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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제이 Mar 31. 2020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MIT 경제학자들이 밝혀낸 빈곤의 진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스스로를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원제는 'Poor Economics'이다. 책을 읽을수록 우리말 제목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적기 때문에 뭔가를 선택할 때 훨씬 더 신중하게 선택한다. 그런데 왜 가난한 사람들은 질병 예방에 신경 쓰지 않고 병에 걸린 뒤에야 치료에 매달리는가? 가난한 집 아이들은 왜 몇 년씩 학교를 다녀도 제대로 배운 게 없는가? 집을 짓기 위해 돈을 은행에 맡기는 대신 틈틈이 벽돌을 사다 놓는 까닭은 무엇인가?


저자는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에스테르 뒤플로, 아비지트 배너지 부부이다. 이 책은 흔히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이라고 여겨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그들이 삶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에스테르와 아비지트는 15년간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등 세계 40여 개 나라 빈곤의 현장을 누비며 연구를 진행했다. 1부에서는 가난의 덫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2부에서는 가난의 고리를 끊어버릴 정책과 제도들이 논의된다.


가족이 먹을 식량보다 TV 중요하다는 그들의 이야기가 의아하다가도 이내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킬 물건에 투자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희생을 감수하고, 의미 있지만 불확실한 변화보다,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고 가능한 삶을 즐기는  돈을 쓴다. , 이건  얘기가 아닌가. 그들도 소확행을 추구한다. 그들은 소득이 늘어도 배불리 먹지 않는다. 열량 섭취량도 증가하지 않고 영양 성분 면에서도 개선이 없지만, 맛이 좋고 비싼 식품을 선택한다. 그들의 선택이 비합리적인 것이라   있을까.


가난한 사람들이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은, 그들이 진심으로 원해서일까. 그들은 자제심이 부족하거나 피임법을 몰라서 자녀를 많이 낳는  아니다. 자식을 여럿 낳으면 노후에 자신을 부양할 자식이  명쯤은 있을 거라는 믿음에 자녀를 많이 낳는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세계에 살았다면 자녀를  적게 낳아 최선을 다해 키울  있고 노후를 자녀에게 의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가난의 이유를 알면 길이 보인다. 그들이 가난한 것은 게을러서도, 합리적인 선택을 못 해서도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결정적인 정보가 부족하거나 그릇된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또 가난한 사람들은 사소한 부분에서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을 한다. 생활형편이 어려운 탓에 무엇 하나 제때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일은 할 수 없다는 예상은 흔히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전환된다. 예를 들어 교사 또는 부모로부터 수업을 따라갈 만큼 똑똑하지 못하다는 암시를 받은 학생이 학업을 단념하는 경우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희망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골대를 조금 가깝게 밀어주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골대를 향해 달려가는 첫걸음을 내딛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가난의 뿌리를 근절할 스위치 같은 건 없다. 그러나 희망과 넛지(느슨한 개입)를 통한 적절한 도움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옆구리를 슬쩍 찌르기만 해도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은 변했다. 적절한 도움은 일정 정도 상황을 개선시키고,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은 상황을 전혀 개선시키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도움을 주는 편이 오히려 차후에 발생하는 국가적인 비용을 절감시킨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보험정책, 소액금융, 최저 소득 지원 제도 등 사회안전망도 마련되어야 한다. 지난 오랜 시간 빈곤층을 지원하는 정책들은 세부적인 정책 설계 과정에서의 실수, 사회 곳곳에 만연한 타성과 부패 등으로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자는 거대한 이야기보다 주변부로 눈을 돌리고 아이디어를 모을 것을 제안한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가난한 사람도 합리적이다! 가난한 사람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오해를 푸는 데서 그들에 대한 진짜 이해가 시작될 것이다.




저자 에스테르 뒤플로의 Ted 강연 '빈곤퇴치를 위한 사회학적 실험'은 이 책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녀의 실험이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지, 그녀 같은 경제학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인류 역사에 얼마나 희망적인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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