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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제이 Feb 17. 2021

격리 12일차 아이의 말


- 똑똑(밥 오는 소리)

- 솔아 일어나 밥 왔다. 웬일로 아침밥 올 때까지 자냐. 벌써 7시 40분이야.

- 으... 마치 방학계획표대로 생활하는 것 같아.

- 방학계획표? 답답하다는 거야? 아님 이제 지루한 거?

- 아니 그냥 신기해서. 그렇게 지키려고 해도 안 지켜지는 게 방학계획표인데, 지금은 맨날맨날 같은 시간에 밥 먹고 숙제하고 컴퓨터 하고... 진짜 신기하지 않아?


부스스 일어나며 방학계획표 타령을 하는 아이의 얼굴이 자못 진지하다. 글쎄다 엄마가 보기에는 맨날 놀고 먹으니 딱히 지킬 것도, 지키기 어려울 것도 없어 보이는 구만.


저녁밥상을 치우니 아이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들고 너무 책을 안 읽어서 하루 1시간 책 읽는 시간을 정해주었다 침대에 엎드리며 오늘이 격리 며칠째인지를 묻는다. 12일 지났다고 했더니 "2주가 쉴 틈 없이 갔네 쉴 틈 없이 갔어" 한다.


- 누가 들으면 격리하는 동안 뭐 엄청 많이 한 줄 알겠다? 맨날 쉬어놓고 뭘 쉴 틈 없이 갔대?

- 아니 그냥 비유적으로 이야기한 거야. 그만큼 빨리 지나갔다는 거지.

- 그으래? 올~~ 또 비유 공부했다고 비유 써먹네.

- 하여간 엄마는... 할많하않!!


격리기간을 혼자 지내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말이 고프려나, 혼잣말이 늘어나려나. 둘이 지내는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말이 없어진다. 한동안 정적.


- 아니 근데 이거 언제 번역한 건데 이런 표현이 나와? 그의 성적은 '수'에서 '미'를 거쳐 '가'까지 곤두박질쳤다? 설마 그 수우미양가?

- 엄마는 '수우미양가'를 아는 니가 신기하다야.


격리기간의 절반이 지나갔다. 오늘도 폭죽놀이는 계속된다. 이 놈의 춘절은 언제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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