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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P Mar 25. 2021

봄을 만끽하는 식물 키우기

내일을 기대하게 되는 나만의 소소한 일상

년 전 출근길에 광화문역사에서 나누어 주는 고양 꽃 박람회 홍보용 화분을 하나 받은 적이 있다. 그렇게 내 손으로 들어온 그 화분은 분갈이를 통해 나와 몇 년간을 함께 회사에서 시간을 보냈고 회사에서 문득문득 지치던 순간 나에게 소소한 위안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부서 내 인력 변동으로 인하여 나는 재택근무로 전환하게 되었고 나의 화분은 회사 동료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다.




처음 해보는 재택근무가 반쯤은 설레기도 했고 반쯤은 걱정이 되었다. 한 시간이나 걸리는 회사 통근시간이 줄어든다는 건 좋았지만 회사를 나가지 않고도 건강한 일상 루틴을 지키며 일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됐고 집에서 근무하면 회사 내 사정을 아는 것에 뒤쳐질까, 매니저에게 나의 업무를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 팀원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복잡한 마음으로 인터넷을 서핑하다 우연히 튤립 구근을 파는 것을 보게 되었고 회사에 놔둔 화분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인터넷을 통해 15개의 튤립 구근을 주문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우연히 튼 EBS의 극한직업에서 마침 "튤립 농장"이야기를 방송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쯤이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며 티브이에서 나오는 내용과 인터넷 블로그를 뒤져 튤립 구근 심기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택배로 도착한 구근은 마치 양파처럼 생겼는데 양파 껍질을 까듯 껍질을 깐 뒤 흙을 부은 화분에 심고 다시 한번 흙으로 겉을 덮어주고 물을 듬뿍 주었다. 사실 이미 심긴 화분은 키워봤지만 구근을 심어서 키우는 것은 처음이기에 튤립 싹이 나올까 반신반의하기도 했지만 내 우려와는 달리 속도는 제각각이어도 15개 모두 싹을 틔웠다.

선인장도 말라죽였던 과거를 지닌 나지만 초심자의 행운은 내가 금손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느끼게도 해준다. 물론,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온도 유지도 열심히 해주고 햇빛도 잘 받을 수 있도록 하루에도  수시로 화분 위치를 옮겨가며 키우며 공을 들이기도 했만 말이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문득 튤립 이파리 사이로  빠르게 자란 아이들의 꽃봉오리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하루가 다르게 색도 더해지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꽃이 빨리 져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지만 신기하게도 튤립은 아침과 낮에는 꽃잎을 활짝 벌리다가 저녁이 되면 꽃봉오리를 접어버린다. 그 모습을 보며 내일은 얼마나 더 자랐을지, 내일은 어떤 모습일지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세안 후 바로 화분 앞에 가서 그 모습을 보고 신이나 연신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물론 친한 친구들에게 매일같이 보내는 튤립사진은 매일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고 더 활기찬 나를 만나게 해 주었다.



서른 중반이 되고 나서부터 회사, 집, 회사, 집을 오가며 매일이 비슷한 것 같아 무료한 것 같기도 하고 일상이 새롭지 않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좋아하는 여행을 가도 쌓인 경험 탓인지 더 이상 예전만큼 설레지 않은 순간이 찾아왔고 여기에 코로나가 찾아오며 생활은 더욱 단조로워졌고 가끔은 이 단조로움이 권태롭기도 외롭기도 했다.

그러던 중 장난 삼아 심은 튤립화분은 요즘 나에게 내일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됐다. 화분을 볼때면 하루하루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그리고 소소한 성취감을 느낀다.




문득 나는 몇 년 전 타블로가 청춘페스티벌에서 내일을 살아갈 힘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내일이 왔으면 하는 이유,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를 적어보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에는 별에 별게 적히는데 내일이 왔으면 하는 이유에는 대단한 것을 써야 할 것 같아 적지 못하는 자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강연이 생각났다.

 그는 우리는 불행에는 관대하지만 행복에는 엄격한 존재인 것 같다는 말을 하며 내일을 기대하게 해주는 거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절대 시간낭비가 아니라고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쓸데없이 느껴지더라도 내가 내일을 기대한 이유를 가득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단순하게 취미 생활만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바람에 나뭇잎만 굴러가도 친구와 깔깔대며 웃던 어린 시절처럼 매일이 즐겁다면 좋겠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달콤한 순간보다 힘들 때가 많고 때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순간이 찾아올 때도 있겠지만 나만의 소소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일이 기대되는 내가 되기를 그리고 당신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느새 성큼 다가온 이 봄을 만끽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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