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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Oct 07. 2023

서서 먹는 키시멘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11월의 가을이었다. 나고야역에서 티켓을 끊고 열차를 기다리는데 Y 씨가 말을 걸었다.


"공장 근처에는 먹을 데가 없으니 키시멘이라도 먹죠"

열차 시간이 적힌 전광판을 보니 열차는 10분 뒤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시간 괜찮을까요?"

"일단 최대한 빨리 먹어보죠. 그리고 이건 M 상이 사는 거예요"


그는 나에게 티켓 한 장을 건넸다. M씨는 이미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회사 부사장으로 이번 출장에 갑자기 동행하게 되었다. 내 상사이자 M씨의 부하 직원인 Y 씨의 말로는 곧 본래 회사로 돌아가기 때문에 (둘 다 해외 파견 나온 직원이었다) 마지막 인사차로 함께하게 된 것이라 했다. M씨와 나는 평소에 거의 대화해 본 적이 없는 터라 긴장했다. 복도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스쳐 지나갈 때면 자연스럽게 몸이 움츠러든달까. 직급도 차이가 났지만, 마치 나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 눈빛이 매섭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미 출장이 시작되기 전부터 지쳐있었다. 이번 출장은 내가 인사이동을 하고 처음 가게 된 출장이었다. 익숙한 담당자들과 업무를 하다 새로운 담당자들과 만나 다시 인사를 해야 해서, 마치 신입사원이 된 기분이었다.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1시간 넘게 지하철을 탔는데, 또 나고야에서 1시간은 더 가야 했다. 환승하기 위해 들린 나고야역에는 사람들로 복잡했다. 근처 중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왔는지 교복을 입은 학생이 몰려 있었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은 공간에 가면 쉽게 지치는데 새벽부터 계속되는 이동에 더 힘들었다. 역에 도착하고 나니 점심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차라리 빨리 호텔에 들어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들어간 가게는 열차 플랫폼 사이에는 있는 조그만 간이식당이었다. 내가 떠올리는 나고야의 이미지는 주황과 연두인데, '나다이 키시멘'이라고 적힌 글씨에 주황 연두로 배경색이 칠해져 있어 제법 나고야스러웠다.

식당에는 여섯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바 테이블이 있었고 의자는 없었다. 깔끔한 흰 셔츠를 입은 두 명의 회사원이 이미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테이블 안쪽에서는 여자 주인 혼자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빈자리에 노트북 가방을 걸어놓은 뒤 티켓을 여주인에게 전달했다.


여주인은 그릇에 데운 면을 그릇에 담고 국물을 크게 푼 다운 고명을 올려냈다. 그 모습은 막힘이 없어서 마치 잘 짜여진 춤 같았다. 과연, 간이식당이구나. 한국의 기사식당처럼 1분 1초가 아까운 사람들을 상대하기 때문인지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없었다. 키시멘이 내 앞 테이블까지 오기까지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내 앞에 놓인 그릇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진한 간장 베이스의 국물, 윤기가 흐르는 넓적한 면 위에 계란 노른자, 가쓰오부시, 새우튀김, 얇게 썬 대파가 얹어있었다. 그릇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니 연한 간장 냄새가 났다. 국물에 반쯤 담긴 새우튀김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튀김옷 안에 담백한 새우가 탱글탱글했다. 적당히 짭조름한 국물 덕분에 튀김의 간이 딱 맞았다. 새우의 하얀 속살이 드러난 부분을 마저 국물에 찍어 먹었다. 그리고 우동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기분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자신의 그릇에만 몰두하며 후루룩 면을 입안으로 가져갔다. 나도 이에 질세라 계란 노른자를 휘휘 저어 면과 같이 먹기 시작했다. 두툼한 키시면에 적당한 탄력이 느껴졌다. 먹으면서 깨달았다. 지금까지 키시멘을 오해했구나 하고.


나는 면 중에서는 두툼한 면을 좋아한다. 멸치국수보다는 칼국수, 당면보다는 넓적 당면, 스파게티 면보다는 링귀니면을 좋아한다. 라멘을 제외한 대부분의 면 요리에서는 두툼한 것을 좋아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키시멘은 예외였다. 지금까지 나고야 출장에서 조식으로 먹은 키시멘이 별로였기 때문이었다. 출장을 갔을 때 먹은 나고야 음식은 대개 짜고, 느끼하고, 맛이 없었다.


그러나 내 눈앞에 있는 500엔짜리 키시멘은 달랐다. 간장은 적당했고, 넓적한 키시면은 지금까지 일본에서 먹어본 면 요리 중에 가장 탄력이 있었다. 국물에 살짝 찍은 뒤 먹은 새우튀김은 기름에 적당히 튀겨져 바삭했다. 시간이 없어 맛을 더 음미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훌륭한 한 끼였다. 마지막 면까지 먹고 나서 M 씨와 눈이 마주쳤다. 나머지 그는 이미 물로 입가를 헹구고 있었다. 나는 코드를 벗었고, 역 앞을 나왔다. 그리고 아직 열차가 도착하기 2분이 남아있었다.


"키시멘 정말 맛있네요"

나는 M씨에게 말했다.

"그렇지? 나고야에 왔으면 키시멘은 꼭 먹어줘야 한다니까"

"정말 잘 먹었습니다"

"별것도 아닌데 뭘"


그는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나고야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들을 자세히 설명해 줬다.

M씨 나는 출장 동안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집을 팔지 말고 투자라도 해둘걸 그랬어. 일본은 은퇴하고 나면 편의점이나 택시 기사로 두 번째 직업을 가지는 케이스가 많거든. 난 뭘 하지? 입사한 지가 거의 30년 가까이 되는 데, 지금까지 남은 사람은 별로 없어서 외롭긴 하지, 와 같은. 현실적이고 담백한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는 너무 짜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날카로울 거라고 생각했던 인상과 달리,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노후가 걱정되는 아저씨였다.


2년 만의 출장이 끝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남은 기억은 키시멘 뿐이었다. 기나긴 회의도, 아침마다 탔던 KTX도, 기계 소리가 철컹철컹 들리던 공장도. 저녁에 먹었던 이자카야 음식도, 제일 좋아하는 일본 음식인 돈코츠라멘의 맛도, 마루가메 명물인 우동도 이제는 자세히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M 씨가 사준 500엔짜리 키시멘의 맛만이 이상하게도 오래도록 남아있다.     




갑자기 떠올라서 덧붙인 글

: 무라카미 하루키의 굴튀김 이야기

음식에 대한 에세이 중 가장 내 기억에 남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 나왔던 '굴튀김 이야기'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단순히 굴튀김에 대해 잘 썼기 때문은 아니다. 내가 반하게 된 이유는 그가 굴튀김 이야기를 꺼낸 계기 때문이었다.

한 독자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취직 시험을 봤을 때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에 관해 설명하시오'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솔직히 자기 자신을 원고지 4매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답한다.

"그런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만 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굴튀김에 쓰는 건 어떨까요?"


굴튀김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자기와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으로 표현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굴튀김 이론'이라고 위트 있게 선언하는 데, 그 만의 쿨함에 반했다.

글의 뒷 페이지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굴튀김 이야기가 쓰여있다. 단골 가게에 가서 굴튀김을 주문해 먹는 아주 단순하고 짧은 글이지만 나를 매료시키기엔 충분했다.


뛰어난 관찰력이나 굴튀김을 먹지 않는 독자조차도 먹고 싶게 만드는 묘사력뿐만이 아니다. 그가 얼마나 굴튀김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사소한 것에도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 때문도 아니다.

그는 단순한 굴튀김 하나를 통해 '행복'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까지 넘어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유보한다. 가벼운 것을 무겁게 다룰 줄도 알고 무거운 것을 가볍게 다룰 줄 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마음에서 알 수 없는 묵직함을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나도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40년 이상을 롱런하며 글을 써오는 세계적인 작가와 나 자신을 비교한다는 건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도 언젠간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게 되었다. 나 역시도 나만의 굴튀김 이야기를 쓰고, 나에 대해 진실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래서인지 음식에 대한 에세이 하면 지금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굴튀김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갑자기 생각이 나서 추가로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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