 비례해서, 그 물건에 대한 내 집착도 증가한다는 것이었다. 필요에 의한 우선순위에는 현저히 떨어지지만, 그 물건의 원래의 가격을 잊지 못하고 미련스럽게 좁은 박스에 구겨 넣는 내 모습을 깨닫고는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물건을 다시 꺼내서 이 필요하지도 않는 물건들을 도대체 왜 내가 구매하게 되었을까 라고 생각해보니, 그 물건을 구매할 당시의 나는 물건의 가격만큼 내 삶의 가치를 올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비싼 물건을 '소유' 함으로써 좀 더 그럴싸한 삶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 대한 시선을 의식한 행위라는 데에 이르렀으며 매우 미련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비싸고 향이 좋은 풋 스크럽을 사용하거나, 차를 마실 때 아기자기한 티스푼을 사용한다던지에 대해서 아무 관심도 없다. 그리고 이 것은 정확히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이런 글을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구매'라는 행위는 가장 짧은 시간을 들여 즐거움을 얻는 행위라고 말이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벌게 된 돈을 , 그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경험'에 투자할 시간이 없어서-우리 모두 그 시간에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하니 말이다- 차선책으로 시간은 짧게 쓰는 쇼핑으로 짜릿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쇼핑'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나 또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그랬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꽤나 효과 있는-하지만 순간적인 즐거움에 그치는- 행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의미 없는 소비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날이 나에게  찾아들었다.  남의 시선과 나의 욕망들로 인해 구매한 사치품들, 그리고 쓰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수많은 물건들이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와 동시에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고심 끝에 상당한 물건들을 처리했다.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심혈을 기울여 물건을 버리는 작업보다 더 어려운 것은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었다. 눈을 뜨고부터 감기까지의 시간 동안 나는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와 세일에 노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의지도 약하고 잘 현혹되는 '일반인'이었다. 이런 나에게 지인이 좋은 묘책을 알려 주었다. 물건을 소유하는 소비가 아닌 경험을 소유하는 소비를 추구하라고 말이다. 


불가에 귀의하여 산 속 깊은 곳에서 지내는 승려로 살아가지 않는 이상 소유욕을 버릴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 욕구를 소모적이지 않고 나 스스로를 위하는 방향으로 해소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우리네 인생은 유명 여자 연예인이 사용했다는 립스틱이나 이번 겨울 머스트 해브 아이템의 소유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울고 웃었던 그 많은 경험들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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