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승유 아빠 Apr 05. 2023

바람직한 소통을 위한 성찰노트

넷째, 보상심리의 난해함

자고로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칠 때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합니다. 두 아이의 엄마인 E 씨는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배우고 자랐습니다. 그녀가 무엇이든 잘할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주 정확하게 그에 따른 상을 지급했고, 그녀가 무엇을 잘못할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주 냉정하고 호되게 그녀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당신이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듯 아이의 성적을 생활을 처리했고, 그렇게 E 씨는 사리분별이 정확한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합리적인 사람이었고, 공감능력이 조금 부족한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그녀에게는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연애와 결혼 때문에 큰 갈등을 겪거나 심리적으로 힘겨워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안도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하고부터였습니다. 그녀의 육아태도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 어머니의 그것을 따라 하고 있었고,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그녀의 아이는 그녀가 생각하는 만큼 성장하고 있었고, 지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문제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 것은 중학생이 되던 해였습니다. 더 이상 그녀의 당근이 아이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다양한 당근을 사용하여 아이에게 조금은 과한 학업을 맡긴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녀 자신을 위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힘들어야 성장한다는 말은 옛말이라고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불필요한 고생을 겪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면 아이와의 작은 갈등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그 갈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언제나 후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남편과의 의견차이에서 오는 다툼을 감소하고서라도 말이죠. 사회에 진출했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위치에 있으려면 좋은 학벌을 확보해야 했고, 고등학교 진학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부터,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미리 노력해야 했어요. 어떤 엄마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이에게 좋은 아침을 먹이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가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옮겨질 때도, 아이가 편의점 음식을 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시락에 간식을 챙겨 다녔고, 아이의 학원이 끝나고 과제를 마칠 때까지, 씻고 이를 닦고 아이가 잠들 때까지 아이의 곁을 지켰어요. 어떤 엄마보다 아이를 이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했습니다. 늘 아이를 위한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아이가 학원을 가기 싫다고 했을 때도, 미열이 났을 때도 아이를 쉬게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습니다. 아이가 투덜거릴 때도, 학원에 가기 싫은 티를 낼 때도 못 본척하며 보냈습니다. 그리고 차에 혼자 앉아 혼자 마음 아파했습니다. 이게 맞는 걸까 의심한 적도 많았어요. 그냥 아이가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놔두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친 사회는, 출산과 더불어 일시정지된 경력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처럼 중도포기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래야 한다고 독하게 마음을 먹고 먹고 먹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영재반에서부터 아이는 그녀의 말을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노골적으로 하기 싫음을 표현했고, 어떤 보상을 주어도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학원에서 이루어지는 평가점수는 매주 떨어지기 시작했고, 2학년을 앞두었을 때 아이는 일반반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아이를 혼내도 보고, 달래도 보았지만 아이는 이제 더 이상 말 잘 듣는 예전에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아이는 곧 고등학생이 될 것이고, 대학에 가야 할 것인데 그녀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던 그 사회로 밀려가게 될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P 씨는 1년 차 시어머니입니다. P 씨의 남편은 4남매의 맏이였습니다. 유달리 책임감이 강했던 그녀의 남편은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다고 늘 생각했고, 특히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막내는 마치 자식처럼 대했습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시아버지의 경제활동은 아주 예전에 멈췄기 때문에 집 전체는 그녀 남편의 수입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몰랐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힘들었지만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십 대 초반이었고,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시누이들과 시동생들을 보살피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해 겨울, 아침에 멋지게 차려입고 어디론가 나가시던 시아버지는 눈길에 넘어져서 그만 하반신이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막내 시동생을 결혼시킨 해였습니다. 이제 고생이 끝났다고 남편과 축배를 든 지 한 달도 되지 않는 때였습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5년이 다되는 시간 동안 그녀는 시아버지를 돌봐야 했습니다. 식사를 준비하고, 대소변을 받았습니다. 구역질이 나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못 마시던 술도 마셨습니다. 간병인을 쓸까 생각해 봤지만, 생각보다 많은 금액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니, 감당할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희생한다면 가족의 생활이 훨씬 나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늘 아꼈습니다. 사고 싶은 것도 참았고, 그러다 보니 사고 싶은 게 없어졌습니다. 먹고 싶은 것도 참았고 그러다 보니 먹고 싶은 것도 없어졌습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그녀는 마침내 해방된 것 같았습니다. 지나치게 참았던 그녀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늘 아끼고, 사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게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는 옳은 판단이었으니까요.


아들이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런 자신의 태도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활태도를 자랑스러워했고, 남편도 그 점에서 동의해 주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들의 결혼식에서부터 이런 마음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을 그녀는 미처 몰랐습니다. 결혼식 도중 아들이 사돈들에게 절하는 순간부터, 그녀의 마음은 조금씩 불편해지고 있었습니다. 웃고 있었지만 폐백을 하는 순간에도 마음 한 구석에 묘한 이질감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그래서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그런, 가슴 깊은 곳이 조금 막힌 듯한 느낌. 그리고 그런 느낌은 신혼여행지에서 아들 내외의 행복한 사진이 도착할 때 조금 더 커졌습니다. 신혼여행지로 출발하기 직전, 빨리 손주를 안겨줘야 한다는 말과 함께 엽산을 며느리의 손에 쥐어 주었을 때, 뭔가 불편해 보이는 며느리의 표정도 자꾸만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이를 가진 채로 시누이와 시동생의 빨래를 해야 했던 자신의 모습과 비춰 보이면서 자꾸 자신의 삶에 회의가 느껴지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외면했습니다. 자신의 희생은 가족의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되새기며 그 아득한 불쾌감을 억눌렀습니다. 그리고 그런 불쾌함은 아들 내외가 결혼한 지 1년이 되지 않아 폭발했습니다. 집에 손님들이 도착하는 어느 저녁, 직장 때문에 일을 도와주러 올 수 없다고 말하는 며느리의 목소리에, 당분간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아들의 목소리에, 결혼 1주년을 기념하여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메시지에, 그녀는 그만 무너져 버렸습니다. 시아버지의 손님이 올 때마다, 남편의 손님이 올 때마다 밤낮없이 상을 차리고 이부자리를 봐야 했던 자신의 모습과, 임신한 채로 집안일을 하다 뭉친 배를 안고 겨우 잠들었던 자신의 모습과, 바다로 피서 한 번 가지 못하고 에어컨조차 맘 놓고 틀지 못하며 연신 땀만 닦아내는 갱년기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이며 그녀는 무턱대고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며느리 몫의 분노와 며느리 몫이 아닌 분노를 몇 번이고 몇 시간이고 쏟아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탓하는 아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더 쏟아내었습니다. 특히 며느리의 편을 드는 아들이 너무 서운했고, 아들이 변한 것처럼 느껴졌으며, 그 원인이 며느리에게 있는 것 같아 다시 며느리가 미워졌습니다. 어제 아들과 언성 높여 싸웠습니다. 그리고 분에 못 이겨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렸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우리는 힘든 일을 하면 맛있는 것을 먹고 싶습니다. 무엇인가 일을 하고 나면 대가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때로는 어떤 일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보상 없이 온전히 희생하는 삶을 예찬하는 과정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자연스럽게 보상을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열심히 운동한 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문제는 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스스로에게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E 씨는 성공적으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직장생활은 힘겨웠고,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차별도 버거웠습니다. 그녀는 애초에 전투적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직장생활에서 살아남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습니다. 자신의 아이는 그렇게 만들지 않겠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가 그런 것처럼 그녀의 아이는 그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의 양육 태도는 그 의도의 선함과 관계없이 문제를 유발하고 만 것입니다. 그녀가 아이에게 언제나 준 보상도 마찬가지로 문제를 유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목표는 과거의 자신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아이의 능력을 간과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긴 시간 동안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아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그것이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아이의 능력에 비해 버겁지는 않은지에 대한 성찰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는 더 크고 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그녀의 행동이 온전히 아이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혹시 그런 교육을 받았더라면 사회생활에서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생각해 보면 그녀는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도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녀의 아이는 이제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사춘기의 뇌는 그저 억지로 자리에 앉아 있고 싶지 않다고만 생각하고 있으며, 엄마가 주는 물질적 보상이 음악을 듣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크다고 생각되지 않으니까요. 애초에 그 보상들조차 자신이 원하는 것들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는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잃은 채, 사춘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녀는 아이에게 물어야 합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이를 자신의 자녀나 분신이 아닌 자신과는 다른 인격체로 대해야 합니다. 아마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찌 보면 P 씨의 분노는 당연한 것입니다. 결혼 후 '며느리' 혹은 '아내' 혹은 '어머니'로의 삶만 살았던 그녀로서는 자신의 삶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희생과 가족이라는 단어 안에 합리화하기로 했습니다. 희생이라는 말만큼 합리화에 좋은 단어는 없습니다. 어떤 정신적 육체적 억압도 가족과 희생 앞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며느리의 삶에서 그녀는 자신과는 다른 '여성'의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물론 며느리도 아내이고 어머니가 되겠지만, 선택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녀는 며느리로서의 삶에서 희생의 정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어머니가 되는 시기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더구나 그녀의 선택을 지지해 주고 도와주는 합리적인 남편마저 곁에 있으니까요. 그런 며느리의 삶 앞에서 P 씨는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녀는 충분히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스스로의 삶을 찾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하지만 그녀는 이미 가족과 스스로를 분리할 수 없을 정도의 세월을 살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는 것에 많은 진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주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녀의 분노는 가족을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고, 며느리에게 자신과 같은 희생을 요구할 수 있으리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한 것이죠. 다들 아시겠지만 분노는 가장 쉬운 선택입니다. 대게는 분노를 통해 많은 일들이 해결됩니다. 내면의 갈등을 살짝 덮고 표면적으로는 모든 일이 잘 흘러간다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이미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그에게는 보호해야 할 아내가 있고, 아마 곧 아이들도 태어날 것입니다. 그가 P 씨의 분노 앞에서 어떤 행위를 선택할 수 있을까요? 아내와 아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표면적 갈등의 봉합일까요? 아니면 아내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의 다투는 길일까요? 어떤 길이든 행복하지 않을 길일 것입니다.


우리는 보상심리라는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합니다. 그것은 옳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며,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합니다. 때로는 빠른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며 명확한 한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보상심리의 난해함 앞에서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삶은 나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보상심리를 아이들에게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그 길이 조금은 힘들고, 지금까지의 삶을 부정하는 것일지라도 말입니다.


자신에게 진실로 보상을 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직한 소통을 위한 성찰 노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