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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신고를했다.

인생에서 가장 큰 결심, 다짐, 두려움

오늘,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 


많은 망설임과 그냥 넘기고 싶은 유혹에서 고민했다. 

주변에 많은 이들이 함께 나와 함께 분노했지만 적은 수의 누군가는 그냥 좋게 넘기자고 이야기했다.

막상 신고라는 큰 일 앞에서 함께 분노하던 이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 후에 아이에게 그 일을 듣자마자 등원시키지 않았다.

아이는 분명 무서웠고 선생님이 싫어졌다고 말했다. 


내년에 학교 가는 분명한 의사표현을 하는 딸아이 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아이에게 또 다른 엄마에게도 확인을 하고 나니 허탈하고 화가 난다. 

나는 두려워졌다.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나서야 나는 폭력 상황에 대한 인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받았던 폭력과 나도 모르게 자행하던 폭력을 깨달았다.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폭력에 아는 만큼 대처했을 뿐인데 나는 예민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냥 좋게 넘어갈 수 있잖아?
선생님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
장난일 수 도 있잖아 
어쩌다 한번이니까 기회를 더 주자.


자기 아이를 맡긴 선생님이라 그런가. 너그러운 엄마들을 보고 있자니 

너그러운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내 아이는 못 보내겠는데 남은 아이들은.

내 아이와 친구로 웃고 떠들던 그 아이들은.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

딸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마지막에서 걸리고 말았다. 

책임이 따르는 일,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할 수도 있는 일. 

그냥 모른 척 지나가기엔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나는 불에 덴 듯 퇴소를 결정하고 났는데 남은 아이들은 어쩌지.

아이들에게 남을 마음의 상처를 모른척할 수 있는가.


-

월요일, 퇴소를 결정하고 원장님과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오해였다고 말했고 원장님은 내년 초등학교에 가면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아이가 단단해지는 계기를 마련하는 게 어떻겠냐고. 고개를 끄덕였다.

퇴소는 불가피하구나 

원장님 말씀을 듣자 하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아이가 갑자기 맞이할 이별이 안쓰러워서...

아이짐을 싸가겠다고 하자 원장님이 가지고 오겠다고 하면서 어머님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으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 저도 다혈질이에요"

응? 내가 다혈질이라 찾아왔다는 의민가.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해당 내용을 상담 요청을 했는데 정서적 학대에 해당하니 신고해야 한단다. 

어려운 결정이다. 신중해야 한다. 용기가 필요했다. 


긴 머리에 애착이 있는 아이였다. 내 뱃속에서 나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여성스러움이 가득한 아이는 

라푼젤처럼 머리를 기르고 싶어 했다. 매번 묶어주고 관리해주는 게 귀찮아서 백설공주처럼 하자고 여러 번 설득했을 때도 단호히 거절하곤 했었다. 


그날. 아이는 주말에 엄마가 사준 삔만하고 머리를 풀고 가고 싶다고 했다. 숱도 많고 길이도 길어서 항상 묶어 주곤 했는데 그날따라 풀고 가고 싶어 했다. 생활에 불편할 것 같아서 묶자고 권유했으나 아이는 오늘은 그러고 싶다고 해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처음. 머리를 풀고 갔다.

아이는 예쁘다는 말을 기대했겠지만 선생님은 풀고 온 아이의 머리카락을 자르겠다고 했다.

옆에 친구에게 가위를 가져오라고 했고 친구는 가위를 가져왔다. 그러곤 장난처럼 가져온 친구의 머리를 자른다고 하고 친구는 도망갔다. 이제 머리를 묶지 않으면 반에 들어오지 못한다고도 하셨다고 했다.

아이는 친구도 밉고 선생님이 무서웠다고 했다. 이제 머리를 풀지 않겠다고도 했다.

선생님은 억울해하셨다. 가위를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친구가 그냥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래서 "너는 진짜 가위를 가져오면 어떻게~" 하면서 친구 머리를 자르자고 장난처럼 말했다고 했다. 


천하태평인 아이를 보면서 화가 치민다는 말. 아이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는 말,

밥을 안 먹는 아이에게 뒤에서 왁 하고 놀라게 했더니 밥을 잘 먹는다는 말...

선생님이 직접 학부모에게 상담 중에 한말들을 생각하면 아이들만 있을 때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퇴소처리를 하고 나오는 데 아이가 좋아하던 연장반 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다.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선생님을 제일 좋아했어요"

주책맞게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아이는 가장 좋아하던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다. 


경찰관들을 마주 보고 보니 왠지 두려웠다. 

다른 아이들을 구하는 건지 되려 피해 주는 건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도망치고 싶은 건지 부정하고 싶은 건지. 

이러한 상황에 놓인 게 씁쓸하다. 슬프다. 


선생님은 7세라 장난을 많이 친다고 했다. 농담이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요즘 머리를 많이 풀고 와서 이야기한 것뿐이라고 했다. 몇몇 아이 들 만 모아 두고 말할 걸 그랬다고도 했다.

악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해할 수는 없었다.


 -

아동학대의 범주안에는 아이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자존감을 유지해 주는 것 그리고 아이의 기분상태와 정서를 고려하는 것이 반드시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훈육이라는 의미로 여러 사람 앞에서 아이를 너무 망신을 하는 것도 사실은 학대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는 거죠. 

-[JTBC 집중 인터뷰] 오은영"존중도 존경도 없는 훈육은 학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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