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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Aug 01. 2021

엄마의 과일가게

  엄마는 25년 동안 과일장사를 했다. 나는 그 가게에 가는 게 싫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항상 동네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가게는 동네 사랑방이었다. 아주머니들은 심심찮게 들렀다. 심심하단 이유로 매일 오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그중에는 무례하다 싶은 사람도 있었는데 허락도 없이 과일을 집어 먹기도 했다. 나는 그게 불만이었다. 가게는 물건을 사러 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엄마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게 한 구석에 믹스커피와 커피포트를 두고 오는 이를 대접했다.


  우리 가게가 동네 사랑방이 된 이유는 단순했다. 엄마의 존재 때문이었다. 엄마는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사근사근한 말투에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했다.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장사를 하지만 가끔은 손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일을 더 챙겨주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길을 모르는 사람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해도  뛰어 나가 길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더운 여름엔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가 지나가면 쉬어가라며 찬물을 건네기도 했다.  손님뿐 아니라 모두에게 상냥한 사람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였다. 동네에 이상한 여자가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큰소리로 욕을 내뱉었다. 일방적인 욕설이어서 사람들은 당황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여자를 피했다. 처음에는 몇몇이 화를 냈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무도 상대하지 않았다. 유령이라도 되는 듯 그 옆을 지나가곤 했다. 나 역시도 그랬다. 모르는 척 피해 갔다. 그녀가 날 해코지할까 봐 무서웠다. 아무도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 여자는 더욱 꽥꽥 소리를 질렀다.


  그 여자가 가게 앞으로 다가오자 엄마는 그 여자에게 다가가 큰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가 그런 험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그 여자의 행동을 꾸짖었다. 왜 사람들에게 화를 내느냐고, 그렇게 해서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이다. 그 여자는 대꾸하지 못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엄마를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곤 말없이 가게로 돌아와서 잘 쌓아놓은 복숭아 한 바구니를 봉지에 담았다. 그걸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녀는 말 없이 고개를 꾸벅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나는 가게에 돌아온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왜 저 여자한테 소리친 거야?"

"....."

"복숭아는 왜 준거야? 돈도 안 받고.."


엄마는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희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인덕을 쌓는 일이야.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줘야 해. 

그래야 나중에 그것들이 다 돌아오는 거야"


  누구나 피하는 사람에게 엄마는 왜 진심으로 꾸짖었고, 복숭아를 쥐어줬을까? 엄마는 그녀에게 자신의 삶의 비결을 알려줬던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인덕을 쌓는 건 엄마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신조니까 말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엄마의 가게는 번창했다. 동네의 절, 교회, 성당에선 행사가 있으면 늘 우리 집에서 과일을 사갔다. 명절마다 직원 선물로 50박스 넘는 과일을 사가는 사장님도 있었다. 꼭 여기서 사 오라고 했다며 부모님의 말을 듣고 찾아온  젊은 부부도 있었다. 이사를 간 사람들도 다시 우리 가게를 찾았다. 1시간 걸리는 곳에서 왔다고 하면 엄마는 환한 미소로 반겨주셨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들도 많았다. 당신의 인품 덕분에 엄마는 우리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았고, 우리 삼 남매는 큰 어려움 없이 잘 자랐다.

 

 나는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엄마의 등을 보며 자랐다. 그녀만큼의 덕을 쌓는 건 멀었지만, 조금이라도 닮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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