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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ty 묘등 May 10. 2021

'명상요가'에서 물水을 배우다

[도덕경 제8장]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

물에서 배운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입니다.
그러기에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낮은 데를 찾아가 사는 자세
심연을 닮은 마음
사람됨을 갖춘 사귐
믿음직한 말
정의로운 다스림
힘을 다한 섬김
때를 가린 움직임.

겨루는 일이 없으니
나무람받을 일도 없습니다.
- 47P -


2017년 워낙 S자가 아닌 일자형 요추인 데다 경미하지만 여러 번의 교통사고, 출산 등으로 디스크 내장증이라는 허리 질환이 생겨 요통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다. 허리 통증에 육아의 고단함까지 더해져 그냥 방치하기에는 일상생활조차 버거워 심신이 지쳐갈 때쯤 ‘명상요가’를 우연히 알게 된다. 육아로 인한 '자아 찾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차이기도 해서 현재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명상요가’가 최선일 것 같다는 확신에 이르어 ‘명상요가’의 문을 두드린다.




명상요가 중이다. 바닥에 누운 채 원장님의 지도를 따라 눈을 감고 이완하면서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다.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세요.
잔잔한 호수의 맑은 물이 주변의 모든 사물을 비추듯 그렇게 자신을 내버려 두고 고요해져 가는 자신을 느끼세요.
흙탕물일 때에는 주변의 아무것도 비추어지지 않습니다.
물을 가만히 놓아둘 때 물은 본연의 맑음으로 돌아갑니다.
물의 특성은 본래 모양 색상도 없습니다.
물은 그저 자기 자신도 비추지 못하고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그저 맑은 속성으로 주변을, 온 세상을 비춥니다.
마음도 물과 같습니다."


[도덕경 8장]을 읽고 있자니, 명상요가 원장 선생님의 지도 말씀이 떠오른다. 내가 하고 있는 명상요가가 물의 속성을 추구하고 있었음을 자각한다.




물은 경직되지 않는다.


동작(아사나) 위주의 요가와는 달리 ‘이완법’을 중심을 이루어지는 ‘명상요가’는 너무도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아사나 자체의 난이도는 낮다. 사실 1시간의 수련 시간 동안 절반 이상을 누워서 보낸다. 동작의 완성도보다는 몸이 이완할 수 있도록 힘을 풀어 몸이 쉬어지게 만드는 것이 명상요가의 핵심이다. 동작이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 수련을 하고 나면 난이도 높은 아사나 동작을 하는 요가보다 더욱 힘들게 느껴진다. 격한 운동을 즐겼던 나에게 명상요가 후의 내 몸의 반응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어 초기에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명상요가의 시간이 쌓이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이는 중추신경 및 신체 근육의 긴장이 일상화되어있던 나에게 있어 ‘이완’은 ‘쉼’과 ‘휴식’일 수 없었던 것이다. 신체가 이미 ‘긴장 상태’에 길들여져 있었기에 ‘이완’이 고통일 정도로 나는 심각하게 경직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만큼 스스로를 혹사해와서인지 명상요가를 하면 어느 순간 ‘내 몸’에 대해 미안해하면서도 고마워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명상요가를 할 때면 내 몸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때 내가 내 몸을 얼마나 함부로 써왔는지에 대해 인지하게 되면서 나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명상요가를 한 회, 한 회 해나갈수록 신체 긴장은 차츰 완화되어갔고, 어느 순간 ‘이완’ 상태를 자연스럽게 느끼며 쉴 수 있을 정도로 몸은 회복된다. 명상요가를 한 후 고질병이었던 허리 통증도 어느새 발생 빈도가 낮아져 일상 활동을 하는 데에 불편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경직 상태였던 나는 물의 성격을 닮은 '도道'에 저항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흐르지 못해 썩어가기 시작한 나의 심각한 상태를 본능적으로 자각한 나는 명상요가를 통해 나의 일상에 파란을 일으켜 다시금 흐름의 결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유연성을 잃고 고체화되어가는 물은 순환하지 않는다. 흐르지 못하고 정체된, 고여있는 물은 썩게 마련인 것이다. 혈관이 굳어지고 혈액의 흐름이 막히면 주변 장기들은 경색되어 제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는 이치와 유사하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긴장상태로 삶의 유연성을 잃어버리고 경직된 일상이 지속되다 보면 결국 훼손되어버린 자신의 심신과 삶을 목도하게 된다.


"빨리, 빨리"가 강요되는 현대 사회에서 근래에 부쩍 "Slow Life", "쉬어가기"에 대한 필요성이 느껴진다면 이를 무시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될 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을 자각한 순간은 바로, 흐르지 못하고 굳어져가고 있는 내 삶에 대한 경고의 순간임을 잡아채야 한다. 경직되어가는 삶이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생존을 위해 보내는 경고의 신호를 인지해야 함이다. 변화의 필요성을 절박감으로 받아들여 삶에 심폐소생술을 시도해야 일상은 다시금 결을 갖춰 흐를 수 있음에 썩어버린 삶에 대한 아쉬움과 뒤늦은 후회를 미리 차단수 있을 것이다.     


물은 본래 투명하며, 고요할 때 본성을 드러낼 수 있다.


명상요가를 할 때면 신체 긴장의 이완뿐만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마음의 안정을 자연스레 유도한다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명상요가 전에 복잡했던 머릿속과 마음이 명상요가 후 차분해지고 안정되면서 생각도 가라앉음을 느낀다. 심신이 안정되니 나에게만 고립되었던 시선이 세상 밖을 향해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여유가 붙는다.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니 그동안 조바심 내면서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덧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어쩌면 외면했고 소홀히 했던 나 자신을 자각한다. 무언가에 쫓기듯 긴장하고 조바심 속에 허우적거렸던 나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삶이 보이니 생활방식 및 관계의 완급 조절을 시도하게 된다.

명상요가를 통해 고요해지니 비로소 내가 보이고, 내가 알아지니 세상이 보이는 이치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물의 본질은 비추는 것이다. 물의 맑고 고요해 만물을 비추는 본연의 모습은 외부(비, 바람 등)에 영향받지 않는 평온한 상태에서 드러나게 된다. 비바람에 의해 파도쳐 물의 무서움이 드러날 때는 주변을 비출 수 없다. 외부의 영향에 의해서든, 오물을 씻어 흙탕물로 더럽혀져 있을 때든 물은 고요한 상태로 회귀하면서 먼지, 때들을 밑으로 가라앉혀 결국은 맑아짐에 따라 사물을 비추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맑은 물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것을 비춘다. 담기는 그릇에 몸을 맡겨 형形이 바뀌고, 비추는 사물의 색을 본인(물)의 색으로 보여줄 뿐이다.

즉, 물은 자기(색깔)를 드러내지 않을 때 주변의 모든 것을 비춰 자기(물)를 통해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 이는 자기를 버려(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않음) 자기를 보존하는 것, 즉 물의 참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번 [도덕경 8장]에서는 나의 경직되고 정체된 삶 속에 혼탁해져 버린 심신의 위기감을 느꼈기에 운명처럼 만날 수 있었던 ‘명상요가’의 가치를 '물의 본연의 성질'을 통해 발견해 보았다.

일상에 쫓기듯 살아온 내게 일주일에 두세 번 하는 ‘명상요가’는 힐링의 시간이자 배움의 시간이자 자각의 시간이다.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보게 되고, 그러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소소한 깨달음을 얻고 있음을 경험한다. 나는 이러한 귀중한 경험이 나의 삶에 녹아들기를 희망한다.

더불어 자기를 드러내지 않을 때 모든 것을 비춰 온 세상을 품는 물처럼 나를 비워 도의 이치를 나에게 아로새길 수 있기를 또한 [도덕경 8장]을 통해 감히 희망해본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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