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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네스 Oct 06. 2024

내가 머무르는 공간

떠돌이의 집 구하기

2017년 졸업 후 바로 서울에 올라와서 영어학원을 끊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당분간 지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이태원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주일간 머무르며 학원을 다녔는데 학원 과제가 너무 많아 게하에서 지내면서 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래마을에 있는 에어비앤비에서 한 달, 그다음에는 강남역 셰어하우스에서 2달, 신논현역에서 6달 정도 지내게 되었다. 이후 좀 더 괜찮은 곳에서 지내기 위해 다시 낙성대역 셰어하우스에서 1년 정도 지내고 난 후 석사를 위해 2년 동안 2곳의 하숙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러곤 광주와 대구에 현장에서 총 일 년 반을 보내고 다시 서울에 올라와 광진구 2년, 현재 선릉역에서 살고 있다.


서래마을에 있는 복층 빌라단지로 서래마을살이를 한 달 정도 할 수 있었다.

이곳은 서래마을에 있던 에어비앤비인데 복층으로 되어있어 1층은 주인이 사용하고, 2층에는 4인용 2층 침대가 있었다. 다행히 사람들이 거의 예약을 안 해서 멕시코에서 온 친구와 함께 2층을 거의 사용했다. 서래마을 주택단지라 집은 엄청 비쌀 거 같다.


에어비앤비에서 본 창문 밖 목련과 주방&거실 모습
멕시코 친구와 함께 4인실에 지내면서 학원 숙제가 너무 많아서 이른 아침이나 밤 늦게 불을 켜야 했었는데 가끔 테라스에 나가 공부를 하기도 했다.


나의 생일날에는 이태원 게하에서 만난 폴란드 친구인 Hela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 처음 만났을 때 잘 맞다고 생각했었는데 운명처럼 우린 생일도 같았다. 그래서 대공원역에서 미역국을 끓여가고 Hela는 케이크를 사와 둘이서 생일 파티를 했다. Hela와는 그 이후로도 연락을 계속하여 Hela가 한국에 한 번 더 방문하기도 하였고, 내가 폴란드에 한 번 가기도 했다.

생일날 대공원역에 있는 서울랜드에서 함께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나중에 꼭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오기로 했다.
아침부터 미역국을 끓여 햇반과 함께 싸왔다. 이 날 날씨는 봄날로 아주 따듯했다.


헬라가 준 케익과 선물들 ♥


그 이후, 강남역과 학원과 엄청 가까이 있던 셰어하우스는 집주인이 같이 사는 셰어하우스였는데 집주인 방에 서라운드 시스템이 매우 잘되어 있었고 꽤 시끄러워서 거실에 4인실에서 그렇게 편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어차피 집에 가서 잠만 잤고 2달간 지낸 후에 바로 신논현역에 셰어하우스에 가게 되었다. 2층에 작은 방이었지만 혼자 쓸 수 있는 공간이라 좋았고 같이 지내는 사람들도 다 둥글둥글했다.


내 방은 2층에 매우 작고 천장에 머리가 안닿이게 조심해야 했지만 4인실에서 벗어나 내 방을 가질 수 있어서 마냥 좋았다.
내 방 맞은편에 있는 화장실도 머리가 닿이지 않게 조심조심해야 했던 거 같다
내 방이 가장 좋았던 점은 비가 올 때나 날씨가 맑을 때 천창이 있어 하늘이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은 주택에 로망이 있었지만 처음으로 주택의 불편함도 느껴보았다.


얼마 전, 내 사주에 역마살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주를 보니 역마살이 있긴 있었다. 앞으로 나는 어디에 정착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최근에 선릉역에서 살면서 집에 독버섯을 보았는데 갑자기 집의 중요함과 집 볼 때 어떤 걸 주의해야 할지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설사에 1년 반정도 있으면서 하자점검도 해보았고 실제로 누수나 목재에서 피어난 독버섯을 제거한 적이 있어서 이번 원룸의 누수와 독버섯은 그나마 충격이 덜했다.

하지만, 이 집을 처음 방문할 때 창가 주위에 누수의 흔적을 집주인이 몇 년 전 강남에 비가 엄청 많이 올 때 비가 들이친 거라는 변명에 그대로 넘어가버렸다.

이 집을 구할 때 선릉역이 회사와 지하철, 버스정류장과 가까웠고 강남 한복판에 이 가격에 집을 나오기란 어려울 거란 생각에 굉장히 행운으로 여겨졌다. 특히 이 집은 내가 부동산에 연락하고 이틀 뒤에 가기로 하였지만 그다음 날 집 보러 간 사람이 바로 계약을 했다가 다시 넘어왔기에 나에게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현재 이사하고 난 뒤에 3달 정도가 지났는데 이제 누수가 더 이상 없었고, 원인을 다행히 알게 되었다. 집주인분들이 좋아서 잘 해결은 해줬지만 집 컨디션 자체가 오래되어 언제 다른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다. 또한 회사와 가까워서 출퇴근 스트레스는 전혀 없지만 예전 어린이공원역이 3분 거리이던 나에게 숲은 더 이상 볼 수 없고 운동도 헬스장으로 직접 가야만 한다.


서울에 온 뒤로 집은 단순히 내가 머무르는 공간이었기에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직장을 구하기 전이었거나 학생 신분이었기에 잠깐만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직장에 다니고 하루에 12시간 이상은 집에서 보내기에 집은 좀 더 중요해졌다. 많지 않은 예산에서 집을 고를 때는 조금이나마 나에게 중요한 가치를 우선시해서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은 운이 따르기도 한다. 내가 광진구 원룸을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2번 보고 계약을 하였지만 지금 선릉역 집보다 더 관리가 잘되고 위치도 좋고 만족스러웠다. 선릉역 집은 사실 거의 3달 전부터 피터팬과 네이버부동산 어플을 보면서 미리 보고 결정하였는데 그 대신 예산은 광진구보단 조금 더 적게 잡긴 했다. 강남구과 광진구보다 더 비싼 점을 생각하면 집 컨디션은 그렇게 기대하지 않아야 하는 게 맞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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