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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제이 Feb 12. 2021

글 잘 쓰는 아이?!

"훌륭한 글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글을 정말로 잘 쓰는 건가요."

"저번에는 꽤 잘 쓴 것 같더니, 이번에는 좀 부족해 보여요."
"왜 우리 아이 글에는 육하원칙이 없는 걸까요."

"책을 더 읽으면 좀 나아질까요?"


아이들 수업을 하다 보면 위와 같은 질문들을 종종 받는다. 단언컨대, 제법 글을 잘 쓰는 아이라도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선생님의 눈에는 짧은 시간 안에 이만큼 써낼 수 있다니 너무나 기특하고 칭찬받아 마땅한데 엄마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나 또한 두 아이의 엄마이다 보니 그 마음에 공감이 된다. 두 아이 중 2분 먼저 태어난 첫째는 글을 꽤 쓰는데 내 성에 차지는 않는다. 그래도 지적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아낌없이 칭찬한다. 둘째는 예나 지금이나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초등 저학년 때 비하면 많이 좋아지긴 했고, 그 정도에 만족하고 있다. 다행인 건 둘째 아이 스스로 자신의 글에 자신감이 있고, 글 쓰는 행위 자체를 어려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주제가 주어지든, 글을 쓸 수 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 왜 글을 써야 하는 걸까. 독서와 글쓰기는, 너무 뻔하지만,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마음이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책을 읽고 스토리를 이해하고,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마음을 헤아려보고, 나라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고, 나에게는 비슷한 경험이 있었나 떠올려보고, 공감하고 위로받고 혹은 비판하며 생각을 확장해 나가는 게 독서이다.


글쓰기에는 마음을 부지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무심히 지나쳤던 것도 다시 보게 만든다. 글을 써야지 하고 마음 먹으면 작은 것 하나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유심히 관찰하고 생각하고, 내 마음과 머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마치 레미콘 트럭의 커다란 통이 굳지 않은 상태로 콘크리트를 운송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글을 잘 쓰면 수행평가에 유리하고, 대학 자소서도 멋지게 쓸 수 있겠지만 기술적으로 잘 쓰기만 한 글은 매력이 없다. 모범답안만큼 지루한 글이 또 있을까. 지금 나의 글 역시 모범답안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조금 서툴더라도 자기 생각, 자기 색깔이 들어있는 글이 낫다. 그러려면 아이의 글을 존중해야 한다. 어른들의 기준에 맞추다 보면 아이의 글은 그저 그런 비슷하게 못난 글이 되고 만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 들여 글을 쓰고 기대감에 차서 글을 보여준다. 사소한 것들이 눈에 좀 거슬리긴 해도 아이의 고민과 노력을 제대로 봐 주자.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은 아이가 있다. 그러니 같은 상황을 겪어도 그 누구보다 자세하게 전달한다. 당시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디테일하게 이야기한다. 이 친구의 글은 본인의 말처럼 길고 자세하다. <15 소년 표류기>의 열다섯 친구 이름을 모두 나열한다. 이 아이에게는 열다섯 친구 모두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약하는 걸 힘들어하긴 하지만 못한다고 할 수는 없다. 무얼 버리고 무얼 남길지 남들보다 고민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다. 누군가는 이 아이의 글을 장황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디테일이 살아있다고 말하고 싶다. 섬세하고 따뜻하다. 별 것도 아닌 걸 별 것처럼 만드는 재주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 확실하다.


한 아이는 말수가 적다.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은 아닌데 필요한 말만 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글 쓰는 걸 힘들어했다. 글의 분량이 좀처럼 늘지를 않는 거다. 글은 깔끔한데 디테일이 아쉬웠다. 그래서 이 친구에게는 생각의 가지를 이어나가는 방법, 배경지식과 경험을 글의 주제와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도록 했다. 그러다가 글쓰기 대회에서 큰 상을 받게 되었는데-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글감의 힘이 컸다 글의 소재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그 뒤로는 글쓰기에 자신감이 붙어 글을 척척 잘도 쓴다.


결국 우리에게는 좋을 글, 잘난 글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필요한 게 아닐까. 써봐야 내 글이 장황한 지 지나치게 깔끔한 지도 알 수 있고, 지속적으로 써야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기회도 만날 수 있다. 그러면서 나는 오랫동안 글쓰기를 쉬고 말았다. 지속적인 글쓰기가 그만큼 어려운 거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그때그때 써내는 글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과정에 대한 칭찬(아니 인정이라도)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이미 저마다 다른 이유의 훌륭한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못난 글은 다 비슷하지만
훌륭한 글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역설로 들리겠지만 훌륭한 글을 쓰고 싶다면 훌륭하게 쓰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못난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앞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특정할 수 없지만 맛있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가려내는 기준은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도 비슷하다. 쓴 사람도 다르고, 글도 다르고, 읽는 사람 취향도 달라서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글'을 특정할 수는 없다.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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