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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그녀의 모호한 태도는

긴가민가할 때는 민가

모호하다(模糊하다)
            말이나 태도가 흐리터분하여 분명하지 않다.        



난 좀 명쾌하지 않은 건 싫어하는 편이다

사실 '싫어하는 편'이라는 건 역시나 모호한 대답인 거 같고 다소 싫어한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극단적으로 싫기까지 한 거 같다.


지난날 나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동성 간의 관계는 친구네 아니네 할 거까진 아녀도 이성관계에서의 모호란 있을 수 없었다.

 술기운에 하는 고백 따위는 받아주지 않는 것도 술 깨고 난 다음에의 모호할 수도 있는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맨 정신으로 다시 와서 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명확한 선긋기는 상대가 헛물켜지 않게 하는 배려이고 나를 갈팡질팡한 상황에 놓지 않겠다는 나를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분명하게 선 긋는 정신(?)은 일단 남자 친구들의 여사친을 정리하는 확실한 잣대였고 역으로 남자 친구들에게 무한 신뢰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나의 흑역사가 있었으니!

처음 좋아하게 되었던 교회 오빠의 문어다리가 나를 아주 정신 차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니던 교회에서 임원이었던 그 오빠는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다고 소문이 돌았는데 막상 그 오빠의 태도는 긴가민가하게 하는 언행, 태도, 스킨십....

누구나다 첫사랑에 서툴겠지만 나는 정말 호구였던 것 같다 


어쨌든 영화도 보러 가자, 데이트하는 거냐고 능글맞게 (그 당시엔 설레게) 웃던 친절한 그 오빠를 잔뜩 오해하고 편지도 쓰고 선물도 주고 그랬다.

그때의 가장 기억에 남는 대화를 생각해보면 나는 성희롱과 언어폭력의  중간쯤을 당한 느낌.

연애의 연자를 시작도 해보기 전에 그 오빠는 좋아하는 여자를 두고 다른 오빠랑 싸우고 난리. 난 울고불고 난리.


어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그땐 연애의 과정 중 아주 초입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이나 쿨내 진동할지 몰라도 그때는 그 오빠를 기다리겠다는 애절한 글귀로 다이어리를 가득 채웠더랬다. 그 당시 B급 연애소설에 심취했었다


요즘 연애상담을 종종 하면 이런 복장 터지는 걸. 첫사랑도 아닌데 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더라고....

그래서 지금 흑역사를 소환하면서까지 아주 확실하게 못을 박는다.

처음 누군가를 만나서 호감을 주고받다가 관계로 이어지지 않고 이게 긴가 민가 하면 민가,

그런가 아닌가 하면 아닌 거라는 걸 확실하게 말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눠야 연인이든 짝사랑이든, 어떠한 관계가 되는 것인데 일단 관계를 정의할 수 없고 상대의 태도에 확신이 없으면 긴가민가 상태 

사실 상대는 확실히 아니라고 말만 안 했지 선을 긋고 있음에도 나의 기대나 나의 마음이 이 관계를 어떻게 든 이어보려는 마음에 눈에 콩깍지 장착하고 오해하는 걸 수 도 있다. 


이런 모호한 관계에서 더 좋아하는 사람은 약자가 되기 마련이다. 

연애는 힘겨루기가 아니다. 누가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고 누가 갑이고 을이고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믿음을 나누고 마음을 공유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모호한 관계에서는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게 아니라 우위가 존재한다. 

더 좋아하는 사람은 약자가 되어 상대를 살피고 기대했다 실망하며 애절함이 증폭되어 애가 타다 보면 더 마음이 커지는 것 같은. 결국 원망하기도 하게 되는 상태 

누구 잘못인가. 그냥 서로 명쾌하지 않은 게 문제지


상대가 날 좋아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모호한 태도로 상대를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도 이 사람이 막 싫은 것도 아니어서 제안을 했다. 

'나의 어장'에 들어오라고. 나도 '너의 어장'에 들어가겠다고 

우리 서로를 탐색하고 연애를 할지 말지 정하자고 말이다. 

기간이 정해진 어장 생활을 서로 하고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알고 보니 호감에 비해 별로여서 빨리나 온 어장도 있고 확신이 들지 않아 오래 머문 어장도 있다. 

확실한 건 탐색하고 시작한 연애는 안정적이었다. 

상대에 대한 믿음, 확신이 좀 더 커진 느낌이랄까. 


확실한 태도가 겁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잘 따져보면 더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더 빨리 좋은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마음이 나를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마음의 주인은 나라는 걸 기억하자. 

마음이 종이 접듯이 접는다고 접어지는 것도 아니고 마음먹은 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한 건 건강한 내가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건강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좋은 음식을 먹고 때에 맞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그렇게 관리하자. 

건강한 주체로 연애하자. 더 사랑하고 마음껏 사랑하고 또 받자. 그대의 연애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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