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녹내장이라는 것을 알았던 순간(평생의 반려 질병을 만나다)
<내 녹내장 발병에 대한 합리적 의심 1>
우리 집안은 친가도 외가도 눈 나쁜 사람이 드물다. 양가를 통틀어 안경 쓰는 사람이 참 적다.(피 섞인 사람에 한한다.) 간혹 안경을 쓰더라도 그 이유는 대부분 근시이다. 안경을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썼다. 뒷자리였는데 어느 날부터 칠판이 잘 안보였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학교 가방에 망원경을 챙겨 넣는데 아빠가 그걸 왜 챙기냐고 물어보곤 대답을 듣더니 나를 안경점으로 데려갔다. 그때부터 지독히 안경을 싫어하는 나의 길고 긴 안경 생활이 시작됐다. 그때 내가 안경점이 아닌 안과를 갔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의미 없는 희망뿐인 'if'지만 아마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녹내장이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20살 겨울에 녹내장을 발견했다. 초등학생처럼 어리지는 않지만 녹내장 환우들 중에서는 굉장히 어린 편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 의문을 품은 지 몇 년 되지 않았다. "왜 나만 집안에서 유일하게 녹내장이, 그것도 이렇게 빨리 왔을까?" 병원에서는 "20살 때부터 녹내장이 온 거면 유전적인 영향이 클 것이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후천적인 결과들로 녹내장이 생기기에는 20살은 너무 빠른 나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다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눈이 엄청 '어두우셨다'라고 했다. 엄청나게 두꺼운 안경을 쓰시고도 앞을 잘 못 보셔서 집안을 다니실 때 벽에 손을 짚어가며 다니셨다고 들었다. 녹내장 시야결손이 떠오른다. "나의 눈은 어쩌면 할아버지에게서 온 게 아닐까? 아빠를 패싱 하고 한 세대를 건너뛰어서." 증명할 수 없는 이 합리적 의심은 그저 의심으로 여기서 끝이 났다.
<내 녹내장 발병에 대한 합리적 의심 2>
아니면 혹시 내가 콘택트렌즈를 부주의하게 껴서 녹내장이 왔을까? 안경 쓴 내 모습을 너무 싫어했던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콘택트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참 불편했지만 안경 벗은 나의 맨얼굴이 너무 좋아 여러 번 끼고 다녔다. 그러고 20살 겨울, 대학 1학년을 마치고 방학 때 울산에 내려와 군입대 준비로 라식수술을 하러 갔다가 우연히 내가 녹내장임을 알았다. 그 뒤로는 쭉 안경을 다시 썼다. 그러다 30살에 라섹을 하고 안경을 다시 벗었다. 기간을 살펴보면, 고2, 고3의 2년 동안은 외출 때마다 잠시 착용한 정도였고, 20살 때에는 거의 종일 착용하고 다녔다. 20살 때에는 렌즈 착용 시간이 엄청 길었다. 거의 하루 종일 렌즈를 끼고 다녔으며, 준비 없이 밖에서 잠을 자야 했을 땐 그냥 끼고 잔 적도 있다. 하드렌즈였는데. 정말 끔찍한 수준의 관리였다. 어렸고 몸을 챙길 줄 몰랐고 무지해서 일어났던 대참사였다. 이런 대참사는 20살 1년 동안 참 많이도 일어났었다. 앞서 밝혔듯 20살 1년은 하드렌즈를 꼈었고 그 전에는 소프트렌즈를 썼었는데, 소프트렌즈를 썼을 때에도 관리에 소홀했던 것 같다. 다회용이었는데 세척을 제대로 한 기억이 드물다. 이때를 다시 떠올리니 몸서리가 쳐진다. '정말 끔찍한 눈 관리'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저 끔찍한 행동들이 내 녹내장을 불러온 걸까. 눈 건강에는 나빴겠지만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합리적 의심 2는 1보다는 다소 싱겁게 끝났다.
<녹내장이 뭔가요>
나는 평소에 안과를 다닌 적이 없었다. 질병이 있지 않은 이상 안과를 주기적으로 찾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이상을 감지한 후에야 병원을 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런 '부족한' 사람이었다. 다래끼 충혈 한 번 없이 20년을 살았기에 안과와 아주 멀리 거리를 두고 지냈다. 당연히 녹내장이 어떤 병인지 나도 식구들도 알 리가 없었다. 녹내장의 증상은 시야결손이다. 그리고 이 증상을 생활에서 인지했을 때는 이미 중증 이상으로 병이 진행된 이후이다. 시야결손의 원인은 시신경 파괴다. 한 번 파괴된 시신경은 되살릴 수 없다. 그래서 초기에 병원을 가야 한다. 하지만 두통과 같은 특출 나지 않은 초기 증상으로 녹내장을 떠올리고 안과에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평상시 주기적인 안과 검진이 꼭 필요한 이유이다. 이러한 녹내장을 주기적인 안과검진을 하지도 않았던 내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앞서 말했듯 라식수술을 하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재미 가득했던 서울에서의 두 학기가 지나 겨울방학이 되었고, 나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본가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집밥 먹고 편하게 지내면서 군대 준비도 같이 할 참이었다. 군대. 당연히 나도 군대를 갈 생각이었다. 이건 의지 아닌 의무의 문제이기에 '당연히 가야 했다.'가 더 적합하겠다. 군대를 앞두고 라식을 하려고 했다. 군생활을 안경을 쓴 채로 보내면 너무 불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 드디어 안경과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구나, 이제 그리울 때 가끔 멋 부림 용으로만 써야지!" 그렇게 아빠랑 같이 라식을 하러 울산에서는 유명한 큰 안과를 갔다. 검사 후 의사 선생님이 검안대에 턱을 괴고 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학생 녹내장이네, 녹내장 있는 거 알았어요?"
녹내장이 뭐야. 뭔지도 모를 병을 처음으로 듣고 인지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이 병을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생 마지막까지 꼬리에 달고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완전한 해방이란 없음을. 나를 옭아매고 지배하려 하고, 언제나 그럴 틈만을 노리는, 정말 지긋지긋한 나의 평생의 '반려'질병. 녹내장이 내 인생에 처음으로 등장한 순간이었다.
P.S.
1. 라식할 생각 안 하고 그냥 군대를 다녀왔었다면? 모른 채 시간은 지났을 것이고 30살쯤 발견해서 상당한 시야 손상으로 일상생활이 몹시도 힘들어졌을 것이다. 지금처럼 운전도 못했겠지. 수술하면 군대도 면제받는데 군필도 이미 마쳤고. 생각만 해도 너무 안타까운 결과고 큰 사고다. 이런 사고를 우연한 검사로 막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 (난 아마 이때 20대의 모든 운을 다 써버렸던 것 같다.) 이런 걸보고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는 건가. 정말 진정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지금의 나는 조금의 시야결손이 있지만 생활에 거의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산다. 입대 준비 겸 라식하러 가자고 했던 아빠 덕분이다. 아빠, 고마워. (보고 싶네.)
2. 생각난 김에 안과 한 번 가보셔요 꼭
3.
4. 본 글은 과거 직접 작성했었던 아래의 글을 다듬어 재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