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집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뉴스에는 우리 부모님이 아들을 잃은 슬픔에 집에 불을 질러 자살을 택했다고 나왔습니다. 우리 오빠는 묻지마 살인을 당했다고요. 저는 너무 멍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너무 슬퍼서 정말 자살을 하신 걸까. 자살을 하시려고 날 고모 댁에 보냈던 걸까. 그렇다면 불길은 어째서 밖에서 더 크게 일었을까. 석유통은 왜 집이 아니라 집 옆 가로등 밑에 있었을까, 불은 뭘로 붙였을까, 우리 부모님은 담배도 피우지 않으시는데. 정말 나를 버리고 떠나시기로 작정한 걸까 텔레비전 뉴스를 믿을 수 없었지만 뉴스 말고는 또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짤막한 우리 집 뉴스가 지나가자 기업 회장비리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왔습니다. 정치인에게 자금을 대주고, 탈세를 하며,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회사이름을 Z로 바꿔 손자 앞으로 재산을 돌려놓는 등 여러 이유로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라는 기사였습니다. 뇌물을 받은 사람이 TV에 나왔는데 우리 오빠 사건을 담당하던 경찰청장이라고 아나운서가 말했습니다. 세상에 저렇게 나쁜 사람도 있을까 싶습니다. 같은 기업인들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싶어요. 인터넷 댓글들을 확인해 보니 그 회사 손자가 우리 오빠와 다니던 학교와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소문이 있더라구요. 지금 오빠가 살아있다면 그런 소문들에 대해서 한 번 묻기라도 해봤을텐데, 이제는 혼잣말로 끝내야한다는 걸 실감하니 가족들이 빈자리가 더욱 그리워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대체 무얼까요…
이제 치료실에 가서 거즈를 떼어내고 상처부위를 치료해야 해요. 위에서 떨어진 무언가 때문에 어깨 쪽은 물리치료도 받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요. 치료가 끝난 후에는 바로 저녁식사가 있고 그 후에 바로 병동 사람들끼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에요. 아직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하셔서 의사선생님은 저를 심리치료에서 아직 빼주지 않으셨거든요. 치료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로 이뤄져요. 매주 화요일이면 심리치료를 받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눠요. 회장님이 이 대화를 들으시면 저를 포함한 많은 환자들에게 아주 많은 도움이 될 만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실 수 있으실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자꾸 어서 치료실로 내려가라고 손짓을 하네요.
제가 말이 너무 길었지요? 전 남들이 보기도 싫은 흉터를 가지고 곧 퇴원합니다. 덕분에 치료를 잘 받았기 때문이겠지요.
20XX. 12월을 맞는 겨울날, 권순미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